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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예타면제대상 발표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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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4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기로 했다. 사실상 토건 경제의 화려한 부활이다.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본질은 토건 경제를 '경기부양 카드'로 본격 활용한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부진한 경제성적표를 만회하기 위해 고민 끝에 꺼내든 카드지만, '건설 경기 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바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29일 발표한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 사업은 24조 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이다. 국가 재정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규제 완화 혜택이다.

먼저 '예타'라 불리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무엇인지 보자. 예비타당성조사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고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을 대상으로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절차다. 쉽게 말해 적자와 예산낭비 여지가 있는 사업을 거르는 장치다.

수도권광역철도인 GTX-B노선과 신분당선 연장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 사업들이 조기에 착수하지 못하는 것도 예비타당성 조사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23개 사업은 이런 예비타당성조사가 생략되면서,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없어졌다.

면제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은 대부분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이른바 토건 사업이다. 도로·철토 인프라 확충 사업 부문이 5조 7000억,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 사업이 10조 9000억, 생활 인프라 건설 사업이 총 4조 원 규모다.

R&D 투자 등을 위한 지역 전략사업(총 3조 6000억)만 유일하게 비(非)토건 사업이다. 총 24조 1000억 원 가운데, 20조 5000억 원의 토건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라는 규제 완화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총 20조 규모의 토건사업에 날개... 토건경제 의존 않겠다는 원칙 버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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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번 결정에 따라 "건설에 기댄 경기 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원칙은 사실상 허물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도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명의의 발표문을 보면 "금번 프로젝트는 30대 선도 프로젝트, 4대강 사업과는 사업 내용과 추진 방식 등에서 다릅니다"라고 적혀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도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의 말대로 이번 프로젝트는 분명 4대강 사업과는 다른 사업이다. 하지만, 토건 경제에 의존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근본 철학이 같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건설업계도 정부의 이번 결정을 반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미뤄졌던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정부 발주 물량도 기대해볼 수 있고, 민간투자사업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사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인프라가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편의성을 갖춘 사업들이 예비타당성으로 인해 진척이 없는 상태"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볼 필요성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일제히 환영... 경실련 등 시민단체 "토건적폐 경기부양"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경실련, 녹색교통운동, 환경운동연합 대표자들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신규사업 예비타당성 검토 면제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경실련, 녹색교통운동, 환경운동연합 대표자들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신규사업 예비타당성 검토 면제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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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토건 적폐 회귀"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녹색교통운동은 이날 낸 성명서 제목을 아예 '문재인 정부의 토건적폐 경기부양을 규탄한다'로 붙였다.

경실련은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이 과거 토건적폐로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의 예타면제를 따라 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정부가 애초 5개이던 예타면제 항목을 10개로 늘렸던 것을 비판했으면서도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예타 면제 사업 중 적지 않은 사업이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타당성이 없는 사업에 민간 사업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원 증가나 비싼 요금 등 특혜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재정사업으로 추진되어도 건설과 유지보수, 운영을 위해 막대한 혈세투입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도 "국내총생산 대비 토목∙건설사업에 과도하게 세금을 쏟아붓는 정책은 한국의 산업경쟁력 제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묻지마식 토건 재정 확대로 경기부양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수년 뒤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선정되지 못한 수원시 등 다른 지자체들도 반발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예타신청을 받은 사업 규모는 68조 7000억 원. 이 가운데 3분의 1 수준만 채택됐으니,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수원시는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에서 제외되자 "수원시민들에게 좌절감을 넘어 엄청난 분노를 안겨주었다"며 "정부는 신분당선 연장사업에 대한 구체적 실행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포항이 지역구인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도 정부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경상북도가 1순위로 제출한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이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원시 등 일부 지자체도 반발

사실 이번 예비타당성 면제 결정은 정부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총 23개 사업에 대한 일률적인 일자리 창출, 생산 유발 효과를 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일자리와 경기 등 목표 수치를 정할 경우, 그 자체로 부담이 될 수 있음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향후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정부는 원칙도 버리고 결과도 얻지 못하는 꼴이 된다. 20조에 달하는 사업에 특혜를 주면서 파생 효과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시민단체 등의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게 뻔하다. "토건 경제냐, 아니냐"를 두고 해묵은 논쟁도 또 다시 불거지게 된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개별 사업이 대규모 적자를 내거나 사업 진척이 이뤄지지 않을 때마다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예비타당성 면제 결정에서 소외된 지자체들의 반발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무회의를 열어 의결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대상에 서부경남KTX가 포함된 29일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입구에 이를 환영하는 대형 펼침막이 걸려있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무회의를 열어 의결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대상에 서부경남KTX가 포함된 29일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입구에 이를 환영하는 대형 펼침막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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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토건경제, #예비타당성,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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