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국내 여러 대학에 문화예술경영학과가 만들어지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것은 고(故) 강준혁 선생이 이끌었던 '다움문화예술기획'이었다. 미국 예일대나 UCLA처럼 문화예술경영에 관한 내용을 가르친다는 목적으로 설계된 이 교육과정은 고 강준혁 선생이 국내 문화예술계에 반드시 필요한 커리큘럼이라는 신념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문화예술계에는 다시금 '문화매개행정'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문화예술에 경영적 관점을 도입해 이른바 전문 예술을 효율적으로 기획, 제작, 홍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예술인을 무대 바깥으로 불러내어 시민과 함께 하는 매개자로 양성해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에 부응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탄생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 아래 '문화예술경영을 넘어 문화매개행정으로'라는 대담 기사를 기획·연재한다. 경희사이버대 문화매개행정 전공 강윤주 교수가 만난 두 번째 주자는 문화연대 이원재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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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경영을 넘어 문화매개행정으로" 기획 대담을 진행 중인 경희사이버대 문화매개행정 전공 강윤주 교수(오른쪽)와 문화연대 이원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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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문화연대는 예술인들을 위해 싸워주기도 하고, 또 한국의 올바른 문화정책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애쓰는 단체라고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을 촉구하는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연대에서는 문화매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문화매개'란 과연 무엇인가?"

이원재 "매개라는 개념이나 역할은 일반적으로 문화와 관련해서 '창작자-향유자' 혹은 '공급자-이용자'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많다. 문화에 대한 내발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을 내면화하는 것이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이 매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문화서비스를 공급하거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나 예술의 가치가 발현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각 주체들의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 '매개'라고 생각한다."

강윤주 "문화매개라는 개념이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살짝 추상적일 수 있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보겠다. 앞선 인터뷰에서는 생활문화에서의 생활예술매개자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이 너무 도구화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방금 언급하신 내발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이런 사업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일을 할 때 내발적인 동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건가?"

이원재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예술계 현황을 살펴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20년 동안 많은 문화 정책과 문화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대체로 중앙에서 공급하는 '서비스'의 형태를 띄어왔다. 우리 사회는 유럽처럼 예술가나 시민들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문화 활동을 해왔던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 정치 민주화 등에 집중해왔는데, 사회의 변화에 따라 문화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화 정책이나 사업들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되는데,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혹은 일상적으로 했던 자연스러운 예술이 표현되거나 전달되는 방식보다는 정책이라든지 사업에 의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의지로 만든 정책이라도 정책의 목적에 맞게 창작이나 활동을 하고 또한 공급을 하다 보니 자신들이 수동화되거나 도구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시민 스스로 준비를 하고 고민하거나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공급받는 서비스에 그냥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수동화되거나 단순 이용자가 된다. 나아가 서비스의 편리함을 평가하게 되면서 본래의 문화나 예술의 가치보다는 공급받는 서비스에 대한 질의 평가 이외에는 할 수가 없는 소비자나 민원인이 되어버렸다. 문화와 예술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거나 경험하는 것에 있어 자기 주체성이 생기지 않았다. 

궁극적인 목표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서 삶의 질적인 부분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공급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성 혹은 이해가 내면적으로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예술가나 시민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매개라는 것이 중요하게 부상한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매개자, 매개인력, 매개프로그램 등이 많이 언급되는 이유는 이분법적이고 일방적인 공급과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 혹은 예술의 향유를 필요로 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해내갈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공급-소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윤주 "예술인들이 스스로 도구화되었다고 느끼는, 이른바 '자괴감을 느낀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조심스럽지만 많은 예술인들이 '정책이 예술인을 도구화하는 제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예술인들이 스스로 원하는 방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역량과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서울페이'를 예로 들어보자. 소상공업자가 카드 수수료를 낮추기 위해 서울시가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를 설득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문화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자기가 원하는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쏟는 노력을 보면 예술인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가기 위해 객관적인 언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개라는 것이 삶의 질적 향상이라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좋고 예술인들이 새로운 직업의 영역을 찾으면서 사회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일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좋지만,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정책을 만들기 위한 자신들만의 언어를 발견하는데 있어서도 문화매개라는 영역이 중요하다."

이원재 "보편적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직접 민주주의의 역량이 쇠퇴돼 시민들이 민주주의나 도시 운영에 별로 관심이 없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이다. 문화행정이나 문화예술이 발달해서 관련학과나 전문가들은 많이 만들어져 있으나, 실제 시민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정책이나 최근 많이 언급되는 거버넌스나 협치 등은 아직 덜 발달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매개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화예술을 시민혁명 이후, 보편적으로 많은 시민들에게 공급하려는 정책에 대한 한계의 경험에서 등장하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공급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이 형성돼야 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역량, 스스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주체성이 중요하다. 이런 것이 문화의 민주주의, 매개, 문화적 권리인 것 같다. 

차이점을 보면 유럽과는 달리 우리는 아직 문화예술을 삶의 일부라고 경험하기보다는 경제, 정치 이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어떤 부분에서는 여가, 놀이이지만 어떤 부분에서 존재의 문제다. 정체성, 젠더, 언어 등이 다 문화적인 정체성이다. 아직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굉장히 낮다. 경제발전 이후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 다음인 후순위의 선택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사회적 합의 구조가 유럽과는 다르다. 

유럽은 문화적 권리를 투쟁으로 획득하였지만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이 근대 국가가 만들어져 예술가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도 문화나 예술에 대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사회적 정책의 아젠다 속에서는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통해서 확인하고 소통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윤주 "문화매개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는 것은 예술가들의 자기 권리 획득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개가 연결한다는 뜻인데, 굳이 니꼴라 부리요의 '관계적 미학'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문화나 예술은 관계를 이어주는, 곧 매개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문화매개라는 개념이 확산돼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정책가 사이에 매개적 역할을 하고 예술가 스스로가 예술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매개적 특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보다 매개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원재 "예술가도 예술가이기 이전에 시민이다.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권리가 중요하다. 왜 한국에서 예술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시민권자 역할에서 매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개가 무엇을 연결하는가보다는 처음에 언급했던 내발성이라는 것, 즉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매개가 중요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로 누구와 누구의 타자화의 문제를 떠나 스스로의 내발성과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미 현대 예술이든 사회든 아까 관계의 미학을 말씀하셨지만 커뮤니티 등이 중요해졌고 현대의 많은 문화예술의 창작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상호 이해와 학습이 중요해졌다. 매개는 예술가든 시민이든 어떤 형태의 문화예술의 형식이든 매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강윤주 "앞으로 문화매개적 개념이 확장되는 사회를 위해 문화연대에서도 더욱더 힘을 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