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뺑반> 스틸 컷

영화 <뺑반> 스틸 컷 ⓒ (주)쇼박스

 
낯선 소재 '뺑소니 전담반'이 구린 속도 영상들을 줌인한다. 그러느라 스피디한 카레이싱과 개성적인 캐릭터가 불거진다. 연출하기 나름이라 볼거리 풍성한 범죄액션오락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들이 숨어 있다. 다소 성긴 서사를 존득하게 만드는 굵은 감정선들이 배치돼 있어서다. <뺑반>이 휴먼액션드라마로 변환되는 지점이다.
 
초반의 블랙박스 영상은 광기 띤 카레이서 겸 회장 정재철(조정석 분)을 띄운다. 성급한 나는 뻔한 스토리텔링을 점치며 객석에 깊숙이 박힌다. 내가 허리를 편 건 사건사고의 밑그림이 대충 드러난 즈음이다.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하고 캐릭터들이 부각되어 손에 땀을 쥐기도 한다. 한준희 감독은 그러한 연출 의도를 두 대사를 통해 암시한다.
 
서민재(류준열 분)가 경찰 직분에 충실할 수 있는 건 전직 형사 양아버지(이성민 분) 때문이다. 아들로 품으며 "갚으면서 살자" 다독여서다. 정재철처럼 속도광이던 김민재가 멈춰 된 서민재의 삶은 단순한 뉘우침과 차원이 다르다. 그걸 류준열은 극과 극의 감정 연기 작렬로 전달한다. 엘리트룩의 경찰 은시연(공효진 분)이 낚은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돼선 안 된다"의 삶도 서민재와 동궤다.
 
우리네 사법부의 막힌 곳이 뚫릴 수 있을까
 
 영화 <뺑반>의 한 장면

영화 <뺑반>의 한 장면 ⓒ 맥스무비 영화포스터


<뺑반>은 두 대사에 올인하는 서민재와 은시연을 방향타 삼아 휴머니즘으로 진입한다. 만삭의 뺑반 리더 우선영(전혜진 분)의 등장이 신호탄 같다. 합법적으로 뺑소니치는 정재철을 조이려 합심하는 레커차 기사들의 이웃사촌됨이 건강한 사회의 밑둥치로 다가온다. 여론이 양분된 듯한 화면 밖 세상이 설핏 스친다. 금수저 검사 기태호(손석구 분) 같은 조력자가 나타나 우리네 사법부의 막힌 곳이 뚫릴 수 있을까.
 
공효진은 어느 장소에나 어울리는 은시연 캐릭터에 적역이다. 이성적이어서 차분한 걸 크러쉬 연기가 자연스럽다. 점점 높아지는 경찰의 위상이 장차 윤지현 과장(염정아 분)류의 복제 욕망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AI(인공지능)도 사람류의 강AI는 인간형과 비인간형으로 나뉜다니 민심 대치가 대세일까. <뺑반>은 그런 시선을 키우는 캐릭터들을 오롯하게 살린다는 점에서 볼거리 외연을 인간종까지 확장한 셈이다.
 
그렇기에 <뺑반>의 볼거리는 카레이싱이 아니다. 목맨 부모의 주검을 보게 된 충격으로 말더듬이 속도광으로 치닫는 정재철과 고아 속도광이길 멈춘 서민재의 심리적 맞장뜨기가 진짜 볼 만하다. <뺑반>의 결말 장면은 1심 선고에서 손들어준 서민재를 겨누는 2심 선고를 예고한다. 물론 나는 내심 승패를 정한다. 서민재에게 우선적 가치는 아버지의 미소여서다. 서민재가 질지라도 아버지가 좋아하면 진 게 아닌 거다.
 
질주하는 괴물이 멈추지 못하는 까닭
 
 영화 <뺑반> 스틸 컷

영화 <뺑반> 스틸 컷 ⓒ (주)쇼박스


어찌 보면 세상사는 캐릭터 간 싸움이 짓는 스러질 현상이다. 엽기적인 가해로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목격자들까지 멘붕에 빠뜨리는 눈 부라린 캐릭터가 무섭지 않은 이유다. 질주하는 괴물은 두려움 탓에 스스로 멈출 수 없을 뿐이다. 그 외눈박이 세계는 한결같아서 조정석의 출중한 광기 연기에도 불구하고 밋밋하게 다가온다. 반면 고뇌하는 서민재 캐릭터는 다채롭다. 그런 변화가 진화의 관건이다.
 
내게 <뺑반>은 지금 여기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의 모둠이다. 그걸 가르는 건 두 대사에 스민 삶의 태도 여부다. 흔히 삶의 가치를 아버지의 존재감과 연계한다. 그런 관점에서 정재철에겐 모델링할 아버지가 없다. 그 외로움이 무서워서 속도광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적 승패는 결정 나 있다. 서민재에게 박수치는 누구든 자기관리로써 정재철류 괴물과 맞서야 한다, 끝없이. 아버지가 없으면 어깨동무하는 이웃사촌이라도 늘려가야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사회는 생물이다. 그 생물의 숙주로 사느냐는 내 몫이다. 결론짓고 객석을 떠나니 모처럼 뒤끝이 개운하다.
 
 영화 <뺑반> 스틸 컷

영화 <뺑반> 스틸 컷 ⓒ (주)쇼박스

 
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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