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22 09:24최종 업데이트 19.01.22 09:25
박정훈님은 배달노동자로 배달하는 사람들의 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온'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편집자말]
새벽 2시 15분, 당신이 뽑은 편의점 알바가 열심히 일하는지 알고 싶어 CCTV를 봤더니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새벽 2시 15분에 점장님으로부터 "첫날부터 핸드폰만 보고 있나요? 유통기한 체크하고 일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입사면접 문제는 아니니 안심하자. 인터넷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실화'다. 논란이 된 메신저 내용을 보면 사장님은 핸드폰 그만 보고 일하라고 카톡을 보냈고, 카톡을 받은 노동자는 조금 고민하더니 '잠 안 주무시는 거 같은데 직접 와서 일하세요, 일 그만두겠습니다, 40분에 집에 갈게요'라고 답했다.

이걸 두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사이다'와 '예의없다'라는 양극단의 반응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도덕이나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욕망과 실존의 문제다.

사장님이 새벽 2시 15분에 잠도 안 자고 CCTV를 본 것은 타인의 노동력을 구입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인간의 원초적 불안감 때문이다. 각종 광고와 후기들을 보고 월 175만 원짜리 상품을 샀다고 상상해보라(물론, 주휴수당미지급이나 최저임금 미지급으로 상품할인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설레는 마음과 불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장님은 '첫날부터'라고 강조했다. '오늘 구입한 신상인데!'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보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불안이다.

지치지 않는 감시자 컨베이어 벨트, 그리고 CCTV
 

편의점 내 cctv는 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 pixabay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가성비 좋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이 오래된 사용자들의 꿈은 채찍이나 감시자가 아니라 근대의 기술로 이뤘다. 노동자의 모든 동선을 연구해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없애고,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서 끊임없이 일하게 한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으므로 사람도 멈출 수 없다. 이때 사람은 기계의 일부가 된다. 테일러-포드주의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를 감시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은 24시간 떠있을 수 없지만 CCTV는 지치지 않고 돌아간다. 우리가 만약 사장님의 욕망과 불안에 감정이입을 해, CCTV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원격으로 업무지시를 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 번 듣고 끝나는 사장의 구박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어느 때고 나를 지켜본다는 불안감과 자기감시야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감시의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싣는 것이다. 노동자는 쉼 없이 자세를 가다듬고, 보기 좋은 화면의 일부가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은 이미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알바노조가 2016년 11월에 전현직 편의점 알바노동자 3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매장 내 CCTV로 감시를 당하거나 업무지시를 받았다는 응답은 39.1%를 차지했다. PC방에서는 CCTV를 보고 제대로 일을 안 한다며 사장이 알바노동자를 폭행한 일도 있었다. 알바상담소에는 사장이 면접 당시의 영상을 돌려보고 하품을 한다는 이유로 채용을 취소했다는 노동자의 상담이 들어오기도 했다.

CCTV가 범죄예방이 아니라 노동자의 하품까지도 통제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당신의 자세를 바로잡게 하는 것은 관리자의 손이 아니라, CCTV의 시선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의 문제가 화면에 갇히게 된다. 노동자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순간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앞뒤 맥락은 사라진다.

화면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편집되고 캡처되기 때문이다. 가령 보육노동자의 아동학대행위가 문제가 될 때, 화면 속의 문제는 가해자 선생님 한명뿐이다. 그런데 화면 밖의 문제, 보육노동자의 저임금과 인력 부족 등은 카메라에 들어오지 않고 우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다행히 2017년 2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원 CCTV감시는 인권침해이자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에 사업장 전자감시의 주요 유형별 개인정보 처리 요건 및 절차, 근로자 권리보호 등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에 문제제기를 한 노동자들은 전자감시로 인해 인격적 수치심과 모욕감,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노동조합 위축 및 조합원 차별, 해고·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 등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비단 사업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많은 CCTV와 구글로드뷰에 찍힌 나의 모습을 목적에 상관없이 시청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CCTV의 목적은 범죄 예방이지 24시간 감시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 단 한번도 동의한적이 없다. 일을 관둔 편의점 알바는 '싸가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있었던 것이다. 

노는 게 아니다
 

화장실은 5분만 이런 문구와 CCTV는 자기통제를 강화하게 만드는 기제다. ⓒ 박정훈

 
마지막으로 '핸드폰만 보고 있다'는 식의 비난과 편견의 대상이 되는 편의점 알바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편의점은 대표적으로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장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4시간 일하면 30분은 쉬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때의 휴식은 사장의 관리감독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매장을 걸어 잠그고 휴식을 취하러 가는 알바가 있다면 개념 없는 알바로 더 큰 사회적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이나 오후 3시쯤 손님이 없는 시간에 편의점을 가보면, 편의점 알바들이 카운터 구석에서 폐기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밥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숟가락을 놓고 포스기를 들어야 한다.

한 편의점은 카운터 뒤에 '화장실 5분만요~'라는 문구를 써 붙여 놓기도 했다. 생리현상까지 통제하는 것이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행위가 편의점 업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휴식이라곤 고작 손님이 없을 때 핸드폰을 잠깐 들여다보고, 밖에 나가서 허겁지겁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다. 최소한 손님들이 또 다른 CCTV가 되지는 말자. 투명한 편의점 안에서 알바가 영혼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는 손님이 올 동안 대기하고 있는 것일 뿐 놀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게 그렇게 부럽고 질투가 나시는 분이 있다면, 올여름 피서는 편의점 알바로 떠나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