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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공사 당시 세종보 상류에 묻힌 마대자루와 천막을 수거하기 위해 대형 중장비 3대가 강바닥을 파헤치면서 주변 강물이 온통 흙탕물이다. ⓒ 김종술
  
지난해 12월 초 여느 때처럼 모니터링을 위해 세종보를 찾았다. 수력발전소가 있는 우안으로는 진입이 어려워 물고기 어도가 있는 좌안으로 접근해서 보 가까이 들어갔다. 평소처럼 눕혀진 보에 걸린 쓰레기를 하나둘 걷어내며 상류 70~80m 부근에 새롭게 생겨난 물가를 따라 걸었다.
 
자갈과 모래가 들어온 이곳은 웅덩이처럼 변해 있었다. 물과 맞닿아 있는 지점마다 누런 끈들이 나풀거렸다. 호기심이 발생 모래와 자갈을 걷어내자 농작물과 공사용 자재로 사용하는 마대로 보이는 것들이 묻혀 있었다. 위쪽 주둥이 부분은 굵은 밧줄로 묶어 놓은 것부터 터지고 헤진 모습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까지 다수가 발견됐다.
 
차량에 싣고 다니는 삽을 가져다가 파보았다. 딱딱한 자갈을 걷어내자 쌀을 담아 쌓아 놓은 듯 층층이 쌓은 마대자루들이 드러났다. 1~1.5m가량 파 내려가자 마대자루 밑에 또 다른 마대자루가 있었다. 이틀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주변을 파헤치고 나서야 4대강 공사 때 임시물막이용으로 쌓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파봤더니...  
 
세종보 상류 7~80m 지점에 새롭게 생겨난 웅덩이 주변으로 4대강 공사 당시 철거되지 않았던 자재들이 보이고 있다. ⓒ 김종술
 
4대강 사업으로 세종보가 건설되던 2010년 비행기를 타고 찍은 세종보 사진. 공사가 진행중인 세종보 주변을 빙 둘러서 마대자루로 쌓아 놓았다. ⓒ 김종술
 
2010년 4대강 사업 당시 비행기를 타고 찍었던 항공사진과 대조한 뒤 준공 전 공사자재를 제대로 철거하지 않고 강에 묻어 버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12일 첫 기사(관련 기사 : 세종보에 나타난 마대자루 수십 개... 이게 무슨 일?)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세종보를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는 "준공 후 상류에서는 임시물막이 공사를 하지 않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철거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4대강을 관리하는 국토부 산하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며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녹색연합과 대전충남녹색연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파악한 마대자루만 130개, 추정치는 최소 1만 개였다. 그제서야 정부가 움직였다. 국토부 담당자는 "(4대강 사업) 당시 임시물막이 때 철거가 안 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하자보수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토부가 시공사와 논의해 서둘러 마대자루를 제거한 뒤 이 사안을 12월말까지 덮으려고 한다는 제보를 받았다. 추가 취재 후 정밀 현장조사를 하는 한편 하천법에 따라 하천전용 허가 및 공사 계획를 세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후 정부는 임시로 민관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섰다.

대우건설은 "시간이 부족해서 공사용 자재를 철거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세종보 상류를 가로질러 300m 2열로 600m정도에 마대자루만 약 2400개 매몰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미철거된 공사용 자재(톤마대와 천막)를 표면의 노출된 부분 이외에 매몰 부분까지 철거하겠다고 했다.

세종보, 애물단지에서 희망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중장비로 파헤친 세종보 강바닥에서 4대강 공사 당시 묻었던 임시물막이 공사용 자재가 수거되고 있다. ⓒ 김종술
   
최첨단 가동보라는 정보의 홍보와는 다르게 툭하면 고장 나서 수리를 해야 하는 고물로 전략했다. ⓒ 김종술
 
지난 10일 본격적으로 제거작업이 시작되면서 강바닥에 묻혔던 마대자루와 마대자루를 감싸고 있던 파란색 천막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오랫동안 수장돼 있던 마대자루는 뭍으로 올라오기 전부터 터지고 찢어졌다. 개수를 헤아리려는 애초 계획은 사라지고 톤마대(마대자루에 모래 등을 채워 임시물막이로 사용한 것)에 담은 수거량으로 묻힌 정도를 확인해야 했다.

이 작업은 1월 13일까지 이어졌고, 모두 37개의 톤마대가 수거됐다. 개당 1톤씩 잡더라도 약 37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공사자재가 묻혀 있던 것이다. 14일 민관조사단은 세종보를 돌아본 뒤 100% 만족할 수 없지만, 육안상 얼추 수거한 것으로 판단했다. 강바닥에서 제거한 공사자재들은 세종보 하자 보수 후 폐기물 처리하기로 정리됐다.

기자는 2009년 4대강 사업이 시작된 뒤 1년에 300일 이상은 강을 찾고 있다. 특히 세종보는 일주일에 2~3차례씩 둘러본다. 이곳은 4대강 16개 보 가운데 가장 먼저 착공해서 가장 빠르게 준공한 곳이다. 정부는 세종보를 최첨단 가동보라고 추앙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세종보는 말썽꾸러기, 애물단지였다. 시민단체들은 준공 전부터 툭하면 고장 나는 이곳을 '세금 잡아먹는 하마'라고 비판했다. 또 흐르던 강물이 막히면서 시궁창에서나 사는 실지렁이, 붉은깔다구가 득실하고 여름이면 녹조가 창궐해 각종 민원이 빗발치는 곳이 세종보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세종보의 수문이 다시 열렸다. 빠른 물살은 상류의 고운 모래와 자갈을 하류로 옮겨왔다. 크고 작은 모래톱과 웅덩이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자취를 감췄던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낮은 여울에 살아가는 왜가리, 백로, 물떼새가 찾아들었다. 고라니, 너구리, 삵, 수달 등 상위포식자도 하나둘 포착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진풍경을 즐기며 예전 금강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꿈꾸기도 했다.

죽은 강들을 되살리는 길    
 
지난해 세종보 수문이 개방되고 생겨난 모래톱에 모래지표종인 꼬마물떼새가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 꼬마를 ‘희망’이라 부른다. ⓒ 김종술
 
그러나 '마대자루의 발견'은 수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강을 되살리기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줬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마대자루는 물 속에서 썩고 삭아 내리면서 수생태계와 해양생태계를 망가트렸을 것이다.

"세종보뿐이겠냐"는 의문도 남는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제대로 제거 못한 공사 자재 문제를 이 기회에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취재하며 많이 접했다. 환경단체는 이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무려 37톤 가량의 '쓰레기'를 강 속에 묻어버린 시공사,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준공을 내준 국토부 담당자 등의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강을 되살리는 길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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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사업, #세종보, #공사용 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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