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1월 17일 토요일 낮 1시 반, 일본 오사카 시내에 있는 유서 깊은 오사카중앙공회당(大阪中央公会堂, 국가지정문화재) 지하 어웨이크 레스토랑에서는 아주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건물은 1918년에 준공되어 올해 100년을 맞이하는 오사카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이 유서 깊은 건물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출판기념회를 열어 더욱 뜻 깊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올해 나이 85살의 아베 다케시(阿部建)씨가 일제강점기 조선을 무대로 쓴 소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의 출간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기자도 초대를 받았지만 서울에서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 기자를 위해 아베 다케시씨는 신간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기자와 아베 다케시씨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에 건너와서 조선인 여성과 일가를 이루면서 겪은 부제 '일본,조선, 식민지이야기'를 다룬 소설 아베 다케시의 <중천의 반달> 표지
▲ 중천의 반달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에 건너와서 조선인 여성과 일가를 이루면서 겪은 부제 "일본,조선, 식민지이야기"를 다룬 소설 아베 다케시의 <중천의 반달> 표지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아베 다케시씨는 2016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은 팔순 노인인 그가 한국을 찾은 건 그의 가족사와 관련한 소설을 쓰는 도중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기자는 평안북도 <박천군지(博川郡誌)>를 구해주었고 통역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아베 다케시씨는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은 자그마치 40여 명이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 가운데 34명이 한국에서 삶을 마감했다. 아베 다케시씨의 소설은 자신의 증조할머니인 한국인 김석현과 증조할아버지인 일본인 고미야 슈지(小宮秀治)라는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일제강점기이다.
 
 2년전 소설 집필 중에 방한한 아베 다케시 씨는 임진각 철로에 증조할머니 고향인 '맹중리'라고 써있는 글씨를 보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단숨에 철길로 내려가 감회에 젖었다.
▲ 아베 다케시  2년전 소설 집필 중에 방한한 아베 다케시 씨는 임진각 철로에 증조할머니 고향인 "맹중리"라고 써있는 글씨를 보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단숨에 철길로 내려가 감회에 젖었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2년전 소설 자료를 얻기 위해 방한한 아베 다케시 씨와 임진각 방문 때 모습, 작가인 아베 다케시 씨, 통역을 맡은 기자, 일본에서 동행한 지인 홍명미 씨(왼쪽부터)
▲ 아베 다케시 2 2년전 소설 자료를 얻기 위해 방한한 아베 다케시 씨와 임진각 방문 때 모습, 작가인 아베 다케시 씨, 통역을 맡은 기자, 일본에서 동행한 지인 홍명미 씨(왼쪽부터)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2년 전 지팡이를 짚은 아베 다케시씨를 철마가 끊긴 임진각으로 안내했을 때 놀랍게도 철길에는 아베 다케시씨가 가보고 싶어 하던 소설의 무대인 평안남도 맹중리(孟中里)라는 지명이 적혀있었다. 아베 다케시씨가 임진각을 찾았던 것은 집필을 시작하고 난 2년 뒤의 일이다. 그 뒤 일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번에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완성한 것이다.

아베 다케시씨가 기자에게 보내온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의 원제목은 따로 있었다. 그는 <일본·조선·식민지이야기(ニッポン、チョーセン、植民地物語)>로 하고 싶었으나 최종 단계에서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로 결정되었다고 아쉬워 했다. 기자는 아베 다케시씨가 보내온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아베 다케시씨는 소설 머리말에서 말했다.

"나는 조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조선어 한마디도 몰랐다. 왜냐하면 당시 일제는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일본인은 조선어를 전혀 배울 필요가 없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어를 몰라도 현지 생활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일본인들은 조선어 존재를 무시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당연하다 보니 조선인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조선인이라는 존재가 의식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아베 다케시씨 역시 그렇게 80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가족사에 등장하는 조선 여인 김석현(증조할아버지의 첩)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이 85살, 고령의 노인이 조선 관련 소설을 쓰게 된 계기였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의 핵심은 작가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고미야 슈지(小宮秀治)라는 인물이 막부말(幕末),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면서 홋카이도에서 조선으로 이주한 뒤, 재조선일본인 4세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조선에서는 14살 소녀(김석현)와의 만남이 소설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무대는 평안남도 정주로 김석현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김인도였다. 김인도는 독립운동가 이승훈 선생의 오산학교에서 공부하여 투철한 민족정신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일찌감치 글공부를 마친 김석현은 일제가 날조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 사건에 아버지를 잃게 된다.

