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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공감과 교감의 글쓰기는 사례에서부터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결국 에세이 쓰기도 첫 줄, 첫 문장으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에세이의 첫 부분을 쓰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일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 글에 흥미를 갖게 만들고, 몰입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매력적인 도입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수록 에세이는 더욱 어렵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이는 초심자들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습관적으로 쓰는 숙련자분들도 종종 빠지게 되는 강박관념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글쓰기 방법에 대해 조언할 때 "시작이 어렵다면 사례부터 쓰세요"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례란, 글쓴이가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얘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사연을 뜻합니다.

에세이는 본질적으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세상사를 겪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남들에게도 알려주려는 소통 행위이죠. 여기서 '자신이 겪었던 세상사', 그것이 바로 자신이 경험한 사연입니다. 에세이의 시작 부분이 대개 사례로 꾸며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면, 아래와 같은 방식이 사례로 시작하는 글쓰기입니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선후배 동창들끼리 모인 단톡방이었는데 나이 지긋한 선배 중의 한 명이 요즘 대세 걸그룹인 트와이스의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자기 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이라 관심을 가지고 보다 보니 자신도 팬심이 생겨서 구입했다는 것이다. 

직언이 트레이드 마크인 후배 하나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휘했다.

'선배, 중딩들이 그러면 로망이지만 선배 나이대가 그러면 노망이에요.'

순간 나도 여차여차한 사유로 소장만 하고 있을 뿐, 지금껏 계면쩍어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레드벨벳 이모티콘을 이번 기회를 틈타 클릭하려다가 얼른 멈췄다. 조금만 내 손이 후배보다 빨랐다면 '노망 세트' 1+1이 될 뻔했다."


제가 일전에 모 미디어 매체에서 발표했던 에세이 내용의 도입부입니다. 제목은 <로망을 갖는 데에도 유효기간이 있나요?>였습니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시피, 어리고 젊은 사람들의 취향이나 설렘은 로망이라 부르며 가급적 존중해주지만 정작 나이 든 사람들의 그것은 쉽게 노망이라고 비웃는 문화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느낌과 생각을 밝힌 글이었습니다.

만약 위 글이 사례가 아닌 방식으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사례가 아니었다면 아래처럼 시작했을 겁니다.

왜 젊었을 때는 로망이라 불리던 것들이 나이가 들수록 노망으로 변해버리는 걸까?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을 말하거나 자신이 한껏 빠져있는 것들을 밝히면 주변 사람들이 가급적 그를 인정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나이가 든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말하거나 설렘에 대해 얘기하고, 그것이 속칭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가질법한 것들이 아닐 경우에 사람들은 대개 황망해 한다. 우리가 로망을 갖는 데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유효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 걸까?

어떤가요, 사례로 시작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비교해보니? 사례가 없는 글은 왠지 모르게 설명을 한다거나, 설교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에세이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이 아닙니다. 에세이는 분명 설명문이나 논설문과는 결이 다른 장르죠.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풀어쓰는 방식은 에세이라는 장르에 잘 어울린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물론 에세이에도 필자가 나름대로 추구하려는 주장이라든지 사상이라든지,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겠죠. 하지만 에세이의 주장, 사상, 가치관 등은 어느 정도 글쓴이의 주관성이 가미된 결과물입니다. 객관적인 근거들을 찾고 엄밀하게 논증을 할 것이었다면 애당초 에세이가 아니라 보고서나 논문을 써야겠죠. 에세이를 낮잡아 보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에세이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에 비해 객관성이 다소 떨어지는 글입니다.

그래서 에세이는 독자에게 살포시 말을 건네는 문학 장르에 가깝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약간은 천천히, 조금은 돌아가듯이 본론을 꺼내는 겁니다. '나의 이야기'에 상대방이 호기심을 갖도록 서서히 회유하는 방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이때 사연이나 사례들은 에세이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객관성 결여'를 보완해줍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연이나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가 되어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에세이와 사연·사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입니다.

결국 에세이를 쓸 때 경험담으로 시작하는 것은 글의 설득력을 미리 높이기 위함입니다. 흡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소통을 할 때와 같은 것이죠.

누군가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만약 당신이 자신만의 어느 특정한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당신은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하겠습니까? 다짜고짜 느낌과 생각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할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내세울 것입니다.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일인데 말이야"하는 식으로 말이죠. 에세이 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세이는 일방적인 설교나 설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호 공감과 교감의 글쓰기, '시작이 어렵다면 사례부터'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태그:#글쓰기, #에세이, #수필, #특강,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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