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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고에에서 도쿄로 가는 길
 
아사쿠사역
 아사쿠사역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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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고에에서 도쿄로 가는 길은 기차로 가면 가깝지만, 버스로 가면 멀다. 교통체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버스는 가와고에 서쪽에 있는 간에츠(関越)자동차도(E17) 가와고에 나들목으로 들어간다. 길은 네리마(練馬) 나들목까지 동남 방향으로 이어진다. 네리마 나들목을 나온 버스는 신주쿠(新宿) 방향으로 시내를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미다가와(隅田川)를 건너 아사쿠사(淺草)역 앞에서 내린다.

시간이 5시 25분이다. 이제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갈 예정이다. 우형택 지부장이 미리 예약을 해 놓지 않아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간다. 잠시 기다리자 얼큰한 탕과 밥이 나온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워선지 다들 맛있게 먹는다. 닛코와 가와고에에서의 중요한 일정을 마쳤기 때문에 맥주와 소주도 한 잔씩 곁들인다. 생맥주도 좋고 고구마로 만든 가고시마 소주도 좋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그곳의 술(地酒)을 선호한다.
 
아사쿠사의 인력거
 아사쿠사의 인력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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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니 6시 40분쯤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1시간 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아사쿠사의 상징 센소지((淺草寺)를 둘러보기로 한다. 그런데 로밍을 해오지 않아 구글 지도를 볼 수 없다. 다행히 신석호 부회장이 휴대용 와이파이를 빌려준다. 구글 지도를 확인하니 센소지가 바로 옆이다. 이제 나는 여유를 가지고 센소지로 향한다. 센소지 야경을 보기 위해. 밤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밤에 찾아간 센소지 야경
 
호조몬
 호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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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니 우리가 저녁을 먹은 곳에서 센소지까지 5분도 안 걸리겠다. 나는 센소지 입구에 해당하는 가미나리몬(雷門)을 찾아 간다. 가미나리몬은 후라이진몬(風雷神門)의 준말이다. 비바람을 몰고 오는 신이 센소지를 지키는 개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덴보인도리(伝法院通リ)가 나온다. 이 길은 에도시대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상점가다. 밤이라 그런지 대부분 문을 닿았다. 나는 센소지 호조몬(寶藏門)으로 직행한다.

호조몬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금강문(金剛門) 또는 인왕문(仁王門)이다. 1층 문 양쪽에서 두 명의 금강역사가 무서운 모습으로 절에 들어가는 사람을 감시한다. 2층 누각에는 센소지(淺草寺)라는 편액이 상하로 길게 걸려 있다. 금룡산(金龍山) 센소지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천태종 계열의 절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성관음종(聖觀音宗)의 본산으로 분파되어 나왔다. 그 때문에 본당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본당(관음당)
 본당(관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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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소지는 헤이안(平安)시대 창건되었다고 하나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가마쿠라(鎌倉)시대다. 그리고 절이 번성한 것은 159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센소지를 기원소로 정하면서부터다.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3대 쇼군 이에미츠의 지원 덕분이다. 이때 오중탑과 본당이 재건되었고, 관음영장(觀音靈場)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685년에는 절 밖으로 오모테산도(表參道)가 조성되어 상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나카미세(仲見世)로 발전하게 된다.

1700년대에는 절의 서쪽에 오쿠노도리(奥の通リ)가 생겨났고, 이 지역을 오쿠야마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거리공연이 이루어지는 등 서민들의 풍류와 오락장이 되었다. 1842년에는 에도 3좌로 유명해진 시바이고야(芝居小屋)가 아사쿠사로 이전하기도 했다. 메이지시대 들어 이곳에 근대적인 상업시설과 오락시설이 들어섰다. 1873년에는 아사쿠사가 공원으로 지정되고, 1885년에는 나카미세에 벽돌로 지은 상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오중탑
 오중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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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동대지진으로 아사쿠사 지역이 피해를 입었고,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본당인 관음당과 오중탑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1958년 본당이 가장 먼저 재건되었고, 1960년대 들어 가미나리몬과 호조몬이 재건되었다. 오중탑은 가장 늦은 1973년에 재건되었다. 센소지는 가미나리몬, 나카미세, 호조몬, 본당으로 이어지는 남북축을 중심으로, 동쪽에 신사가 서쪽에 공원 겸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절의 북쪽에는 병원도 있다.

