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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첫날 교육청 공문을 접했다. 뜨악했다. 2월 봄방학 기간 3일~5일 범위 안에서 전체 교사들을 출근하게 한 것이다. 학교에 출근해 학교별로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내용은 교과협의회나 학년협의회, 그리고 워크숍 내지 교원학습공동체 직무연수를 통해 새학년을 대비한다는 것이다.

공문에는 이 기간 운영되는 연수를 15시간 이내에서 직무연수로 인정한다고 적시됐다. 물론 3월 전입교원도 포함해서 진행한단다. 출장비는 2018학년도 재직학교에서 신청, 지급하도록 했다. 이른바 '신 학년 집중 준비 기간 운영 계획'이라는 공문이다. 2월에 신 학년 집중 준비 기간을 두어 '학생의 배움과 성장을 지원하는 학교문화를 조성'하고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으로 교육력 강화와 공교육 신뢰도'를 높이겠단다.

또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학생참여중심 수업과 주제별 융합수업을 제시하고 있다. 협력적인 독서활동과 토론, 그리고 글쓰기 교육과 진로맞춤형 선택교육과정 운영으로 '학생의 성장을 돕고 배움이 설레는 학교'를 지향한다고 했다.

게다가 사회현안 논쟁을 교실로 끌어들여 학생참여 토론수업을 이끌어 내겠단다. 그리하여 과정중심평가로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평가를 학교현장에 정착시켜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겠단 의도이다. 
 
서울지역 중고교 700 여개 학교현장에 내려 보낸 <신학년 집중준비기간 운영 계획> 공문에는 2월 봄방학 기간 중 단위학교에서 자체 게획을 수립하여 3-5일에 걸쳐 학교별 자체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적시하고 있다. 겉으론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단위학교 현실에선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학교구성원이자 교육주체인 교사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지 않은 채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 서울시 교육청에서 2018년 12월 27일 학교에 하달한 <신학년 집중준비기간> 공문 서울지역 중고교 700 여개 학교현장에 내려 보낸 <신학년 집중준비기간 운영 계획> 공문에는 2월 봄방학 기간 중 단위학교에서 자체 게획을 수립하여 3-5일에 걸쳐 학교별 자체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적시하고 있다. 겉으론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단위학교 현실에선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학교구성원이자 교육주체인 교사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지 않은 채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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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멋진 이야기이지만 사실 특별할 게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학교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자 탁상행정이기 때문이다.

먼저 교육청에서 제시한 예시 프로그램을 보면 내용이 특별할 것도 없이 진부하다. 평소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과협의회, 학년협의회, 교과별 평가계획수립, 교원학습공동체 구성은 절대 다수 학교들이 3월에 실천하는 내용들이다.

이스라엘 교육방식인 하브루타 수업이나 거꾸로 교실 수업 역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들이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주입식 교육 내지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은행 저축형 지식 중심 수업을 탈피하고자 시도된 내용들이다.

특히 사회현안 논쟁을 교실로 끌어들여 수업장면에 적용하는 논쟁·토론 수업은 독일 보이텔스 바흐 합의에 따른 정치교육을 모방한 내용이다. 그조차 이미 통합사회 수업시간에 적용한 교사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입시경쟁교육의 틀이 해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한국사회 입시의 관건인 수능시험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선 다분히 관념적이다.

마찬가지로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성과 신뢰성을 의심받는 현실에서 과정중심평가 확대 역시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탓에 정의의 토대가 너무나 취약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오늘날 생활기록부가 상품 포장하듯이 가공 수준으로 치닫는 현실은 과정중심보다 결과중심으로 고착된 현상의 반영이다.

