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소셜 미디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서있지 못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이렇게 말했다. 주류 언론이 자신을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상황에서 소셜 미디어만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미국 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CNP

 
언론학자로서 나는 이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위의 '소설미디어 은인론'을 전해 준 것부터 주류언론이었기 때문이다. <폭스뉴스>는 당선 직후 트럼프를 인터뷰하면서 앞의 발언을 내보냈다.
 
그뿐인가. 오래 전 그를 텔레비전 스타로 키워준 것 또한 '주류언론'인 <엔비씨(NBC)>였다. "넌 해고야!"를 유행어로 만든 <어프렌티스>(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한 리얼리티 TV쇼)가 아니었다면, 그는 대통령은 고사하고 시장자리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엔비씨>는 자칭 "미국 최고의 방송사"라는 모토를 자랑하지만, 영향력 면에서는 경쟁사인 <씨비에스(CBS)>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까지 무려 15년간 미국 최대의 시청률을 자랑해 온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에 따르면 이 <씨비에스>도 "가짜뉴스 방송사" 중 하나일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 트럼프는 미국의 방송사를 향해 '가짜뉴스'를 유포한다고 비난해 왔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한다고 믿기 때문일 터이다. 이런 언론사인 <씨비에스> 회장이 2016년 대선 기간에 매우 충격적인 말을 했다.
 
"(트럼프의 대선출마가) 미국사회에는 안 좋은 일일지 모르나, 씨비에스에게는 '끝내주게 좋은(damn good)' 일이다."
  
 지난 2015년 5월 13일 레슬리 문비스 전 CBS 회장의 모습. 그는 지난 2018년 9월 9일(현지 시간),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사임한 바 있다.

지난 2015년 5월 13일 레슬리 문비스 전 CBS 회장의 모습. 그는 지난 2018년 9월 9일(현지 시간),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사임한 바 있다. ⓒ AP/연합뉴스

 
"사회에는 나쁜 일일지 모르나..."
 
트럼프의 대선 뛰어들기를 '국가적 경사'로 보기 어려운 까닭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에 안 좋은 일'이 방송사에는 어떻게 '끝내주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 당사자인 레슬리 문비스 회장은 그 이유까지 자상히 설명했다. 한 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일이 벌어질 줄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 (트럼프의 출마 덕에) 돈이 마구 굴러들어올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재미있다."
 
시청자가 트럼프 지지자이든 그렇지 않든, 트럼프를 보도하는 것은 방송사에 큰 이익이 된다는 이야기다. 좋아하는 사람은 환호하면서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욕하면서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존재 자체로 흥행감이었고, 그런 까닭에 미국의 '주류방송'은 열심히 그의 소식을 실어 날랐다.
 
"사회에는 안 좋은 일일지 모르나..."
 
문비스 회장은 경솔한 발언이 논란이 되자 즉시 사과했다. 그렇다고 이후 상업방송의 작동 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사회에 안 좋은 일'을 무시 가능한 전제조건으로 삼을 만큼 개인과 기업의 탐욕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주류언론에 대한 트럼프의 반감은 꽤 빗나가 있지만, 소셜미디어가 자신에게 득을 준다는 생각까지 틀린 것은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는 확실히 '트럼프 시대'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의하기 어렵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정치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가 얼마나 되며, 그 중에서 상반된 정치성향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 보라.
 
반말, 욕설, 삭제, 차단.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과 다른 신념을 지닌 사람을 모욕하고 제거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만일 치열한 정치적 논쟁을 벌이면서도 소셜 미디어 '친구' 명단에 남아있는 이가 있다면 현실에서 매우 가까운 가족이거나 친구일 것이다. (그 '정적'이 친구 명단에 남아있는 까닭은 현실에서 그들을 삭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온라인상에서 우리가 보이는 말과 행동은 매우 트럼프를 닮아 있는 셈이다. 그런 우리가 트럼프에 놀라는 까닭은, 그가 '오프라인'에서도 그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 한때 접속 오류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가 2018년 10월 17일 오전 한때 섬네일(미리보기) 화면이 뜨지 않고 동영상 재생이 안되는 등 장애를 일으키다가 11시 40분 정상 재생되고 있다. 유튜브는 이날 오전 10시40분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불편을 초래해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한 유튜브 행사장.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 연합뉴스

 
소셜 미디어, '의견 양극화'의 온상
 
인터넷이 대중에게 공개된 1990년대 중반, 미디어 학자들은 큰 희망에 부풀었다. 사람들이 풍요롭고 다양한 정보를 고루 접함으로써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갖게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경청하기보다 자신과 같은 의견을 지닌 사람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기보다 '옳은 말씀'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일까?
 
'논객'이나 '키보드 워리어(전사)' 같은 말이 인터넷 시대에 탄생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 '싸움꾼'의 역할은 '말의 전쟁'에서 내 의견을 수호해주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을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발라버리는' 통쾌한 스펙터클이 가미될 때 한층 빛이 난다.
 
2007년에 언론학자 다이애나 머츠는 <반대편에 귀 기울이기>라는 의미심장한 책을 썼다. 여기에는 유권자들이 귀를 틀어막음으로써 스스로 민주주의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호소가 담겼다. 이 책은 10년 넘게 '공론장'으로서의 기능검사를 마친 인터넷이 받아쥔 초라한 성적표처럼 보였다.
 
그리고 2015년에 저자는 <'들이대기' 정치>라는 또 다른 책을 썼다. 이제 텔레비전에서조차 의견이 다른 상대를 대놓고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의견 양극화가 20년 만에 대중매체 전반, 사회 전역으로 확산된 셈이다.
 