밤에 빛나는 전각은 호조몬, 본당, 오중탑이다. 그중에서도 오중탑이 가장 빛난다. 그것은 탑이 상하로 높기 때문이다. 센소지탑은 942년 삼중탑으로 처음 건립되었다고 한다. 1648년 현재와 같은 오중탑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어 1973년 철근콘크리트 탑으로 재건되었다. 5m의 기단 위에 48m의 탑을 올려 총 53m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탑의 최상층에는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기린과 비룡
 기린과 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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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아사쿠사 신사는 법당에 비해 어두운 편이다. 아사쿠사 신사에는 센소지를 창건하는 데 관련된 세 명의 곤겐(権現)을 모셨다고 한다. 그들이 아타이 나카토모(真中知), 하마나리(浜成), 다케나리(竹成)다. 그런데 신사 배전 벽에 그려진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다. 신령스런 동물들로 상상의 동물이다. 기린(麒麟)과 비룡(飛龍)과 봉황(鳳凰)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린은 몸뚱이는 사슴이고, 머리는 승냥이고, 꼬리는 소고, 다리는 말이다. 머리에 뿔까지 나 있는 특이한 형상이다. 기린은 어진 임금이 나올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룡은 몸뚱이는 물고기고, 머리는 용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용과는 달리 몸통이 아주 짧다. 여기에 날개가 달렸으니 익룡(翼龍)이라 부를 수도 있다. 수중세계를 관장하는 동물이다. 봉황은 천자의 출현을 알리는 성스러운 새로 알려져 있다.

낮에 찾아간 센소지 풍경
 
낮에 본 오중탑
 낮에 본 오중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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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니 어젯밤 아사쿠사에서 우익단체인 '신사회운동'이 한국과의 단교를 외치며 행진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요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정부의 성명과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자극 받은 우익단체들 역시 집회를 열고 가두행진을 하는 등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아침에 센소지를 방문한다. 그것은 밤에 이곳을 방문하지 않은 회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낮에 다시 센소지를 방문하니 밤에 잘 보이지 않던 건물들이 보인다. 그리고 밤에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한 서쪽 공원과 정원의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밤에는 조명에 따라 시선이 가지만, 낮에는 특색 있는 구조물로 눈이 가기 때문이다. 호조문으로 들어가는 길가 나카미세 상가들도 이미 문을 열었다. 우리는 호조문을 지나 본당으로 향하며 오중탑을 쳐다본다. 호조문 앞에서는 단체사진도 한 장 찍는다.
 
본당의 정면
 본당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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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들 건물은 어제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충대충 보게 된다. 본당에 이르니 향을 피우고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본당 정면 양쪽 기둥에 불신원만무배상 시방래인좌대면(佛身圓滿無背相 十方來人坐對面)이라는 주련이 걸려 있다. 부처님이 원만한 분이라서 결코 배신할 상이 아니니, 온 세상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마주 앉아 있는 거라는 뜻이다. 벽위에 시무외(施無畏)라는 편액이 보인다. 부처님이 중생을 보호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준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 없이 절 안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본당 앞에는 비둘기 노래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심상소학교 1학년용 창가로 '비둘기 뽀뽀(鳩ぽっぽ)'다. 콩을 나눠먹으며 사이좋게 노는 비둘기를 노래했다. 또 다른 청동작품으로 '자비로운 구름의 샘(慈雲の泉)'이 있다. 동양의 로댕이라 불리는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1883-1963)의 유작 '구름(雲)'을 토대로 분수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비로운 구름의 샘(慈雲の泉): 조각
 자비로운 구름의 샘(慈雲の泉):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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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형물 외에 공원과 정원을 둘러본다. 도쿄 도심 한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흐르고 있다. 물 위로는 다리까지 놓여져 있다. 조그만 공간만 있으면 정원을 꾸미는 일본사람들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이곳 정원 안에는 영향당(影向堂)라는 법당도 보인다. 영향당에는 성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아미타여래 대일여래 등 여덟 분의 불상이 더 모셔져 있다. 영향당 옆에는 육각당(六角堂)이 있다. 육각당은 무로마치(室町)시대 건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제 서쪽 참도 쪽으로 나간다. 나가면서 평생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앞장선 사회사업가 우류 유와코(瓜生岩子: 1829-1897) 할머니 동상을 살펴본다. 서참도에는 제례에 필요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 많다고 한다. 센소지에서 연중 행사와 제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마쿠사 특산 빵을 하나씩 맛보며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로 간다. 히가시혼간지는 통신사로 도쿄에 온 우리 선조들이 묵은 절이다.
 
서참도: 히가시혼간지 가는 길
 서참도: 히가시혼간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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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소지에서 히가시혼간지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간다. 거리가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신사들이 센소지에 묵은 적은 없을까? 자료를 확인해 보니 우리 사신들이 묵은 곳이 히가시혼간지다. 당시 절이 워낙 커서 삼사가 모두 그곳에 묵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관소인 히가시혼간지로 가기 전 꼭 지나간 곳이 바로 금룡산 센소지였다.

태그:#센소지, #호조몬, #본당(관음당), #오중탑,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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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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