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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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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이 화제에 오르면 늘 자동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교권은 어떡할 건데?" 평소엔 교사들이 겪는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학생인권 이야기가 나오면 '교권'을 부르짖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혹은 교사가 직업 생활 중에 마주하는 불이익 또는 어려움을 교권 침해라는 용어를 사용해 설명해 과연 교권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는 자신에 대해 '스쿨미투'를 한 학생 셋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그는 "무분별한 스쿨 미투로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소를 결심했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한편 부산의 '교권강화연구소'라는 단체는 이 사안에 대해 교사의 성 관련 발언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징계는 부당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교권' 어떻게 정의되고 있나

교권은 가르칠 교에 권력, 권한, 권리를 두루 포괄해 의미하는 권 자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현행 법령 중 '교권'이 등장하는 법률은 교원지위법과 교육공무원법이다. 교원지위법에는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하여 폭행, 모욕 등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할 경우 학교장은 해당 교원의 치유와 교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문이 있다.

그리고 교원지위법 시행령에는 '교권보호위원회'의 설치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이 위원회는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대책, 학생 선도, 분쟁 조정 등을 심의한다. 교육공무원법에 교권이 언급되는 조문은 '교권은 존중되어야 하며,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종합하면, 현행법은 교육활동 보호와 교원의 전문적 지위·신분의 보장 차원에서 교권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학생인권이 교권을 침해하는가'라는 논란이 가중되며 '체벌을 못해서 교권이 추락한다'는 식의 언어 오용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교권이 권리인지 권한인지 권위인지, 그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소위 전문가들도 헷갈려 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며 교권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이런 건 교권침해일까?
 
1)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데 학생이 졸고 있다. 교사는 잠에서 일어나라고 말한 뒤 졸던 학생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다. 놀란 학생은 교사에게 왜 남의 몸에 손을 대냐고 따졌다.

2)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데 학생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무음 모드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는 것이 예의 없게 느껴지고 불쾌해서 교사는 수업을 진행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3) 수업이 진행되는 도중 학생이 교사의 별명을 불렀다. 불쾌한 별명이었고, 다른 학생들이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교사는 모멸감 때문에 수업을 더 이상 이어가는데 힘이 들었다.

4) 교사가 수업 도중 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후 교사의 발언이 문제라고 생각한 학생들은 SNS에 해당 교사의 발언을 게시하였고, 일부 학생들은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해당 교사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번 사례에서 침해된 권리는 무엇일까? 교사는 허락 없이 학생의 몸에 손을 댔고, 그 행위로 인해 학생은 물리적 고통을 느꼈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같은 행동을 했다면 '갑질'로 규탄 받았을 것이다.

체벌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를 지나 체벌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시대가 되니, 일각에서는 '그럼 교육활동을 포기하라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교육활동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므로, 1번과 같은 사례에서 교사의 대처를 고민할 때 교권의 목적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원지위법은 교권보호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교육활동 보호'로 들고 있다. 교육활동이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받을 권리가 헌법상 보장된 인권이기 때문이다. '교육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행위는 스스로의 교육받을 권리를 저해한 행위일 순 있어도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 행위라고 볼 순 없다.

그 학생은 전날 잠을 설치는 바람에 일회적으로 졸게 된 것일 수도 있고, 학교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매 수업 때마다 자는 학생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학생이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당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수업 방식에 변화를 주거나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 공교육의 의무다.

