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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재일 조선인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일본 각지에 세운 학교를 말한다. 이 사실만으로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학교가 받아 왔을 차별과 억압이 예상되지만, 조선학교는 이러한 막연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픔을 현재까지도 받아오고 있다. 하지만 재일조선인들은 '민족교육'을 향한 열의로 모진 탄압을 이겨내고 있다. 기자는 지난 1월 17일 도꾜조선중고급학교(도쿄중고)를 방문하여 신길웅 교장, 세 명의 학부모와 인터뷰 한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연재한다. – 기자말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와 평창올림픽은 한반도 평화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그로부터 1년,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북미 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남북관계는 놀라운 속도로 진전했다. 현재 제 2차 북미 정상회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예정되어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평화보다 위협과 도발이 더 일상적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 도발, 위협 등의 단어는 과거에 비해 낯설게 느껴지고, 한반도 평화가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에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 시대', 분단의 피해자들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조명하는 것은 분단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드러내며,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재일 조선인, 일본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겪고 '분단 이전 한반도(조선)에 살던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를 '조선학교'라 부른다. 조선학교의 역사는 분단이 만들어 낸 모순이 야기한 피해와 그 피해를 이겨낸 역사이다.

'힘 있는 자는 힘으로, 돈 있는 자는 돈으로, 지식 있는 자는 지식으로!'

재일 조선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세우고 유지한 조선학교를 가장 잘 나타내는 구호이다. 1946년 해방 직후 재일 조선인들의 헌신으로 학교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 도쿄중고의 교직원과 학부모는 조선학교의 선배이기도 하다. 교직원은 재일 조선인 2, 3세이고 학생들은 재일 조선인 4세로, 도쿄중고의 구성원 자체가 재일조선인의 역사이다.

조선학교는 일본 전역에 10개의 고등학교, 32개의 중학교, 53개의 소학교를 두고 있다. 이 중 도쿄에 위치한 학교인 도꾜조선중고급학교(아래 도쿄중고)는 주조(十条) 역에서 걸음으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도쿄중고는 우리 교육 체계로 보면 중, 고등학교이며 현재는 임시로 초등학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도쿄중고 입구
 도쿄중고 입구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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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통일이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는 일이라면, 분단으로 인한 모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조선학교는 분단의 모순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살아있는 증거 중 하나이다. 기자는 이러한 이유로 지난 17일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도쿄중고를 비롯한 조선학교는 방문 신청을 엄격히 관리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마다 남측의 언론과 기관으로부터 많은 방문 요청을 받지만, 이를 모두 수용하면 엄연한 교육의 현장인 조선학교와 학생·교사들이 자칫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여러 차례 정중한 취재 요청 끝에 조선학교를 방문할 수 있었다. 도쿄중고 방문은 신길웅 교장과 학부모 세 명이 안내했다.
 
도쿄중고에 붙은 표어
 도쿄중고에 붙은 표어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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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중고의 학교 시설은 한국의 여느 중, 고등학교의 시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신길웅 교장에 따르면, 도쿄중고는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중 규모가 큰 편이고, 시설도 잘 갖추어진 편이라고 한다. 도쿄중고는 1946년 해방 직후 현재 도쿄중고가 있는 터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시작하여 학교로 발전했다.

도쿄중고가 위치한 땅은 예전 군부대의 화약 창고로 쓰던 터로, 재일조선인들이 해방 직후 일본 정부에게 교육을 위한 부지를 여러 차례 요청한 끝에 받아낸 곳이다. 이마저도 현재까지 임대료를 내며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부터 '협조'를 받은 것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기자는 학교를 방문하여 총 네 번의 수업을 참관했다. 수학, 역사, 지리, 국어 등 다양한 과목의 수업을 참관했다. 한 반에 학생은 약 20명으로, 한국 중, 고등학교의 학급 당 학생 수와 비슷했다. 기자가 참관하러 교실에 들어가니 부끄러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듯, 자는 학생을 다른 학생이 부랴부랴 깨웠다. 이런 정겨운 모습 역시 우리 교실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도쿄중고 중학교 수업 모습
 도쿄중고 중학교 수업 모습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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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사용하는 교과서는 주로 조선학교 교사들이 직접 만든 교과서였고, 일부는 북한이나 일본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참관한 수업에서 우연히 남측의 상황을 가르치는 수업 내용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경제, 지리, 역사 등, 남한에서 교육을 받은 기자가 듣기에도 남측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신길웅 교장은 "우리의 교육은 통일 민족 교육이기 때문에 북과 구분 없이, 비슷한 비중으로 남측 사회에 대해서도 가르치려 한다"고 얘기했다.