교육청 신 학년 계획에서 밝혔듯이 '융합적 창의 인재 지성을 갖춘 미래 인재 교육은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미래를 설계하는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평가하는 방식이 교육모순이 층층이 중첩된 학교현장에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로 시작된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세가 되면서 아이들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현실에 놓여 있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한다는 이야기이다. 오로지 학교생활기록부(약칭 생기부)에 기재되는 내용이 학생들의 관심사이자 목표이다. 아이들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생기부에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기록되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교사 역시 엄청난 잡무에 파묻혀 워드기계로 전락된 지 오래이다. 교사의 업무는 폭주하고 아이들은 가치가 뒤바뀐 혼란 속에 방치된 게 학교현장의 민낯이다. 그런 전도된 현실 속에서 입시경쟁교육이라는 하드웨어를 개혁하려는 노력 없이 일부 수업 방식의 변화로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보다 이번 교육청 공문은 학교현장의 변화를 위로부터 이끌어내려는 의욕만 앞섰지 학교 현장의 현실엔 무지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교육 관료들이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갑갑했다.

먼저 학교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선 위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또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공문을 내려 보내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말로는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는 전혀 없다.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선 개혁은 공허하다 못해 변화의 동력조차 사라질 뿐이다.

말로는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강조하지만 교사와 학생은 대상화된 지 오래이다. 그리고 절대 다수 학교행정은 일방통행식이다. 교사와 학생의 의견을 거의 묻지 않는다. 하물며 학교보다 더 높은 교육청 공문은 권위주의의 냄새만 풍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로 행복한 학교! 즐거운 교실! 신나는 수업을 꿈꾼다면 교사와 학생의 자율을 존중하고 지원하라! 교육청이든 학교관리자든 교사와 학생의 자율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지원체계도 별반 소용이 없다. 진심으로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자 한다면 교사와 학생 스스로 설계하고 결정하게 하라! 학교장이든 교육 관료는 지시와 책임을 떠안는 계선조직의 위치에 서지 말고 철저히 지원 참모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학교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개혁의 기초를 가져올 수 있다.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하고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행복해 하며 교사가 높은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받는 첫 번째 이유는 교사와 학생들의 자율성이 철저히 보장된다는 데 있다. 핀란드 교사들은 강제로 연수를 받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자율 속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을 단련시킨다. 아이들 역시 주체적인 학생 상을 보이며 자주적으로 그리고 행복하게 학업을 설계해 나간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핀란드 교육개혁의 출발은 장학 감사제도를 전격 폐지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솔직히 학생부 종합전형 이후 별 의미도 없는 똑같은 내용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한꺼번에 입력되는 걸 수없이 보아왔다. 처음에는 글자 수 제한이 없었던 때라 한 학생의 생기부가 20~30장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정말로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내용을 교사가 관찰하여 적는 것이라면 그것은 잡무가 아니라 응당 교육의 본령일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절대 다수 교사들은 사명감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현실은 드라마 <SKY 캐슬> 만큼 너무 괴리가 크다.

그래서 교육청 관료들에게 고언을 드리고 싶다. '교사를 가만 놓아두시라!'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교사들은 성찰하는 시간을 향유할 것이다.

쉼 없이 입력하는 워드기계로 업무에 치어 하루를 보내지 않을 때 교사들은 정말 내가 좋은 선생님인지 자문할 수 있다. 내가 정말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되묻는 것은 교사의 자기성장에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지 자신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은 교사의 자기 성장에 너무나 소중하다.

교육개혁! 아니 학교변화는 교사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학교잡무로부터 해방될 때 가능하다. 2월 봄방학 기간 이 땅의 교사들은 스스로 신 학년을 준비한다. 수업연구 등 준비 없이 어떻게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2월 봄방학 기간은 오롯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교사 스스로 자율 연찬과 수업 연구에 매진하도록 보장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그게 교육청의 역할이다. 방학 중 강제 근무조 편성을 전교조 등 교육운동 단체가 단체협약을 통해 관철시킨 이유가 그 때문이다. 2월 봄방학 기간에 일부 교사들은 학교를 옮기는 경우가 많고 더러는 이사도 한다.

따라서 3월에 모든 학교들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를 굳이 국민 혈세인 출장비를 주어가면서 2월에 전체교사를 소집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상급관청인 교육청이 공문으로 하달한 것이라면 더더욱 형식적인 학교행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공문을 내려 보낸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마땅히 재고하고 철회할 일이다.

태그:#학교개혁, #교육개혁, #진보교육감, #창의 융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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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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