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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고(故) 한경덕씨가 추락한 신길역 환승구간.
 전동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고(故) 한경덕씨가 추락한 신길역 환승구간.
ⓒ 박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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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지난 12월 기자는 신길역 지하철 1호선에서 5호선 사이에 있는 휠체어 리프트를 직접 타 봤다. 휠체어 없이 맨몸으로 리프트에 올랐지만 아찔한 높이에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오를 계단 73개가 마치 절벽처럼 느껴졌다. 의지할 곳이라곤 앞뒤로 내려와 있는 안전바뿐.

그마저도 고장나 고정되지 않고 흔들거렸다. 네모난 판이 덜컹댈 때마다 "오오!"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리프트가 움직이는 5분여 동안 쪼그려 앉아 안전바를 목숨줄처럼 꽉 잡아야 했다.

이곳은 지체장애인 고 한경덕씨가 전동휠체어를 탄 채 추락한 곳이다. 휠체어 리프트를 타려면 직원을 불러야 한다. 왼팔을 쓰지 못하는 한씨는 2017년 10월 20일 직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98일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지난해 1월 25일 사망했다.

겨우 50cm 더 안전해졌다
 
지난해 6월 14일 오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신길역 리프트 사망사고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사과를 촉구하며,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서울시청역까지 열차에 줄지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시위를 벌였다.
▲ 신길역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서울시 사과 요구 지난해 6월 14일 오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신길역 리프트 사망사고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사과를 촉구하며,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서울시청역까지 열차에 줄지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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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가 사망한 지 꼬박 1년이 흘렀지만 변한 건 거의 없다. 계단에서 겨우 50cm 떨어져 있던 직원 호출 버튼 위치가 50cm 더 옮겨졌을 뿐이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복무 중인 사회복무요원 A(23)씨는 "사고 이후에도 딱히 바뀐 건 없다"며 "안전바도 고장난 지 꽤 됐는데 그냥 수동으로 조작하라고 지시받았다"고 말했다.

버튼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휠체어 리프트가 더 안전해진 것도 아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1999~2017년 사이 수도권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관련 사고는 17건에 달한다. 이 중 5건이 장애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근에는 전동 스쿠터나 전동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늘어나면서 위험성이 더 높아졌다. 대부분 리프트가 과거 수동 휠체어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신식 휠체어는 더 크고 무겁다. 수동 휠체어의 크기가 1040mm×540mm라면 전동 스쿠터의 크기는 1350mm×630mm다.

보행 장애인 B(54)씨는 전동 스쿠터를 타고 휠체어 리프트를 탔다가 사고를 당할 뻔했다. 리프트에 타고 내려가던 중 느낌이 이상해 멈추었더니, 리프트 끝에 바퀴가 걸쳐져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B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며 "리프트가 아닌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8분과 20분
 
지난해 10월 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 한경덕씨는 2017년 10월 20일 분향소 옆으로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고 호출 버튼을 누르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결국 3개월여만에 숨졌다.
 지난해 10월 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 한경덕씨는 2017년 10월 20일 분향소 옆으로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고 호출 버튼을 누르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결국 3개월여만에 숨졌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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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지 않는 장애인도 불편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목발을 이용하는 보행 장애인 C(25)씨는 "대부분의 환승 구간이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다"며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당역 2호선과 6호선 환승 구간에 있는 무빙워크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무빙워크 시작 지점에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특정 시간에만 운영한다'는 내용의 팻말이 붙어 있다.

비장애인에게 8분 거리인 신당역 환승구간은 장애인에겐 약 20분 거리다. 사회적 기업 무의가 제공하는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에 따르면 장애인이 신당역을 환승하기 위해선 3번의 리프트를 타야 한다. 노량진역의 경우엔 30분이 걸린다. 정씨는 "무빙워크나 엘리베이터가 늘어나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사무국장은 "버튼 위치 변경은 사고가 나기 훨씬 이전부터 요구해 왔던 것"이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지하철 전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 지하철처럼 직원이 지상부터 지하철 타는 곳까지 보조해 주는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사람이 죽어야 겨우 버튼 위치 하나 바뀌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태그:#장애인, #이동권, #휠체어, #휠체어리프트, #서울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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