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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는 쉼 없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바로 '시민기자'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시민기자들이 저마다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이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을까요? 그 노하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밤에도, 낮에도, 도로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폭염에도,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도. 설사 자신의 글이 정식 기사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쉽사리 펜을 내려놓지 않는다. 고치고 또 고쳐서 다시 보낸다. 직업도 아니고 떼돈을 벌어다 주는 일도 아닌데, 매일 성실히 글을 쓴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2017년 6월 취재기자에서 에디터로 직무가 바뀐 뒤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이다. 하루 8시간 동안 글을 검토하고 처리했는데, 다음 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시민기자들이 보낸 글이 또다시 잔뜩 쌓여 있었다.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취재 부서에서 일할 때는 시민기자의 글을 굳이 챙겨 읽지 않았다. 숙련된 언론인의 기사를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시민기자의 글을 보는 게 업무가 되면서 그것들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고, 내가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검증된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줄 수 없는 무엇이 시민기자의 글에는 있었다. 서툴지만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 청년의 사기를 북돋우는 공익 광고에서나 볼 법한 '열정'이란 두 글자가 그들의 문장에서 느껴졌다. 삶의 우여곡절을 다 겪어냈지만, 여전히 뜨거운 어른들.

무엇이 그들을 쓰게 만들었을까.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쉼 없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물음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1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성 기사(사는 이야기·여행·문화·책동네)를 보내는 시민기자를 중심으로 매달 한 명씩 인터뷰했다. 총 13명의 시민기자를 만났는데, 사연과 배경은 제각각이었지만 글쓰기에서만큼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① 글 쓸 시간을 확보한다
 
왼쪽부터 이혜선, 지유석, 이명수 시민기자
 왼쪽부터 이혜선, 지유석, 이명수 시민기자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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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터뷰 주인공인 이혜선 시민기자는 '살기 위해 썼다'고 고백했다. 연년생인 두 아들을 키워내는 일은 사투에 가까웠고, 나라는 사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비워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고, 글쓰기의 효능감을 체감하면서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문제는 시간. 직장맘인 이혜선 시민기자는 회사 일과 육아만으로 이미 하루가 포화 상태였다. 취미나 자기계발에 투자할 여유는 전무했다. 새벽 글쓰기를 택한 이유다.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글쓰기를 하루의 가장 맨 앞에 배치한 것. 그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켰다.

'초보아빠의 육아일기'를 연재하는 박현진 시민기자도 일과 학업, 육아 세 가지를 병행하다 보니 꾸준히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는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익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신속하게 완성하려면 미리 준비해둬야 했다. 수업 쉬는 시간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쓰고 싶은 글의 목차나 개요, 키워드를 정리해놨다.

지유석·김용만·이용준 시민기자 역시 본업과의 병행을 위해 자기만의 규칙을 정해두고 글쓰기에 도전했다고 한다.

시민기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에 투입할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했다. 글을 쓰는 일보다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더 견딜 수 없어서다. 간절함이 그들을 책상 앞으로 이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지만, 중요한 하나가 더 있다. 글은 시간으로 쓴다.

② 쓰기 전에 가득 채운다
 
왼쪽부터 김용만, 신소영, 홍윤호 시민기자
 왼쪽부터 김용만, 신소영, 홍윤호 시민기자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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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시간을 확보하더라도 도무지 쓰지 못할 때가 있다.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것이다. 시민기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차오르지 않으면 쏟아낼 수 없다고.

홍윤호 시민기자는 국내여행과 문화유산 답사를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그는 머릿속에, 마음속에 차고 넘칠 때까지 읽고, 보고, 걸었다. 새해를 맞이하며 1년 동안 취재할 여행지를 계획했고, 자료를 조사하며 동선을 구체적으로 짰다. 여행을 가서도 글에 쓸 만한 것들을 얻기 위해 현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묻고 기록했다. 쓰는 사람이 정보와 글감을 최대로 모아야 글에 충실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행기는 나의 여행담을 글로 옮긴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 여행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여행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공적·사회적 의미도 있습니다. (...) 알고 보면 여행작가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총합입니다. 돌아다니기만 해서도 안 되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아빠와 함께 쓰는 파리여행기'를 연재한 강재인 시민기자는 쓰고자 하는 글이 무엇인지 윤곽을 잡기까지 일단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여행 석 달 전부터 관련 서적을 30권가량 열독했고, '파리의 예술과 낭만, 문화'라는 주제를 정한 뒤에는 여러 자료를 비교 검토하며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려 노력했다. 쓰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할 것은 '인풋(input)'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하므로,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글을 써내야 한다. <쓰기의 말들> 저자인 은유의 말처럼, '일용할 양식'을 글로 한 접시 차려냈는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좋은 글에는 현란한 수사와 비유보다 충실한 정보와 관점이 담겨 있다. 쓰기 전에 채워야 한다.