 미국 언론학자 다이애나 머츠의 주요 저작 두 권. 지난 20년 간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망가진 '공론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 언론학자 다이애나 머츠의 주요 저작 두 권. 지난 20년 간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망가진 '공론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 Oxford/Princeton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까? 내게 반대하는 사람을 최대한 멀리하고 '옳소'를 연발하는 상대와 어울리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라면, 소셜 미디어나 방송을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들은 그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유튜브에 뜬 '아이들과 섹X 하는 법'
 
2017년 11월 27일 오전, 유튜브를 검색하던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비디오 사이트에서는 요리나 도구 등 무언가를 배울 목적으로는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기', '하는 법'의 검색어가 자주 이용된다. 평소처럼 검색을 시작한 이들은 '자동완성' 기능이 만들어준 결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튜브 검색창이 자동으로 완성한 검색어들. 2016년 아동 성범죄 행위가 검색어로 뜬 뒤 큰 논란이 되었다.

유튜브 검색창이 자동으로 완성한 검색어들. 2016년 아동 성범죄 행위가 검색어로 뜬 뒤 큰 논란이 되었다. ⓒ NPR

 
'학교에서 섹X하는 법'과 '아이들과 섹X하는 법'이 '깨끗한 피부 만들기', '자신감 갖는 법'과 더불어 '추천 검색어'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 추천 기능은 사용자들이 자주 입력하는 단어를 반영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이 내용을 검색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소수 사용자들의 검색어 조작으로 나타난 결과였을 것이며, 천하의 구글이 개발한 알고리즘조차 이 남용행위에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도 한 해 전에 같은 수모를 겪었다. 대화용 인공지능 '테이(Tay)'가 대중에게 공개된 뒤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봇 '테이.' 인종주의, 여성혐오, 성적 모욕 등 심각한 사태를 겪은 뒤 폐쇄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봇 '테이.' 인종주의, 여성혐오, 성적 모욕 등 심각한 사태를 겪은 뒤 폐쇄되었다. ⓒ MS/Twitter

 
이 두 사건은 컴퓨터 알고리즘의 미래에 드리운 짙은 먹구름을 상징한다. 인공지능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심지어 이 문제를 한층 강화한 형태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테이' 역시 사용자들의 남용 행위로 인해 벌어진 일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책임 당사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추천 검색어'는 곧 삭제됐지만, 같은 문제를 지닌 알고리즘은 이 시간에도 열심히 비디오를 추천하고 있다.
 
극단적 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
 
2018년 3월 <뉴욕타임스>에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미디어학자 제이넵 투펙치가 유튜브 추천 영상을 분석한 글이었다.
 
트럼프의 인용문을 확인하기 위해 영상을 보던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트럼프 영상을 보고 난 뒤 '나치 학살은 조작', '미국 총기사건은 허구'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담은 비디오가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이 현상이 우익 성향의 비디오에 국한 된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투펙치는 새로운 계정을 만든 뒤,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비디오를 거듭 시청했다. 그리고 어떤 영상물이 추천 목록에 뜨는지 기다려 보았다. 결과는 '그림자 정부' 따위의 또 다른 음모론 비디오였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비디오를 시청하든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채식주의자'를 검색해서 영상을 감상하다 보면, 얼마 뒤 육식은 물론 가죽이나 실크 등의 동물성 재료까지 거부해야 한다는 극단적 영상물이 올라왔고, '조깅'을 검색하면 '초장거리 마라톤'이 추천 영상으로 떴다. 유튜브는 어떤 주제라도 사용자를 극단적 내용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는 알고리즘이 설계된 방식 때문이다. 결함이나 부작용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을 수행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객관성'이나 '중립'의 환상을 갖고 있지만, 컴퓨터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편견, 비이성, 탐욕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유튜브 로고

유튜브 로고 ⓒ 유튜브

 
사악함과 탐욕
 
유튜브는 왜 검색한 비디오 이외에 다른 영상물을 보도록 추천할까? 당연히 더 많은 비디오를 보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야 추가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은 어떤 영상물을 추천할까?
 
유튜브는 10억 이상의 사용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미 수년에 걸쳐 이들의 시청 패턴을 추적하고 분석한 데이터를 지니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렇게 종합된 데이터에 의거해, 극단적 내용을 담은 비디오가 시청시간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 결과가 나날이 깊어지는 의견의 양극화며, 이는 허위 정보의 양산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견 양극화가 유튜브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지만, 이 비디오 사이트는 현재 텔레비전과 포털의 기능을 모두 흡수한 세계 최대의 매체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물론 구글이 일부러 해롭거나 왜곡된 내용의 비디오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많이 볼' 영상을 제안할 뿐이다. 다시 말해 '돈을 많이 벌게 해 줄' 비디오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는 '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 초창기의 철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아무리 못된 기업이라도 소비자를 해롭게 할 목적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그저 이윤을 사회적 책임 위에 둘 뿐이다. '사악한 기업'은 '탐욕스럽고 무책임한 기업'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구글은 사악해지기로 작정한 것일까? 다음 글에서 더 살펴보기로 하자.

[기획 : 극단적 의견 양극화의 온상이 된 유튜브]
① 충격적인 유튜브 '엄마 몰카', 그보다 더한 것들
② "내가 카톡 하나 받았는데..." 충격적 유튜브 영상의 실체
 
유튜브 음모론 의견 양극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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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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