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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NPO지원센터 2층에는 NPO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는 기관이 모인 협업공간 '엮다'가 있습니다. 2018년 '엮다'에 입주해 NPO 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는 개인/단체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한국 NPO에는 어떤 과업을 세운 후 우리 대에서 다 끝내야 할 것 같은, 최상의 것을 쟁취하기 위해 투신해야 할 것 같은, 투신하지 않은 멤버는 비겁자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한국 NPO는 단기간에 많은 일을 이뤄냈습니다. 사회 제도를 바꾸고, 많은 부분을 공론화했죠. 그런데 NPO의 내재적 역량 이상으로 애썼기 때문에, 모두 단거리 달리기를 뛴 것처럼 지쳐있어요. 그다음에 오는 사람 역시 지쳐 나가떨어지죠. 많은 NPO가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면, 이제 그만큼 노력을 우리 조직 안에서,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데 힘써야 해요." 
-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영리에서 비영리 업계로 전환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조직의 비전이 정작 조직 내부에서 죽어있는 현실에, 스스로가 부품처럼 느껴지고 삶의 방향성이 흔들리는 상황을 뒤로하고 퇴사했다. 아내의 유학길을 따라 도착한 미국에서 평화학과 갈등 조율(갈등 조정)을 만났고 2017년부터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는 한국 NPO 갈등패턴을 연구하고, 갈등 해결 워크샵을 열어 조직 내 소통 혈관을 뚫는 작업 중이다.

김 대표는 갈등 해결을 위한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누군가가 단번에 '경청 마법사'가 될 순 없다고 말했다. 조직 간 소통의 기회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말하는 기회만 무조건 늘린다면 퇴사율만 높인다는 것이다.

"조직의 문화나 리더 유형, 상황에 따라 소통이라는 혈관을 뚫는 데 다양한 방법과 속도가 필요해요. 요즘 여러 조직에서 구성원 간 대화 기회를 늘리는데, 기대와 달리 직원들이 줄 퇴사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일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해요. 오늘보다 나은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은 중요하죠. 하지만 갑자기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들을 쏟아내다간, 소통 혈관이 뚫는 수준을 넘어 쇼크사로 이어질 수 있어요."


김 대표는 갈등 예방은 물론 갈등 조율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갈등 해결 트레이닝 스쿨' 공간 조성을 꿈꾼다. 11월 21일 서울시NPO지원센터 협업공간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11월 21일 '엮다'에서 이뤄진 인터뷰
▲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 11월 21일 "엮다"에서 이뤄진 인터뷰
ⓒ 서울시NPO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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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율컬랙티브는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요?
"존경하는 조직학자이자 조직 경영가로 로버트 그린리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책 <섬기는 리더십>에 따르면 조직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조직원이 날마다 행복하고 성장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이죠. 그렇지 않은 조직을 그런 조직으로 만드는 것, 조율컬랙티브의 미션이에요. 소셜벤처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혼자 일하거나 외부 멤버와 협업하는 구조예요. 조만간 법인으로 전환해서 운영할 계획입니다.

비영리단체와 협동조합의 갈등해결 교육 프로그램과 워크샵을 제공하거나 컨설팅을 해드려요. 공동체가 건강하게 협력하고, 협력 근육을 키워서 조직 내 갈등을 해결하는 일을 돕습니다. 3C, 공동체(community)와 협력(collaboration),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 세 가지를 모토로 두고 활동합니다."

- 공동체와 협력, 갈등 해결이란 개념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현대사회는 공동체 개념이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예요. 대부분 소확행을 찾아가지만, 그 이면에는 있는 나 그대로를 받아주는 공동체를 가슴 깊이 원하죠.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 이 욕구가 남아있을 때 갈등을 평화롭게 조율하고 해결할 수 있어요. 갈등은 협력의 부재에서 시작해요. 협력을 통한 갈등의 해결을 우리 사회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죠. 워크샵 진행할 때마다 물어요. '중고교생이나 대학교, 취업 준비 시절에 내 친구의 점수를 높여주거나 나보다 친구를 더 잘 되게 해줘서 성공하신 분? 한 분도 손든 분이 없어요. 그런데 다음 질문에는 달라요.
'사회에 나와서 협력을 통해 일이 잘 풀리거나,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경험을 겪으신 분?'

90%가 손을 들어요. 어떻게 협력하는지, 어떻게 갈등하는지 배워야 해요. 공교육은 정말 필요한 요소를 가리켜 주지 않았죠.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해외에선 평화나 일상 속 갈등 해결 교육을 학제 과정에 넣어서 가르쳐요."