수학 시간을 참관했을 때 교실의 자리 배치가 특이했다. 학생들은 둘씩 짝지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이는 둘 중 한 명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서로 알려주고, 문제 풀이 방식을 공유하기 위함이라 했다.

또 다른 인상적인 모습은 학생 자치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도쿄중고에는 '조고위원회'가 있는데, 이는 '학생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교실 절반 크기의 '조고위원회실'이라는 학생 자치 운영회의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학교는 이 위원회에 많은 권한을 주어 학교 운영과 관련한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독려한다고 했다. 조고위원회실 내부에는 회의 자료, 활동 게시물 등을 통해 그들의 활발한 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조고위원회실 앞에서 조고위원회에 대해 설명하는 신길웅 교장
 조고위원회실 앞에서 조고위원회에 대해 설명하는 신길웅 교장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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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벽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게시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18년 있었던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학습한 자료와 우리 말의 사용을 권장하거나 다짐하는 포스터, 학습 자료 등이 붙어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학습한 자료 중에는 남측 언론의 자료를 게시해두기도 했다. 또 어떤 교실 앞에는 학생들이 직접 지은 시조를 붙여놓았다. 통일, 교우관계, 자기계발 등 다양한 주제로 시조를 만들었다.
    
도쿄중고 교실 앞에 붙은 학생들이 직접 지은 시조 작품
 도쿄중고 교실 앞에 붙은 학생들이 직접 지은 시조 작품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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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진 못했지만, 매일 수업이 끝나면 '총화시간'이 있다고 했다. 우리로 치면 하루의 학교 생활을 정리하는 '종례시간'과 같은 개념인데, 이때는 학생들끼리 조를 이뤄 하루 동안의 생활을 평가한다고 했다. 평가 내용은 주로 '하루 동안 우리말을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로를 비판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며 우리말 사용 생활을 개선해간다고 했다.
 
도쿄중고 복도에 붙은 학생들의 작품
 도쿄중고 복도에 붙은 학생들의 작품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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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중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학교 체육관에 모여 남과 북의 정상이 처음 만나는 순간을 함께 봤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제안으로 두 정상이 잠시 휴전선 북쪽으로 넘어갔을 때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오랜 시간 분단으로부터 큰 아픔을 겪은 재일조선인 2, 3세인 교직원들과 4세의 학생들이 보는 4.27 남북정상회담은 누구보다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4.27 판문점회담을 단체시청하는 도쿄중고 학생
 4.27 판문점회담을 단체시청하는 도쿄중고 학생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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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가 지난 시간 받아 온 탄압의 역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가 들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역사이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 속 빨간 꽃을 피워내는 동백처럼 조선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웃음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학교를 둘러보며 만난 학생들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밝게 웃으며 인사했고, 불쑥 찾아와 수업을 참관하겠다고 하는 기자에게 수업을 하던 교사들은 친절히 환영해 주었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 조치는 조선학교도 차별 없는 교육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UN 아동인권위원회의 권고마저 무시한 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도쿄중고를 비롯한 조선학교는 고교무상화 대상에 포함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워오고 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며, 한반도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지금, 분단 체제의 모순과 아픔을 그대로 떠안아야만 했던 조선학교에게 과거 우리의 무관심과 차별을 반성하며 따뜻한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2~3일 간격으로 추가 게재합니다.
3편까지 이어집니다.


태그:#도꾜조선중고급학교, #도쿄중고, #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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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인도네시아 도시 지리, 이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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