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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자주 먹던 인절미. 어렸을 때 설날은 쫄깃쫄깃한 인절미와 구수한 시루떡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졌다.
 명절에 자주 먹던 인절미. 어렸을 때 설날은 쫄깃쫄깃한 인절미와 구수한 시루떡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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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 연휴를 앞두고 있다. 설날을 생각하면, 떡이 먼저 떠오른다. 어렸을 때 설날은 쫄깃쫄깃한 인절미와 구수한 시루떡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졌다. 까칠까칠한 보리개떡이나 밀가루떡하고는 혀끝으로 느껴지는 맛부터 달랐다. 명절이 1년에 두 번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우리 속담에 있는 '밥 위에 떡'이란 말을 실감하는 어린 날이었다. 그만큼 떡은 우리 명절이나 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떡과 관련된 속담도 많았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등등.

우리의 식생활이 변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떡과 명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일 년 중 떡이 가장 빛을 발하는 날도 명절이었다. 떡에 무늬를 새긴 절편과 도장떡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전남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떡살. 무심한 떡에다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는데 쓰인다.
 전남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떡살. 무심한 떡에다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는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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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농업박물관에서 만나는 떡살. 무형문화재 떡살장 김규석 장인이 직접 만든 작품들이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만나는 떡살. 무형문화재 떡살장 김규석 장인이 직접 만든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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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의 표면에다 무늬를 찍어내는 판을 '떡살'이라 한다. 무심한 떡에다 살을,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는데 쓰인다. 우리 어머니들은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걸 '살 박는다'고 했다. 떡살의 선명하고 화려한 무늬가 떡을 보기 좋게, 맛있게 만들어줬다.

떡살 무늬에는 각기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떡살 무늬는 떡을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떡을 만든 사람의 기원이나 소망을 담았다. 생일이나 회갑 떡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국수나 거북, 십장생 무늬를 새겼다. 혼례 떡엔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나 대추·포도 문양을 넣었다. 기쁨을 두 배로 한다는 의미로 쌍 희(囍) 자를 새기기도 했다. 제사 떡엔 윤회의 의미로 수레바퀴 무늬를 담았다.

문양에 따른 의미도 달랐다. 국화무늬는 장수를, 포도무늬는 자손의 번영과 부귀를, 석류무늬는 다산을 의미했다. 아무렇게나 대충 찍는 게 아니고, 떡의 쓰임새에 맞는 떡살 무늬를 찍었다. 떡에 새긴 무늬에 따라 제사용이 되기도 하고, 이바지용이 되기도 했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만나는 떡살. 김규석 떡살장이 전승해 온 작품들이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만나는 떡살. 김규석 떡살장이 전승해 온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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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농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떡살 전. 물고기 문양은 물론 갖가지 문양의 떡살을 다 만날 수 있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떡살 전. 물고기 문양은 물론 갖가지 문양의 떡살을 다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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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가 다른 만큼, 떡살 무늬의 종류도 다양했다. 꽃무늬도 있고, 문자도 있다. 동물이나 곤충, 물고기를 새긴 것도 있다. 꽃무늬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은 건 국화와 연꽃, 모란, 매화였다. 국화는 장수를, 연꽃은 축복을, 모란은 부귀를, 매화는 새해를 의미했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벽사를 상징했다. 새는 풍요, 학은 장수, 박쥐는 복과 장수, 나비는 기쁨과 금슬을 나타냈다. 선이나 원, 삼각형, 다각형으로 이뤄진 무늬도 있었다. 선은 장수나 해로를, 태극이나 팔괘 무늬는 음양의 조화를 통한 풍요를 상징했다. 문자 무늬는 수(壽), 복(福), 부귀(富貴), 강녕(康寧) 그리고 기쁠 희(喜) 자를 두 개 나란히 쓰는 쌍 희(囍)를 많이 썼다.