- 어떤 계기로 이 주제에 관심 갖고 활동하셨나요?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영리조직에서 비영리로, 국제 개발 단체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비영리 조직에선 비전이 조직 내부에 살아있지 않으면 배신감이 들어요. 영리 조직보다 더 힘들죠.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조직 구성원이 함께 비전을 향해 나가는 거잖아요. 되돌아보면 저뿐만 아니라, 조직의 비전이 내 삶에서 사라지거나 스스로가 부품처럼 느껴지는 경우, 삶의 방향성 잃어버려서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2009년 결혼과 함께 퇴사하고 아내와 함께 외국으로 떠났어요. 평화교육을 공부하는 아내를 내조하며 평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생겼죠. 저에겐 개인이나 국제 분쟁 단위보다 조직이 잘 맞았어요. 미국에서 갈등해결을, 캐나다에서 협동조합 방문연구원으로 공부했어요. 재작년 귀국 후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협력하는지, 어떻게 갈등하는지 배워야 해요."
▲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 "어떻게 협력하는지, 어떻게 갈등하는지 배워야 해요."
ⓒ 서울시NPO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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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터 입주가 대표님과 조율컬랙티브에 어떤 자극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 우연히 서울시NPO지원센터의 활력신공(활동가 역략강화를 위한 신나는 공부) 프로그램 시작 소식을 접했어요. 2개월간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그 인연으로 센터 활동에 관심이 생겼죠. 활동가들을 만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좋아서, 센터의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서 입주를 신청했어요.

한국NPO 조직의 활동 모습과 그 안에서 일어난 좋은 변화를 연구하려면 센터와 가까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센터가 그런 변화를 주도하니까요. 특히 제 옆자리 와이즈 서클과 비슷한 처지라서 함께 아이디어 회의도 하곤 합니다. 와이즈 서클도 소통과 갈등 해결 관련 프로제트를 같이 하고 싶어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 조율컬랙티브는 NPO 조직의 다양한 갈등 패턴을 연구 중입니다. 한국 NPO 조직들은 갈등이란 주제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컨퍼런스에 참여한 모습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 다양한 크기의 조직, 20여 군데를 주의 깊게 살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시민사회에 평화교육의 중요성을 전파하신 분들 덕분에 갈등해결이란 말 자체가 배척되진 않아요.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리는 것 같아요.

갈등은 우리 문화에선 피해 가고 싶은 말이에요. 조직의 장 입장에선 갈등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는 거 자체가 힘들죠. 스스로 조직운영을 잘 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갈등 해결 워크샵이나 상담을 신청 하시는 걸 망설이시더라구요. 워크샵을 진행해 보면,조직의 대표나 CEO 대부분 '우리 조직의 갈등 정도는 심각성이 1, 2단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작 조직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인식하는 심각성은 4, 5단계예요. 다들 사표를 품고 있죠."
 
"1, 2단계 아니었니?..." VS "...사표 낼 준비 중입니다."
 "1, 2단계 아니었니?..." VS "...사표 낼 준비 중입니다."
ⓒ CC0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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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O 조직 내 갈등의 원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 NPO에는 어떤 과업을 세운 후 우리 대에서 다 끝내야 할 것 같은, 최상의 것을 쟁취하기 위해 투신해야 할 것 같은, 투신하지 않은 멤버는 비겁자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구성원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 평생 헌신해야 하는 부담감, 영리 섹터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감내하기를 강요받는, 비영리 활동을 중단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문화가 있죠.

해외에서 공부하며 건강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비영리 조직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활동하고, 못하면 내 다음 세대가 이 정신을 교육받아 이어가죠. 장기적으로 비교하면 이쪽이 더 지속 가능하고, 효율도 높을 거예요. 한국은 누군가 활동을 그만두면 그 분야의 활동이나 지식이 끊기는 경우가 있죠. 바통을 터치해서 비전을 이어가는 문화가 없죠.

한국 NPO는 단기간에 많은 일을 이뤄냈습니다. 사회 제도를 바꾸고, 많은 부분을 공론화했죠. 그런데 NPO의 내재적 역량 이상으로 애썼기 때문에, 모두 단거리 달리기를 뛴 것처럼 지쳐있어요. 그다음에 오는 사람 역시 지쳐 나가떨어지죠. 많은 NPO가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면, 이제 그만큼 노력을 우리 조직 안에서,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데 힘써야 해요."

