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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할레오(존 싱어 사전트,1882,이자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엘 할레오(존 싱어 사전트,1882,이자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 이자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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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네츠 소리, 현란한 기타소리, 박수를 치며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오른 쪽 끝, 손을 든 여인들 입에서 '할레오'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시각적으로도 역동성을 지닐 뿐 아니라 온갖 사운드가 지원되는 음악적 요소가 풍부하다. 무대 아래서 쏘아 올리는 조명 탓에 손에 쥔 치마 자락은 음영의 깊이가 깊어져 생동감이 느껴지고 춤을 추는 여인의 그림자는 벽으로 확대되어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악기를 무릎에 올리고 관중을 바라보는 남자, 박수를 치는 남자, 빈 의자와 그 위 벽면에 걸린 기타 두 개, 기타 치는 남자 둘, 심지어 머리를 위로 꺾고 잠이 든 남자, 그 옆으로 열심히 환호하는 남녀 셋. 빛과 어둠 속에 자칫 칙칙해 보일 수 있는 그림을 의자 위 오렌지와 마지막 손을 들고 있는 여인의 오렌지 색 드레스가 살렸다. 이 지나치지 않는 오묘한 깔맞춤.

무대 중앙에서 몸을 뒤로 젖힌 채 오른 쪽으로 걸어가며 무아지경에 빠진 채 춤을 추는 매력적인 여인이 압권이다. 이 춤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무용인 플라멩코다. 한 번 보면 혼을 쏙 빼 놓는 춤.

누군가는 춤을 추는 여인은 위험하다고 했다. 춤을 추면서 느끼는 기쁨이 금지된 다른 욕망의 문을 열지도 모른다며. 여인의 춤 속에는 억압하고 규제하려는 힘과 억압을 벗어나 기쁨을 누리고 기꺼이 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망이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신성림) 참고) 그래서 여자는 춤을 욕망하고 남자는 춤추는 여자를 욕망하나 보다. 이 그림은 마치 숨겨둔 내 마음 속 욕망의 문을 여는 그림 같다.

청출어람의 탄생

이 그림은 존 싱어 사전트(1856-1925)가 그린 <엘 할레오>라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스페인 댄서>라고 번역된 그림인데 '할레오'란 말은 성원이나 갈채를 뜻한다. 우선 이 그림은 크다. 348*232cm. 웬만한 거실 벽면 한 쪽을 다 채우는 크기다. 사전트는 스페인 여행에서 본 이 장면을 기억했다가 파리로 돌아와 무려 3년 동안 정성을 들여 완성했고 파리 '살롱전'에서 입상했다. 그의 나이 겨우 26살.

사전트는 외과 의사 어버지와 아마추어 화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밑에는 두 여동생이 있다. 어머니가 거부의 딸이었기에 사전트는 평생을 유복하게 살았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런던에서 생을 마감한 미국인이다. 태생부터 코즈모폴리턴.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그는 17세까지 이탈리아에 살면서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문화적 예술적 견문을 넓혔다. 홈스쿨링으로 영어는 기본에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에 능했으니 국제적인 화가가 되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1874년, 18세가 되던 해에 파리로 건너간 그는 본격적인 미술작업에 착수한다. 유명한 공립 미술학교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하고 당시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오귀스트 카를로스 뒤랑'의 제자로 들어가는데, 이 시기는 파리에서 제1회 인상파 전시가 열린 역사적인 해이다. 그는 이곳에서 모네와 친교를 맺고 몇 년 후, 모네가 북 프랑스 작은 마을 '지베르니'로 가서 인상파 화가들을 이끌 때 그도 그곳을 4번에 걸쳐 방문하며 인상주의 화풍을 연구했다.

청출어람이란 말은 그를 두고 한 말. 4년 후인 1878년 사전트는 풍경화 <깡깔르의 굴채집자>라는 작품으로 파리 '살롱전'에서 장려상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스승인 뒤랑의 초상화를 그려 심사위원상을 받는다. 무려 3000대 1의 경쟁을 뚫고. 1889년, 사전트는 스승보다 한 해 앞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의 훈장인 '뢰종 도뇌르'를 수여 받는다. 물론 다음 해에 뒤랑도 같은 훈장을 받는다.

스승의 초상화는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많은 초상화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스승의 조언에 따라 스페인을 여행하며 프라도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명작을 모사한 그림도 유명하지만 그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이란 작품도 그 구도나 색채 면에서 기가 막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런 이유로 두 그림을 나란히 전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스페인을 여행하며 그가 기억 속에 저장한 장면이 바로 <엘 할레오>이다.

당대 최고 미인의 선택... 그리고 예상치 못한 좌절

자신의 존재를 한 단계 높이고 싶었던 사전트는 기념비적인 초상화를 그리려고 모델을 탐색하던 중 한 여인을 보게 된다. 첫눈에 반한 사전트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녀에게 다가가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소원했고, 결국 그녀를 설득했다.

