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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고향집에 들어서면 자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부모님께서
달려나와 맞아주신다.
 정겨운 고향집에 들어서면 자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부모님께서 달려나와 맞아주신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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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정겨운 설날이다. 경제 불황으로 살림살이에 그늘은 드리워졌지만 그래도
조상님께 올릴 제수용품을 사러나온 이들로 모처럼 재래시장은 북적이며 살아나고 흥정하는 상인들의 걸쭉한 입담에는 신명이 묻어난다. 떡집에서는 떡을 찌는 고소한 쌀 냄새가 풍겨나오고 임시로 천막을 치고 강정을 만드는 주인장의 바쁜 손놀림에서 명절이 왔음을 실감한다.

주부들은 '명절증후군'을 앓는다고들 하고 '명절도 나이드니 힘들고 번거롭기만 하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그러나 도로는 고향에 가는 차들로 주차장이 되고, 차 안의 얼굴들은 마냥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이다.

누구도 묻지 않는다. 명절이 되면 왜 너나없이 긴 긴 행렬을 이루어 때로 예닐곱 시간의 힘든 여정을 감내하면서도 고향으로 향하는지를. 그저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또 그 윗대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으레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것이 세상살이의 당연한 도리라고 믿을 뿐이다. 참으로 신기하고 소중한 우리 민족의 전통이며 세시풍속이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음식 솜씨가 좋기로 근동에 소문이 나있었다. 할머니는 명절이 가까워오면 미리 달포 전부터 하나씩 준비를 하셨다. 정성스레 보관해두었던
제기를 꺼내 닦고 또 닦으셨다. 좋은 콩만을 골라내어 콩나물도 당신이 직접 기르셨다.

그건 어쩌면 조상에 대한 할머니의 정성이었으리라. 난 아직까지 그때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던 탕국과 육전, 그리고 나물처럼 맛깔스러운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할머니는 큰 함지박에 음식을 골고루 양껏 담아 동네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댁으로 보내셨다.

고향마을 집집마다 담 위로 번져나오던 전을 부치는 노릿한 내음, 온돌방 아랫목에 이불이며 담요로 겹겹이 둘러싸놓은 큰 곰솔통에서 풍겨나오던 식혜 익는 냄새. 다 만들어 광에 내놓은 식혜의 차갑고 달콤한 맛.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명절 연휴동안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제사음식을 먹을 만큼만 간소하게 만들고, 때로는 음식을 주문해 차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명절날의 푸근함과 향수는 여전히 살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 여정 속에서도 고향에 간다. 그리고 고향의 넉넉하고 푸근한
품속에서 아름다웠던 어린시절의 기억 속으로 즐거이 되돌아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태그:#고향,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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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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