2번 사례의 경우도 1번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수업 중 딴짓을 하는 학생으로 인해 교사가 직업적 의욕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는 배려의 문제이지 처벌로 대응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학생이 만약 무음 모드가 아닌 소리를 켜고 휴대전화를 사용해 다른 학생들의 수업 참여에 지장을 주는 경우는 다르다. 학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는 곳이고, 대부분의 교육활동은 여러 학생이 함께 참여해서 이루어진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므로 소리를 켜고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행위 등에는 제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소리를 켜고 휴대전화를 쓰는 것을 자제하는 행동이 타인의 권리에 대한 자발적인 존중과 배려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학생의 교육활동 방해 행위에 대응되는 것이 교사의 처벌 뿐이라면 교육적 효과가 발생하기 어렵다. 내 행동이 다른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감지하고 자발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킬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둘째로 교육활동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학생의 의견과 반응이 수용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보이는 수업방해 행위는 소통이 부재한 교육이 낳은 결과물일 수 있다. 교사들이 수업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곤경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교사들이 있는 것이지 교사들의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교권'과 교사의 노동권, 그리고 학생인권

3번 사례는 학생이 교사의 인격에 상처를 주어 교사가 수업을 이어가는 데 지장을 끼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노동자가 스스로 판단해 작업을 중단할 권리를 작업중지권이라 한다. 교사가 학생의 폭언이나 성희롱 피해를 입는 경우에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교사에게는 정해진 시간동안 교육활동을 할 책임이 있지만,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발생하거나 예상되는 경우에는 수업을 중단하고 가해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침해되는 권리는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수단적 권한인 교권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인권,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노동권도 해당된다. 학교장과 교육 당국은 교사들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노동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것이다.

 4번 사례는 교사의 부당한 행위 및 폭력에 대해 학생들이 사안을 외부에 알리고 교사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사건이다. 학생은 교육받을 권리뿐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해당 교사의 발언을 온라인에 게시하며 실명을 언급했다면 사법적으로 명예훼손 등을 따져볼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교사의 잘못된 행동 또는 폭력에 대해 학생들이 공론화하고 문제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교권 침해로 여겨져선 안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각에서는 학생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겨지는 언행들을 곧장 교권 침해로 연결 짓곤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2013 교권보호 길라잡이』에서 '인터넷에서의 교사 비방 또는 언론매체를 통한 압박', '교사 배제를 주장하는 서명운동 등 명예훼손'을 교권 침해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법령에서 규정한 교권의 의미와도 맞지 않고 학생들의 피해호소를 탄압할 명분이 되지 않을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교육활동에 가해지는 부당한 공격에 교육청과 학교 당국의 적절한 대처가 요구될 수 있겠으나, 학생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학생이 학내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호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지, 투명하고 공정한 해결 과정을 기대할 수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학생·학부모들이 왜 언론에 제보까지 하고 서명운동에 나서는지 학교의 현주소를 먼저 살펴야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학생인권과 교권을 반대항인 것처럼 눈속임하여, 교권을 '학생을 처벌하고 통제할 권력'으로 왜곡해선 안 된다. 우리는 정부가 교사의 수업 내용과 발언을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내용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처벌하는 등 교육의 자주성을 훼손한 역사를 경험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노동3권을 요구하며 단식과 농성을 불사하고 있고, 이들과 함께 연대하는 학생들이 있다.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고 처벌하는 학교를 탈피하고, 잘 작동하는 공교육을 만들기 위해선 학급 당 학생 수 감축, 교육예산 확대, 학교자치 활성화, 입시경쟁 폐지 등의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인권 보장의 선행과제라기보다는 교육 개혁의 한 흐름 속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할 변화일 것이다.

더불어 학교 수업이 교사의 일방적인 계획과 주도 하에 이뤄지고, 학생들은 모두 침묵해야 한다는 관념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교과 내용을 알고 설명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욕구와 반응을 수용하고 그에 대응하는 역량도 중요하다. 이러한 역량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교사들에게 필요하고, 교육 당국은 이를 지원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학생'이란 수업시간에 침묵하면서도 집중하며 교사가 말을 시킬 때(질문 시간 등)만 적절하게 목소리를 내는 학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모든 수업에서 이러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 기대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폭력과 강제를 활용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태그:#청소년, #인권, #학생인권, #교권,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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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진입니다. 현재는 청년정의당 대표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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