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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탄력근로제가 확대시행된다면 우리는 계속 과거의 성장주도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주52시간 탄력근로제가 확대시행된다면 우리는 계속 과거의 성장주도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 ⓒ rawpixel,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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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3개월을 살아보니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났다. 300인 이상의 사업장이 대상이었지만, 발 빠른 업체는 300인 이하여도 적용하는 분위기였다. 야근이 많은 회사의 경우,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 완화를 위해 '탄력근로제'라는 것을 도입하고 있다. 회사 내 취업규칙으로 정할 수 있는 2주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3개월 이내로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면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하고, 그렇지 않은 기간에는 근로시간을 줄여 일찍 퇴근하거나 쉬는 것을 말한다. 즉, 3개월 이내에서 어떤 날은 많이 일할 수 있고, 어떤 날은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으로 새로운 삶의 형태가 생겨났다. 지인 A는 셔틀버스를 타고 아침 7시 반에 회사에 도착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8시부터 6시까지 근무를 하고, 금요일은 오전에만 일하고 퇴근을 한다. 이런 식으로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것이다. A는 금요일 오후에는 가족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좌충우돌하는 곳도 있다. B의 회사는 주 52시간 근무 시행에도 야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시 출입카드가 찍히지 않았다. 주 52시간 초과로 출근을 할 수 없던 것이다. B는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지인 C는 주 52시간 근무를 넘겨서 몰래 근무하려다가 인사팀에 발각되어 프로젝트 매니저가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한 회사는 납기는 다가오는데 최대 52시간밖에 근무하지 못하자, 퇴근 후 카페에 모여서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하지만 이것도 주 52시간 위반이라 시행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어떻게든 법망을 피해 일을 해보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이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려 했을까?

프로젝트 계약이 주로 연 단위로 이루어지는 탓에, 주 52시간이 시행되기 전에 납기를 계약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야근을 계산했기 때문에 인력 비용과 근무 시간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빨리 제품을 내놓아야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IT업계의 특성도 작용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주 52시간을 측정하는 단위 기간을 6개월~1년 정도로 늘리는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탄력근로제는 업무가 많을 때는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하고, 업무량이 많지 않을 때는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하는 것이다. 

취지야 알겠지만,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에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과연 B와 C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기대할까? 만약 그들에게 납기가 충분했다면, 야근을 하려고 했을까? 

탄력근로제 확대에 앞서 검토해야 할 것들

나는 IT업계에 18년간 근무하면서 납기가 촉박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봤다. 지금은 비교적 워라밸이 잘 갖춰진 곳에서 여전히 IT 업무를 맡고 있지만, 다시 그 프로젝트를 하고 싶진 않다. 촉박한 납기 때문에 야근과 밤샘을 하다가 과로로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동료도 보았고,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이 직종을 떠나는 동료도 많았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2주 혹은 한 달간의 장기 휴가가 주어지지만, 다음 프로젝트에서 또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휴가가 끝나기 일주일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만약 주 52시간 탄력근로제 기간이 확대된다면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일을 다시 겪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생산성과 납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 52시간 탄력근로제 확대가 이슈가 되었으나, 시행 이전에 검토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 번째, 주 52시간이 시행된 지난 3개월간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는가'이다. 주 52시간을 시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직원들은 과다한 업무량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의도였다.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주 52시간 도입을 통한 저녁이 있는 삶'도 원래 야근이 많지 않았던 A의 사례에만 가능했다. B나 C의 경우에는 어떨까? 만약 주 52시간 탄력근로제가 6개월에서 최장 1년으로 확대된다면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될 수 있을까? 예상하건대, 납기 기한은 맞출 수 있겠지만, B나 C는 여전히 저녁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에 우려가 드는 이유다.

두 번째는 '선진국처럼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는 것이 한국의 실정에 맞는가?'이다. 많은 예로 드는 것이 일본, 미국, 유럽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한국은 OECD국가 중 연간 근로시간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2017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연간 평균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서 한국은 3위를 차지했다(출처 :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ANHRS#). 미국은 13위,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은 21위이고,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의 경우 1356시간으로 한국의 2024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추세적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는 문화적으로도 노동시간이 길지 않다.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아도 사회문화적으로 노동을 길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게 봐야 한다. 한국은 야근을 해야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다급한 일도, 많은 물량도 다 처리해줘야 능력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한국에서 법적으로 긴 노동시간을 보장한다면, 추세적으로 감소하는 노동시간을 다시 증가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 52시간 3개월 시행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개선점을 찾아내기에 충분한가?'도 따져봐야 한다. 문화를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변화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가 강한 곳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문화도 아직 팽배하다.

이런 곳에서 주 52시간제를 겨우 3개월을 시행해 놓고, 자료를 놓고 검토한들 제대로 된 개선점이 나올지 의문이다. 앞서 사업 계약을 운용하는 단위가 보통 1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 52시간도 통상 1년은 운영을 해봐야 개선점을 도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속도전에 강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IT 강국으로 칭송받으며 가장 빠르게 인터넷 사용 인구가 늘었다. 하지만, IT 강국이라고 칭송받는 이면에는 밤을 새워 일하는 IT 근로자들이 있었다. 코딩을 하면서 요구되는 것은 창의성보다는 '빠르게'였다. 빠른 시간 내에 요구 사항을 파악해서 대량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IT 산업의 전형이었다. 

이제는 노동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성장 위주의 '빠르게', '대량'이라는 키워드보다는 '영향력', '파급력'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야 할 때다. 과거 성장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노동가치는 노동시간으로 대변됐다. 이제는 적은 시간을 들여 얼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무실에 앉아서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SNS를 타고, 유튜브라는 도구를 통해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적은 노동시간으로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기회가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AI, 빅데이터가 몰고 올 변화 중 하나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창의와 혁신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창의력은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일하며 윗사람 눈치를 보는 문화에선 쉽게 나올 수 없다. 

'빠르게'를 외치던 문화에서 벗어나 조금 더 주 52시간을 누리면서, 미래를 계획하면서, 보완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B와 C가 속한 조직에 변화할 시간을 줄 수는 없을까? 성급한 탄력근무제 확대 논의가 아쉬운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직장인, #주52시간근무제, #탄력근로제, #확대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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