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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티모시 테일러는 경제학 입문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묻는다고 한다. 현재의 7만 달러와 1900년의 7만 달러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언뜻 보면, 이 문제는 마치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전적인 질문처럼 보인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1900년 7만 달러의 현재 가치는 2백만 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1900년에는 온 가족이 먹을 분량의 소고기도, 2주일 동안 먹을 빵도 1달러만으로 살 수 있었다. 그 당시 연봉이 7만 달러였다면, 대저택에 살면서 하인들을 거느렸을 것이다. 하지만 1900년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심지어 TV도 없었다.

오래 전에, 'Victorian Heyday(빅토리안 헤이데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영국인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향수를 못 잊는 듯하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서, 마음 먹으면 어디든지 영국 여권을 가지고 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던 시절. 세계를 호령하기는커녕 유럽에서조차 다른 나라들에 뒤처지는 지금의 영국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부러워할 만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것이 그 책의 물음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우선 상하수도가 변변치 못했다. 그래서 돌림병을 조심해야 했다. 냉장고도 슈퍼마켓도 없어 신선한 먹을거리도 구하기 어려웠다. 50만 인구의 런던에는 10만 마리의 말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말들은 한 마리당 하루에 16kg의 대변과 4리터의 소변을 런던 시내에 뿌려댔다. 그런데도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가고 싶을까?

빛의 가격

<경제학 팟캐스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가 1990년대 중반 발표한 유명한 연구를 인용한다. 그것은 빛의 가격에 관한 것이다. 양초조차 없던 원시 시대, 우리 조상이 주당 6일, 하루 열 시간 동안 땔감을 구하면 오늘날 전구가 겨우 54분 동안 방출하는 빛과 같은 양의 빛을 얻을 수 있었다.

양초와 등잔이 발명되어 조명 효율은 훨씬 개선되었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1743년에 쓰인 어떤 사람의 일기를 보면, 그는 6개월 동안 쓸 양초 35kg을 만들기 위해 이틀을 꼬박 가족과 함께 노동을 했다고 나온다.

19세기에는 향유고래에서 채취한 경랍으로 양초를 만들면서 사정이 더욱 나아졌다. 하지만 경랍 양초는 비싼 물건이었다. 더구나, 양초 하나로는 겨우 다섯 시간 동안 빛을 낼 수 있을 뿐이었다.

1900년 토머스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발명하면서 빛의 가격은 극적으로 떨어졌고, 1920년에 텅스텐 필라멘트가 발명되면서 누구나 값싼 조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60시간의 노동으로 원시 시대에는 겨우 54분 동안 전구를 켜는 정도의 빛을 얻었지만, 오늘날에는 52년 동안 쓸 빛을 살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빛의 가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떨어지는 중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소비자물가지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는 한다. 물가를 측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성하는 상품 바스켓의 문제를 시시콜콜 설명하고 난 뒤에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효율의 문제다. 가격 변화만 측정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상품 질의 개선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나의 첫 컴퓨터였던 애플2. 램이 48'킬로바이트'였다. 나중에 16kb 램을 사서 업그레이드했다.
 나의 첫 컴퓨터였던 애플2. 램이 48"킬로바이트"였다. 나중에 16kb 램을 사서 업그레이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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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애 처음으로 샀던 컴퓨터의 가격은 5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두 번째로 가지게 된 컴퓨터는 약 150만 원 정도였으니, 가격이 무려 세 배나 올랐다. 그렇다면 물가가 그 동안 세 배로 뛰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가격이 세 배였던 그 컴퓨터의 메인 메모리 용량은 내 첫 컴퓨터의 천 배 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옛날 이야기다. 지금 150만 원짜리 컴퓨터는 그 컴퓨터보다도 약 250배 더 많은 램을 달고 나온다.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빛의 가격이라는 사례를 들어 물가지수의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상품 자체보다는 그 상품으로부터 얻는 효용의 가격을 측정해야 진정한 물가지수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발명은 진보인가

