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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사랑하면 끝까지 뜨겁고 깊게 사랑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래야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정작 나의 '첫 아이'와는 그런 사랑을 하는 게 두려웠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 내 뱃속 아이의 존재를 확인한 그 순간부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 삶을 잠식하고 압도했는데 그 가운데서 과연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삶이란 자신을 갈아 넣어 사랑을 줘야 하는 삶이 아니던가. '희생'은 사랑이 가진 여러 요소 중 하나지만 유독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는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두려웠다. 나에게 사랑이란 나를 더욱 자유롭게 만드는 것인데 자식은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치인 그 '자유'를 빼앗아 갈 것만 같아서. 내 삶에 벼락같이 찾아온 이 행복이 너무 달콤하지만 필연적으로 내가 잃어야 할 그 자유를 최대한 지켜내고 싶었다.

임신 5개월 때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심각함을 알았고 페미니즘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다. '엄마'를 준비하고 있던 내게 페미니즘은 이 사회가 '엄마'라는 존재에게 얼마나 부당하고 무거운 짐들을 지우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엄마'이기에 마땅히 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내 안의 소리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내 의지가 아닌 억압의 산물임을 알았다. 그래서 부당한 것과는 싸우고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하고자 노력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는 말들에 반감이 생겼다. 내가 직접 알아보고 선택하고자 마음먹었다. 마취와 수술이 두렵고 출산 후 회복이 더딘 제왕절개, 의사에게 편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자연분만보다 남편이 출산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산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출산이 가능한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다.

모유는 나오면 먹이고, 안 나오면 가차 없이 포기할 것이라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도 수유의 과정이 수월했다. 젖이 잘 나온다면 분유수유보다 편한 게 모유수유였기에 무난하게 1년을 완모했다.

출산과 수유라는 큰 산을 넘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도 육아를 하면서 선택해야 할 것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때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선택지가 과연 내 의지인지,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의 역할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다. 후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해내기에 나는 돈도 시간도 체력도 부족했다. 그리고 해내지 못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제야 자연주의 출산과 모유수유라는 내 선택이 100% 내 의지가 맞는 걸까, 고민하게 되었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아이를 가장 중심에 둔 출산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1년이나 모유를 먹인 대단한 엄마라고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하고 싶었지만 내 안에 '엄마'의 역할은 내 기준과 사회적 기준이 뒤섞여 구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남편은 나와 달랐다. 아이를 지극히 사랑했고 정성을 다하면서도 그는 자유로웠다. 아이 식사 문제가 특히 그랬다. 난 매 끼니 적당량의 밥과 고기, 채소를 아이가 반드시 먹어주길 바랐고 제대로 먹지 않는 날이면 그 실패한 한 끼가 마음에 돌덩이처럼 턱 걸렸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편이라 늘 신경 쓰였다. 그런 나와는 달리 그는 무엇이든 잘 먹는 걸 먹이고 안 먹으면 다른 걸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외식을 했는데 사장님이 아이가 예쁘다며 오렌지주스를 한잔 주셨다. 아이가 밥 먹는 중간에 왜 주스를 주시는 걸까. 울고 싶었다. 사장님의 호의를 알기에 화를 낼 수는 없었지만 주스의 당도를 생각하니 아이의 치아 건강이 염려돼 근심이 한 개, 주스를 한잔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 남은 밥을 먹지 않을 테니 또 근심이 한 개 추가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뭐든 잘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그와 나는 이렇게 달랐다.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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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다하면서도 사랑 안에서 자유롭고 싶은 내게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대상이다. 점수를 매긴다면 난 엄마들 중에서 하위권일 것이고, 남편은 아빠들 중 최상위권일 것이다. 억압 없이 자유로우면서도 직장, 살림, 육아에 모두 충실한 그는 아빠로서 칭찬받는다. 하지만 동일한 노동량을 해내는 나는 매 순간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압박을 느끼며 높은 기준을 따라가기 버거워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지쳐있던 내게 은유 작가의 문장이 다가와 콕 박혔다.

"첫 사랑, 첫 아이, 첫 친구, 첫 스승, 첫 동료. 처음이라서 서툴고 두렵고 설레고 그리고 애틋한 그 무엇. 한 존재의 급진적 변화를 끌어내는 첫 바이러스들. 급류 같던 몇 군데 '첫' 인연을 통과하고 '글쓰기의 최전선' 동료들을 만나며 나는 믿게 됐다. 인간은 처음 인연에 매몰된 만큼 성장한다."
-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276p -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자유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 안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숭고한 모성의 이미지, 사회가 요구하는 수많은 엄마의 역할들, 끊임없이 평가당하는 자식을 향한 나의 사랑이 나를 억누른다.

첫아이와의 사랑, 그 관계에 매몰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내 삶에는 분명 급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갈등의 과정이 부디 성장의 증거라 믿고 싶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흠뻑 빠지고 깊이 사랑하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다. 그저 애틋한 내 첫 아이, 너와 자유롭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서해문집(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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