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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1.22 09:23수정 2019.01.22 09:24
1990년대 초, 군대 있을 때 보직이 취사병이었다. 함대사령부라 하루 식사 인원이 2000명 정도 됐다. 해군이어서 육군보다는 부식비가 조금 높아 재료는 나쁘지 않았지만, 김장김치가 떨어지는 3월이면 배식하다가 욕 먹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김장김치 대신 나오는 맛없는 양배추김치에 병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양배추김치 때문에 병사들의 불만이 불붙기 직전인데도 풀무질하듯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메뉴 구성이 본부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점심 메뉴로 '똥국'이라고 불리는 양배춧국과 양배추 쌈, 양배추김치가 함께 나오는 날은 배식 내내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취사병인 우리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먹기 힘들어서 다음날 메뉴에 고기가 있으면 일부 메뉴를 바꾸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국과 3찬 메뉴에 모두 양배추를 넣었는지, 배식하다 말고 메뉴를 짠 사람을 찾아가고 싶었다.

미군부대 납품하기 위해 시작한 양배추 농사
 
양배추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재배한 건 아니었다. 미군부대에 납품하기 위해 농사짓기 시작했다. 경제 수준이 올라가고,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전국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됐다.

양배추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재배한 건 아니었다. 미군부대에 납품하기 위해 농사짓기 시작했다. 경제 수준이 올라가고,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전국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됐다. ⓒ 김진영

 
양배추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재배한 건 아니었다. 미군부대에 납품하기 위해 농사짓기 시작했다. 경제 수준이 올라가고,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전국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됐다. 

사실 양배추의 조상은 지중해의 야생 케일이다. 야생 케일을 개량해 양배추를 만들었다. 개량 과정에서 다른 것도 만들었는데, 꽃대가 모인 것은 브로콜리, 꽃이 모인 것은 콜리플라워, 순무와 접붙여서 만든 건 콜라비다. 모두 양배추의 사촌들이다. 다대기양배추, 방울양배추라 부르는 것은 줄기가 변형된 것들이다. 

양배추는 사시사철 난다. 겨울은 제주도, 봄은 남도와 제주에서, 여름이 깊어질수록 태백산맥 따라 위로 올라간다. 여름이 물러가면 충남 서산에서 잠시 나고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제주에서 다시 양배추가 자란다. 

우리는 사시사철 나는 것에 대해 제철 개념이 희박하다. 항상 살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시사철 난다고 해서 제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작물마다 자라기 좋은 환경이 있는데, 양배추는 15도 내외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한여름 대관령 고지대에서 배추며, 양배추가 나는 이유가 30도가 넘어가는 평지에서는 양배추가 자라지 못하고 녹기 때문이다. 반대로, 육지가 영하로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따듯한 제주에서 양배추가 난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맛있는 양배추 생산을 위해 재배지가 한반도를 위아래로 오간다.

한겨울 제주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히 추우면 양배추의 성장은 더디지만 조직은 단단해진다. 간혹 닥치는 동장군에 숨죽이고는 조용히 단맛을 끌어 올린 양배추는 단맛이 더 돈다. 

수십 년째 제주시 애월읍에서 농사짓고 있는 강대헌씨를 만나러 간 날도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조생종을 심은 밭은 벌써 수확이 끝났고 중생종을 수확하고 있었다. 한여름 피서객들이 몰리는 7월부터 준비해 9월 중순 전후로 밭에 심는다. 10월과 11월에 키워 12월부터 시장에 내놓는다. 이듬해 5월까지 제주에서는 양배추가 난다. 

제주 애월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섶을 여미지만, 수천 개의 바늘이 달린 듯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이런 추위가 며칠 지속되면 얼지만, 하루이틀 추위는 양배추 자라는데 좋다는 게 강대헌씨의 말이다. 

찬바람이 불면 양배추 체액이 진득해져 단맛이 올라간다고 한다. 맹물과 설탕물을 동시에 얼리면 맹물이 먼저 언다. 겨울철 노지에서 나는 채소들은 얼지 않기 위해 단맛 농도를 올려 대비하니 더 달 수밖에 없다. 시금치, 배추, 무 등 겨울에 나는 것들이 그래서 맛이 깊다.

보라색 브로콜리, 영양도 많고 값도 싸다
 
지중해의 야생 케일을 개량해 양배추를 만들었다. 개량 과정에서 다른 것도 만들었는데, 꽃대가 모인 것은 브로콜리, 꽃이 모인 것은 콜리플라워, 순무와 접붙여서 만든 건 콜라비다. 모두 양배추의 사촌들이다.

지중해의 야생 케일을 개량해 양배추를 만들었다. 개량 과정에서 다른 것도 만들었는데, 꽃대가 모인 것은 브로콜리, 꽃이 모인 것은 콜리플라워, 순무와 접붙여서 만든 건 콜라비다. 모두 양배추의 사촌들이다. ⓒ 김진영

 
봄, 여름, 가을, 겨울 가운데 양배추가 가장 맛있는 순서는 겨울 > 봄 > 가을 > 여름 순이다. 1월 제주에서 나는 양배추는 자라기 좋은 온도보다 낮은 온도가 지속돼 단맛이 가득하다. 서울 서교동의 쿠시카츠 전문점 '쿠시카츠 쿠시엔'에서는 양배추를 듬성듬성 잘라 서비스 안주로 내준다.

소금을 살짝 찍으면 양배추의 단맛을 제대로 끌어내고, 생것으로 먹으면 비타민C나 생리활성 물질인 설포라판(Sulforaphane)이 파괴되지 않아 더 좋다. 돈가스 정식을 먹을 때 나오는 양배추는 지금같은 겨울철에는 따로 소스를 뿌리지 않아도 좋을 정도다.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양배추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 양배추에 많이 들어있는 안토시아닌이 잘 흡수되거니와 양배추의 산뜻한 맛이 개운함을 주기도 해 궁합이 잘 맞는다. 살짝 데친 양배추 쌈을 일년 가운데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때도 겨울철이다.

겨울철 제주에서는 양배추만 나는 것이 아니다. 브로콜리, 콜라비도 많이 난다. 브로콜리는 온도가 낮아지면 보라색을 띤다. 초록빛이 나는 것이 최상품이라 여기지만, 보기만 다를 뿐 맛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추위 덕분에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이 많아져 보라색 브로콜리가 영양상으로는 더 좋다. 가격 또한 초록빛보다 더 싸다. 브로콜리는 으레 초록색이어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일 뿐이다. 농산물은 보기 좋다고 항상 맛까지 좋은 건 아니다.

양배추는 항상 살 수 있는 채소지만 나름의 제철이 있다. 그 제철이 바로 지금이다. 추위가 주는 선물 같은 단맛, 겨울 양배추의 맛이다.
 
양배추는 사시사철 난다. 겨울은 제주도, 봄은 남도와 제주에서, 여름이 깊어질수록 태백산맥 따라 위로 올라간다. 여름이 물러가면 충남 서산에서 잠시 나고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제주에서 다시 양배추가 자란다.

양배추는 사시사철 난다. 겨울은 제주도, 봄은 남도와 제주에서, 여름이 깊어질수록 태백산맥 따라 위로 올라간다. 여름이 물러가면 충남 서산에서 잠시 나고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제주에서 다시 양배추가 자란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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