③ 책을 읽는다
 
왼쪽부터 박초롱, 박현진, 문하연 시민기자
 왼쪽부터 박초롱, 박현진, 문하연 시민기자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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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건 아주 기초적인 행위다. 운동선수가 매일 근력운동을 하고, 화가가 미술 작품을 공부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독서는 쓰는 사람에게 일종의 트레이닝이다.

독립잡지 <딴짓>을 만들며 <오마이뉴스>에서 '프로딴짓러의 일기'를 연재 중인 박초롱 시민기자는 삼시 세끼 밥을 챙겨 먹듯 독서만큼은 매일 빼먹지 않는다. 특히 박초롱 시민기자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방향과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읽으며 단련한다고 했다.

"좋은 글을 계속 읽지 않으면 나오는 글도 좋지 않아요. 계속 바쁘게만 살면 글이 교조적으로 흐르더라고요. 책을 읽으면 중심을 잡게 되죠."

이명수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활자 중독이라고 평가할 만큼 독서광이지만, 다독파가 아닌 숙독파다. 한때는 닥치는 대로 읽어치웠지만, 잡식성 독서로는 얻는 것이 적다는 걸 깨닫고 책 읽는 습관을 바꿨다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욕심을 절제하며 한 달에 한 권 정도만 읽는다. 대신 좋은 책을 만나면 읽고 또 읽는다. 심지어 17번을 반복해서 읽은 책도 있다.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

④ 고치고 또 고친다
 
"저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쪽을 39번이나 다시 썼습니다. 제가 만족할 때까지요." - 어니스트 헤밍웨이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퇴고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생각을 벼리고 문장을 대패질할수록 좋은 글이 완성된다는 것.

'비혼일기'를 연재 중인 신소영 시민기자는 글을 쓸 때 A4용지 2장 분량으로 완성한다.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알맞은 분량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자신과 약속한 분량을 지키기 위해 퇴고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어떤 글이든 기본 대여섯 번은 다시 고친다. 처음 쓸 때는 완벽해 보이던 글도 사흘 정도 묵혀둔 후에 다시 보면 다듬을 곳이 나온다고.

신소영 시민기자의 퇴고법은 나름의 매뉴얼이 있다. 일단 초고를 쓸 때는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간 뒤, 한 문장씩 읽어가며 분량에 맞게 고치고 뺀다. 쉽게 써지지 않은 글은 일주일 동안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아무리 봐도 뺄 게 안 보일 때는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본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균형 있게 녹아 있는지, 흐름에 안 맞게 튀는 문단이나 문장은 없는지. 분량이 줄여지지 않을 때는 소리 내어 읽어본다. 문장과 문장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지, 호흡이 잘 맞는지를 파악한다.

'현란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가'로 글의 성패가 갈리진 않는다. 불필요한 문장이 얼마나 적은가. 그게 글의 핵심이다.

⑤ 일단 시작한다
 
왼쪽부터 이용준, 강재인, 송주연, 강대호 시민기자
 왼쪽부터 이용준, 강재인, 송주연, 강대호 시민기자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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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시민기자는 50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뒤늦게 찾아온 열정이 그에게 글감을 불어넣었다. 집 앞 탄천에 나가 오리 관찰한 이야기, 초보 시아버지의 다짐, 중년의 공부, 퀸 신드롬에 대해 썼다.

친구들은 "나이에 안 어울리게 웬 소년 감수성이냐"라며 '갱년기 보이', 줄여서 '갱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는 계속 나아갔다. 지금보다 더 나이 들었을 때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문하연 시민기자의 유년 시절 꿈은 작가였지만,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대학은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간호사로 일했고,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아내와 엄마로 살았지만, 글을 향한 마음만큼은 잃지 않았다. 오십을 앞둔 나이. 일기장에, 수첩에 고이 담아두기만 했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오마이뉴스>에서 '명랑한 중년'과 '그림의 말들' 연재를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이기에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글쓰기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나이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나이와 직업, 공간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게 글쓰기의 매력이라고.

"젊든, 나이가 들었든, 망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망하면 마음이 아프고 좌절하게 되는데, 그래야 다시 일어나고 사람이 단단해져요. 두려워서 도전을 안 하면 단단해질 기회조차 오지 않아요. 만약 지금은 도전할 여력이 안 된다면 그 열망이라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해요. 놓지 않으면 기회는 언젠가 오니까요."

*인터뷰 기사 목록(연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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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글쓰기, #시민기자, #나는어떻게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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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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