그 일로 어머니마저 몸져눕다가 숨을 거두면서부터 14살 어린 석현의 고단한 삶은 시작된다. 당시 어린 석현이 사는 마을의 가산우체국장으로 부임한 45살의 일본인 고미야 슈지는 작가인 아베 다케시의 증조할아버지다. 증조할아버지는 30살 차이의 어린 조선 소녀 석현을 첩으로 맞아들여 아들 하나를 얻게 되면서 그들과 관련된 조선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1월 17일, 오사카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때 작가인 아베 다케시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아베 다케시 3 11월 17일, 오사카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때 작가인 아베 다케시 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한복과 기모노를 입은 출연진들이 조화를 이룬 출판기념회 공연 모습
▲ 출판기념회 한복과 기모노를 입은 출연진들이 조화를 이룬 출판기념회 공연 모습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아베 다케시씨는 당시 증조할머니인 김석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버지(주인공 김석현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데라우치 총독 암살 날조 사건으로 일제에 원한을 품고 있었을 증조할머니가 일본인 우체국장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 괴로워했을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조선 여인 김석현이 아베 다케시 가문의 호적에 등장하고 있음을 알고 난 뒤 일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이다. 그때 우체국장인 증조할아버지는 일본에 본처가 있었고 본처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상태였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에서 작가는 "일제 침략에 고통을 참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조선인의 마음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러나 고통만을 그린 것은 아니며 일제강점기라는 시간과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김석현(증조할머니) 으로 대변되는 조선인과 재조선일본인 4세 일가의 삶을 조명해보는 게 이 소설의 핵심이다"라고 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실존 인물 김석현(실제 이름)을 비롯한 피붙이 21명과 주변 인물 21명 등장하여 모두 42명의 조선인, 일본인들이 조선땅에서의 삶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시각은 스스로를 조선인 반, 일본인 반으로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시각이란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설 집필 중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느냐는 기자의 이메일 질문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설무대인 북한에 가보지 않고 집필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 당시 조선 총독부 자료와 재일동포 및 한국인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인명, 한국문화, 역사, 한국말 등은 절대적으로 이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이번 소설 집필에 큰 힘이 되어준 재일본한국문인협회장인 김리박 시인의 축사 모습, 모자쓴 이가 김리박 시인이고 그 옆이 작가인 아베 다케시 씨
▲ 아베 다케시와 김리박 이번 소설 집필에 큰 힘이 되어준 재일본한국문인협회장인 김리박 시인의 축사 모습, 모자쓴 이가 김리박 시인이고 그 옆이 작가인 아베 다케시 씨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11월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인천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관장은 "2년 전 방한 때 만난 아베 다케시씨로부터 대강의 소설에 대한 줄거리를 듣고 사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 김석현이 혹시 비극적인 삶을 택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식민지라는 고통의 시대를 극복하는 모습으로 결말을 맺고 있어 다행스러웠습니다. 주인공 김석현이 한국과 일본의 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출판기념회 때 "한복과 기모노 차림을 한 출연진의 공연 등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돋보였으며 한국과 일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일 사이의 우정을 다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건너온 일본인 증조할아버지와 조선인 소녀 김석현과의 만남 그리고 출산 등의 과정과 이들과 관련이 있는 후예들이 살다간 조선 땅을 무대로 펼쳐진 소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은 아쉽게도 일본어로 쓰여 있어 한국인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인 독자를 위해 번역해 보고 싶다.

'이 소설에서 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라는 기자의 누리편지 질문에 아베 다케시 작가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서로 존경하면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물론 그 바탕에 해결되어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안다. 소설 주인공인 김석현이란 인물을 통해 당시 암울했던 조선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나는 실제적으로 조선 여인 김석현의 피는 물려받지 않았지만 그는 엄연한 증조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첩)으로 내게는 증조할머니가 되는 분이다. 그 이유때문인지 나는 내 스스로가 조선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있다. 조선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조선에서 보내고 일본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일본인으로 살아왔지만 조선 여인 김석현(증조할머니)에 대한 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소설을 쓰기로 맘을 먹고 10년간의 자료 수집과 구상을 거쳐 4년 만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라고 했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 아베 다케시(阿部健) 지음, 일본 阿吽社 펴냄, 2018
 
*이 글은 아베 다케시씨가 보내온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기자가 읽고, 작가에게 누리편지 대담을 요청하여 작성한 글이다. 사진 중 출판기념회 사진은 인천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 관장이 직접 찍어 제공한 것임.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아베 다케시, #중천의 반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