지금은 그 원칙이 완전히 무너졌다. 국적도, 출처도 분명하지 않은 무늬가 들어와 점령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무늬도 아니고, 어떤 뜻도 염원도 없는 무늬가 판을 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전남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떡살 전. '한국의 떡살무늬, 삶의 소망을 담다'를 주제로 하고 있다.
 전남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떡살 전. "한국의 떡살무늬, 삶의 소망을 담다"를 주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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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을 조각하고 있는 김규석 떡살장. 김 장인은 30년 넘게 떡살무늬를 연구, 전승해 오고 있다.
 떡살을 조각하고 있는 김규석 떡살장. 김 장인은 30년 넘게 떡살무늬를 연구, 전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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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떡살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전시회가 있다. 전라남도 영암에 있는 전남농업박물관에서 '한국의 떡살무늬, 삶의 소망을 담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떡 이야기에서부터 떡살과 떡살무늬 이야기를 다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전시된 떡살 문양은 박물관에서 수집한 것도 있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떡살장 김규석 선생이 직접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김규석 선생은 예전처럼 수요는 없지만, 30년 넘게 떡살을 만들며 옛 원형을 계승시켜 온 장인이다. 감나무와 대추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등 재질이 강하면서도 결이 치밀한 나무를 직접 깎아서 만든 떡살 작품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전남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떡살 전. 떡 이야기에서부터 떡살과 떡살무늬에 얽힌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남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떡살 전. 떡 이야기에서부터 떡살과 떡살무늬에 얽힌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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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의 문자 무늬 가운데 하나인 부(富). 문자로 찍히는 무늬 가운데 가장 널리 쓰였다.
 떡살의 문자 무늬 가운데 하나인 부(富). 문자로 찍히는 무늬 가운데 가장 널리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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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도 흥미롭게 꾸며져 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전래동화 〈해님달님〉에 나오는 떡 이야기로 전시가 시작된다. 고대에서 근대까지 떡의 역사도 보여준다. 찌고, 치고, 지지고 등 만드는 방법에 따른 떡의 종류, 떡과 관련된 속담과 풍속도 엿볼 수 있다.

떡살의 제작과정과 재질과 형태에 따른 떡살의 종류, 그리고 떡살무늬에 얽힌 이야기, 떡살 무늬의 현대화 사례까지 흥미진진한 떡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이 다양한 떡살무늬를 직접 찍어볼 수 있도록, 도장형 떡살과 스탬프를 비치한 체험존도 마련돼 있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하는 굴렁쇠 굴리기. 박물관에서는 설날 연휴기간 갖가지 세시풍속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하는 굴렁쇠 굴리기. 박물관에서는 설날 연휴기간 갖가지 세시풍속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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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농업박물관의 농경전시실. 선사시대의 농경에서부터 계절별 농사와 농사도구, 살림살이 등을 다 보여준다.
 전남농업박물관의 농경전시실. 선사시대의 농경에서부터 계절별 농사와 농사도구, 살림살이 등을 다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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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 전시는 3월까지 계속된다. 설 연휴기간에 찾아가면 떡살 전시를 보고, 설날과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행해졌던 다양한 세시풍속 놀이도 체험할 수 있다. 연날리기와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놀이, 팽이치기, 승경도놀이, 줄다리기, 굴렁쇠 굴리기 등을 해볼 수 있다. 옛 전통의상 입어보기, 한지에 새해 소망을 적어 달집에 달기도 가능하다. 모든 체험은 무료로 진행된다. 박물관 입장료도 따로 없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농업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박물관에선 선사시대의 농경에서부터 계절별 농사와 농사도구, 살림살이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조상들의 손때 묻은 생활용품도 있어 자녀들과 함께 가면 더 좋다. 박물관 마당에 장승과 솟대, 원두막과 돌탑, 물레방아와 디딜방아, 장독 등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옛날 고향집 같은 정겨움도 느낄 수 있다.

박물관 뒤편으로 마실길도 나 있다. 떡살무늬 전이 열리고 있는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뒤편 한옥호텔 영산재 앞으로 난 길이다. 장승과 솟대가 많이 세워져 있어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슬렁슬렁 거닐며 설날 연휴 가운데 하루를 '오지게' 보낼 수 있는 농업박물관이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해보는 메주 만들기 체험. 박물관에서는 철따라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을 마련, 운영하고 있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해보는 메주 만들기 체험. 박물관에서는 철따라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을 마련,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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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떡살, #김규석, #전남농업박물관, #떡살무늬, #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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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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