- 워크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워크샵 제목이 <싸움의 기술>이었어요(웃음). 싸움을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감고 주먹을 마구 내지르죠. 갈등도 비슷해요. 갈등을 해결하려면 그 상황을 잘 분석해야 해요. 1안, 2안이 아니라 3안, 4안까지 계속 찾아야 해요. 갈등 때문에 열받아서 퇴사하는 대신 내 삶과 미래와 가족 등을 위해 최선을 찾아야죠.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저도 그랬어요(웃음).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 상대를 파괴하는 단계로 나가요. 내 의견을 무시하는 상사가 싫은 게 아니라, 그 상사 자체가 꼴보기 싫죠. 이 단계가 반복되면 회복이 어려워요. 워크샵에선 일단 각 직급 간 따로 모아요.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죠. 그중 다른 직급에 피드백하면 좋겠다는 요구 사항을 따로 정리해요. 그리고 그 피드백을 받아들일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서로 나눕니다. 그다음에 비전을 세우고, 세대 간, 직급 간 역할을 정해요.
 
"갈등을 해결하려면 대안을 계속 찾아야 해요. 소통은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다간 조직이 망가져요."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
 "갈등을 해결하려면 대안을 계속 찾아야 해요. 소통은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다간 조직이 망가져요."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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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직에 헌신을 요구 받으며 일해온 멤버들은 위 직급과 피드백을 주고받지 않아요. 이미 상사가 '힘들어요'라는 말을 무시해왔는데, 워크숍이라고 듣겠냐-는 생각이 깔려 있는 거죠. 조직의 문화나 리더 유형, 상황에 따라 소통이라는 혈관을 뚫는 데 다양한 방법과 속도가 필요해요. 요즘 여러 조직에서 구성원 간 대화 기회를 늘리는데, 기대와 달리 직원들이 줄 퇴사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일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해요. 오늘보다 나은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은 중요하죠. 하지만 갑자기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들을 쏟아내다간, 소통 혈관이 뚫는 수준을 넘어 쇼크사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을들의 퇴사 욕구를 진정시키고, 갑에게 을의 목소리를 단계적으로 듣게 하는 수단이 필요해요. 물론 하나도 듣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경청 마법사가 될 순 없죠. 중간 과정을 통해 피드백을 가끔이라도 받도록 조직 내 갈등 해결 시스템을, 개인에겐 갈등을 피해서 자기 피해 과정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해요."

- 조율컬랙티브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8월에 동북아 지역 평화 활동가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동북아 평화 훈련원'의 일원으로 국제 평화교육을 진행했어요. 평화 교육 프로그램과 갈등 해결 워크샵에 학생들은 물론 예멘 난민, 재일 조선인 등이 참석했습니다. 내년에는 난징 대학살 박물관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터전에서도 일상에서 평화를 나누고, 갈등을 해결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서울시NPO지원센터 협업공간의 한 평 사무실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평화와 협력, 갈등해결 등의 키워드가 한국 사회에 많이 회자되지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적어요. 이런 주제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관심 있는 분들과 협력해서 갈등 해결 트레이닝 스쿨을 열고 싶어요. 비영리 단체와 사회적 기업을 위한 갈등 해결 워크샵도 업그레이드해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영리적 측면에선 제대로 된 프로그램 만들어서 사회에 공급하고 싶어요. 이제 막 시작하는 소셜벤처의 정신으로 활동 중입니다."
 
단기간에 많은 일을 성취한 
한국의 NPO,
이제 세상을 바꾼만큼 
조직 문화도 바꿔야죠.

구성원에게 투신을 강요하는 대신 
바통 터치로 비전을 이어가는 문화와
조직 내 갈등 해결 시스템을
만들어야해요 

- 김홍석 조율컬랙티브 대표


* NPO(Non-Profit Organization) - 비영리기구 :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준공공(semi-public) 및 민간 조직( 자선단체, 노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체로 국가에서 정한 공식적인 직업분류체계에서는 시민단체로 불립니다. 자세한 설명은 <[NPO 이해하기] (http://snpo2013.blog.me/220760121595)>에서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곽승희 월간퇴사 편집장입니다. 박수연 서울시NPO지원센터 소통협력팀 매니저가 인터뷰 지원했습니다. 이 기사는 서울시NPO지원센터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조율컬랙티브, #김홍석, #서울시NPO지원센터, #갈등 조율, #조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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