그녀는 바로 당대 최고로 아름답다고 소문 난 고트로 부인이다. 어린 시절 파리로 건너온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의 그녀는 부유한 은행가 피에르 고트로와 결혼했다. 많은 화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그리고 싶어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던 그녀는 사전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능력치를 실험해 보고 싶은 화가와 자신의 미모를 만방에 알리고 싶은 모델간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초상화 주문을 받고 그린 작품이 아니라 화가의 요청으로 제작된 특이한 이 그림은 제작과정 내내 애를 먹었다. 사교활동으로 너무나 바쁜 고트로 부인은 한가한 시간이 별로 없는데다 모델을 해 보지 않아 오랜 시간 자세를 유지하는 게 서툴렀다. 이 작품에 사활을 걸었던 사전트 역시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구도나 자세를 결정하느라 무려 30점이 넘는 다양한 포즈의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2년을 거쳐 우여곡절 탄생한 작품이 <마담 X>다.
    
 마담X의 초상(존 싱어 사전트,1883-4,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오른쪽은 수정되기전 원본 사진
 마담X의 초상(존 싱어 사전트,1883-4,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오른쪽은 수정되기전 원본 사진
ⓒ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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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전시되자 난리가 났다. 비평가들은 미국 출신 두 남녀가 파리에서 지나치게 유명해지는 것이 싫었는지 악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작품에서 죽음과 퇴폐라는 코드를 찾아냈다. 피부가 지나치게 희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깊이 파인 가슴과 흘러내린 한쪽 어깨끈이 퇴폐적이고 외설적이며, 왼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다고 비난했다.

이 그림의 원작은 사진처럼 왼쪽 어깨끈이 내려온 상태였다. 고트로 부인의 어머니까지 전시장에 찾아와 그림을 내려줄 것을 눈물로 간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여인은 음탕한 여인으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사전트는 전시가 끝나고 어깨끈을 수정할 것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여론에 떠밀려 수정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 겨우 28세. 그토록 거센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약속대로 어깨끈을 수정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고트로 집안은 이 그림을 매입하지 않았다. (훗날 그들은 이 선택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이 그림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하고 지금은 사전트의 대표작이자 그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이 되었다. 시대의 편견에 휩쓸리지 않는 안목이 중요한 이유다. 당시에도 이 그림의 가치를 인정하고 놀라움을 표현한 비평가도 있었다. 목소리가 작았을 뿐.

결국 이 그림으로 인해 상처만 가득 안고 사전트는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한다. 런던에서 사전트의 명성은 금세 회복했다. 그가 휴식 차 놀러간 예술인 마을 코츠월드의 아름다운 광경에 빠져 홀리듯 그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랑의 상처를 사랑이 회복시키듯 그림으로 인한 상처는 그림이 회복시켜 주었다.
  
침잠한 그를 구원한 풍경
 
 카네이션,백합,백합,장미(존 싱어 사전트,1885-6,런던 테이트 브리튼미술관)
 카네이션,백합,백합,장미(존 싱어 사전트,1885-6,런던 테이트 브리튼미술관)
ⓒ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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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바로 그 장면인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라는 작품이다. 독특한 이 작품의 제목은 조셉 마징의 노래 <그대 양치기들아 내게 말해다오>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그림에 등장한 소녀들은 사전트의 친구인 삽화가 프레드릭 버나드의 딸들이다. 좌측 인물은 11살의 돌리, 우측은 7살의 폴리다. 여름, 해질 무렵 두 소녀는 백합과 장미, 카네이션이 만발한 정원에 서서 중국식 등에 불을 켜고 있다.

이 그림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모습을 포착한 인상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누워 있는 풀의 디테일은 사실적이다. 인상주의와 사실주의가 결합된 사전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사전티즘'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이 그림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물어본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그림이라고 말할 거다.

해가 지는 시간은 고작 30분을 넘지 않았기에 사전트는 두 해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다. 빛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싶은 욕심으로 매일 해질녘 그 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빛을 담았다. 작은 것 하나도 정성을 놓지 않는 것. 명작은 재능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사전트는 다시 유명해졌다. 런던에서 활동하지만 파리에서 열리는 살롱전에는 꾸준히 작품을 냈다. 점점 더 유명해지는 사전트를 잡기 위해 프랑스, 영국, 미국의 물밑작업이 치열해진다. 프랑스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했고, 영국은 기사작위를 제의 하고, 미국은 보스톤 공공도서관과 보스톤 미술관, 하버드 대학의 기념 도서관 등의 벽화를 의뢰했다. 사전트는 미국 국적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초상화도 그리게 된다.

900점의 유화, 2000점의 수채화,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를 남긴 사전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1925년 69세의 나이에 심장병으로 눈을 감았다.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사전트>(조영규, 아트월드)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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