책 <경제학 팟캐스트>의 원제는 <현대 경제를 만든 50가지 발명>이다. 현대 경제를 흥미롭게 설명할 수 있는 발명 50개를 선정했다고 한다. 중요도에 따라 선정한 것이 아니라서 인쇄기는 빠져 있지만, 유연휘발유는 포함된다. 저자가 책 서두에 맨 처음 소개하는 발명은 쟁기다. 모종의 이유로 현대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잿더미에서 다시 인류 문명을 이루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도구는 아마도 쟁기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는 사람들이 발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도 많이 들어 있다. 여권, 복지국가, 시장조사, 조세 천국, 인덱스펀드 등이다. 유연휘발유처럼 결국에는 해로운 것으로 판명 난 발명도 있다. 유연휘발유를 만든 토머스 미즐리는 나중에 프레온 가스도 발명했다. 발명가로서는 대단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인류에게 해가 되는 물건만 만들었다. 디젤 엔진을 만든 루돌프 디젤은 빚에 쪼들려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레이더는 유용한 기술이지만, 살인광선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태어났다.
  
경영 컨설팅과 시장조사가 기업 생산성과 소비자 이익을 증진했다는 팀 하포드의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암세포도 우리 몸의 일부라는 식의 이야기라면, 과연 경영 컨설팅과 시장조사, 인덱스펀드는 현대 경제를 만든 발명 목록에 들어갈 만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이 목록에 들어갈 발명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지식재산권의 지역별 소진 원칙은 21세기에도 빈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허덕이고, 문화에 목마르게 만든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도대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기이한 시스템이라고 평가하는 변동환율제는 튤립 버블 당시의 폭탄 돌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양적 완화, 그리고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조세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금융위기를 촉발한 '자산담보부 채권 쪼개 팔기'도 '현대 경제를 만든 발명'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비만 약 개발에는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어도, 아프리카에서 당장 수백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말라리아 백신 개발은 외면하는 현대 제약 연구개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관찰하기

팀 하포드의 책을 읽다 보면 그는 경제학자라기보다는 입담 좋은 칼럼니스트 느낌이 든다. 팀 하포드의 유명한 책, <경제학 콘서트>의 원제는 <잠복 경제학자>다. 경제학과는 거의 상관이 없지만, 그가 쓴 책이고, 때마침 팟캐스트가 유행하는 시절이라 <경제학 팟캐스트>라는, 원제와는 상관이 1도 없는 제목으로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팀 하포드는 51번째 발명으로 '낚시 마케팅'을 꼽았을지도 모른다.

토머스 미즐리는 유연휘발유의 무해성을 강조하고자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의 발명품에 손을 씻어 보였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그는 제품 개발에 오랜 시간 매달리면서 납중독에 걸렸던 사실을 숨겼다. 철조망은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듯, 아이폰은 열두 개의 핵심 발명 덕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데, 그 중 상당수는 미국 국방부가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팀 하포드는 50개의 발명 목록 마지막에 전구를 배치했다. 그야말로 희망의 빛으로 책을 맺는다. 기술 발전 덕택에, 우리는 단 1초의 노동으로 원시 시대 우리 조상이 60시간 동안 노동해야 얻을 수 있었던 수준의 빛을 얻을 수 있다.
 
멕시코의 '피소 피르메' 캠페인. 가정집에 콘크리트 바닥을 마련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빈민층의 보건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멕시코의 "피소 피르메" 캠페인. 가정집에 콘크리트 바닥을 마련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빈민층의 보건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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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피소 피르메(Piso Firme)'라는 사회 프로그램을 보면, 콘크리트라는 물질이 빈곤 퇴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놀라울 나름이다. 현대인들 중 콘크리트라는 말을 듣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것 같은 발명이, 한때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주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토머스 미즐리도 오존층을 파괴하려고 프레온 가스를 만든 게 아니다. 보험은 근본적으로 도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대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한 기둥이다. 현대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회에도 문제점은 있다.

어떤 발명은 선한 의도에서 나오지 않았고, 어떤 발명은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런 발명들도 역사의 진보의 한 모습이라고 나는 믿는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는 길에, 어떤 발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찬찬히 짚어 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태그:#잡식성 책사냥꾼, #팀 하포드, #경제학 팟캐스트, #경제학 콘서트,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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