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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의 북한 여행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2017년 5월 신은미 시민기자가 다녀온 북한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편집자말]
평양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평양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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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1일 일요일, 주일이다. 평양 봉수교회에서 북녘의 동포들과 한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 첫 북한여행 때가 생각이 난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고 북녘땅의 교회가 '진짜일까 가짜일까' 알아내고자 했던... 그러나 오히려 '공산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의 한복판에서 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난생처음으로 민족의 화해를 갈구했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북한도 사랑하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이 내 가슴에 깊이 들어왔다. 그리고 교만하고 위선적인 그간 내 삶을 부끄러워하며 북녘동포들을 향한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이제 더 이상 '북한 교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논쟁이 적어도 내겐 의미가 없다. 내 마음 속이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한, 내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기 전엔 어느 곳에도 '진짜 교회'란 없다.

북한에 올 때마다 이곳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다 보니 이곳 교우들과도 많이 친숙해졌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교회를 나선다.

대동강맥주가 있는데... 왠 하이네켄?
 
평양의 동네마켓. 아래 하이네켄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평양의 동네마켓. 아래 하이네켄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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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엔 평양의 수양딸들과 소풍이 예정돼 있다. 주문한 도시락을 찾으러 간다. 약속 시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근처 마켓에서 이것저것 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산다. 동네 마켓치고는 꽤 크고 물건도 다양하다.

북녘의 동포들이 선호하는 외국 맥주 하이네켄이 박스째 쌓여 있다. 경제 제재로 인해 외화가 턱없이 부족할 텐데 맛있는 대동강맥주를 놔두고 왜 외국 맥주를 수입하는지 의문이다. 자체 생산을 하지 않는 품목을 수입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맥주 수입은 이해할 수가 없다. 예전 남한에서 외국 물건에 높은 관세를 매겨 수입을 규제하던 때가 있었다. 그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만둔다. 

시간이 돼 도시락을 찾으러 가니 조금만 더 기다리란다. 주문이 많이 밀렸단다. 경미 말로는 일요일이라 야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경미가 조금 전에 갔던 마켓 위층에 작은 백화점이 있으니 시간도 때울 겸 구경 가잔다.

입구에 들어서자 판매원 한 사람이 세련되고 우아한 동작으로 우리를 맞는다. 화장품이 궁금해 다가가니 내게 아이크림을 권한다. 내 눈가에 새겨져 있는 주름살을 본 게 틀림없다. 2012년 5월 나진 선봉에 있는 장마당 화장품 가게 주인도 내가 지나가자 '좋은 품질의 아이크림이 있으니 한 번 써 보시라'며 권한 적이 있다. 판매원과 화장품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평양 소형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
 평양 소형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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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번 왔을때 '봄향기' 화장품을 사서 써 보니 참 좋았어요. 국산 화장품이 우리 얼굴에 잘 맞는 것 같아요. 국산 화장품은 없나요?"
"이 상점에 국산품은 없습니다. 가까운 곳에 국산 화장품 파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거게 가시면 작년보다 더 품질 좋은 화장품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미안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해 주는 판매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화장품 하나를 산다. 내게 '수기치료'를 해 주시는 '평양친선병원' 의사 선생님께 답례하기 위해. 

백화점 물건을 대강 살펴보니 고가의 유명브랜드 상품도 많이 진열돼 있다. 아마도 나 같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본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미국제, 유럽제 상품을 여기서 사지 않을 텐데...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는지 궁금해진다.

"경미야, 이런 곳에 와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니? 너도 이런 곳에서 물건 사니?"
"아이고, 오마니, 저는 이곳에서 안 삽니다. 국영마켓에 가면 훨씬 질 좋고 우리 입맛에 맞는 물건들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요. 여긴 우리 인민들도 사러 오고,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오는 것 같습니다."


나오다 보니 구두 파는 곳에 우리 말을 하는 중년의 여성이 남성화를 살피면서 판매원과 대화하고 있다. 얼핏 보니 몇백 달러 하는 유명 브랜드 상품이다. 외화식당과 마찬가지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백화점도 꾸려놓고 있겠지 싶다.

어쨌든 지금 평양에는 여러 종류의 상점들이 여기 저기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구매력을 갖춘 북한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일 게다.

2012년 평양 남자 그리고 2017년 평양 남자
 
양손에 짐을 들고 가는 설향이 남편(맨 오른쪽).
 양손에 짐을 들고 가는 설향이 남편(맨 오른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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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장소인 모란봉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설경이 부부와 설향이 부부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타고 온 차량 트렁크에서 남자들이 짐을 챙겨 들고 간다. 북한의 남성들이 변해 간다.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짐은 여성몫이다. 한 번은 평양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부인이 아이를 업은 채 어깨엔 가방을, 두 손엔 장난감을 잔뜩 쥐고 힘겨워 하는데 남편은 옆에서 뒷짐을 지고 유유히 걷는 모습. 함경북도에서는 심지어 부인이 끄는 리어카에 올라타 담배를 피우는 남편도 봤다.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한 듯하다.
 
이고 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부인을 빤히 쳐다 보며 뒷짐 지고 걸어가는 북한의 한 남편(2012년 4월 18일 평양).
 이고 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부인을 빤히 쳐다 보며 뒷짐 지고 걸어가는 북한의 한 남편(2012년 4월 18일 평양).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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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수양사위들은 다르다. 아내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들이 도맡아 들고 간다. 늠름한 사위들을 듬뿍 칭찬해 준다. 옆에서 빈 손으로 걸어가면서 내 칭찬소리를 듣고 있던 남편이 방해를 한다.

"하아~, 이런 사람들 하곤. 그런 건 여자들한테 맡겨야지 체통없이 그런 걸 들고 다녀."

설향이 남편이 묻는다.

"미국서는 녀성들이 듭니까?"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이 사람아."


곧바로 설향이가 끼어든다.

"아바이도 거짓말 하시는군요. 저희가 서양인들을 안내하는 '조선국제려행사' 일꾼들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농담을 하며 걷다 보니 남편이 미안했는지 설경이 남편이 들고 가던 짐을 하나 달라고 한다. 그러나 줄 리가 없다.

소풍 자리의 화제 
 
나의 북한 수양가족들(오른쪽 부터 설경이, 설경이 남편, 경미, 설향이, 설향이 남편).
 나의 북한 수양가족들(오른쪽 부터 설경이, 설경이 남편, 경미, 설향이, 설향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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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가 있는 곳에 자리를 펼쳤다.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남자들에게는 며칠 전 발사한 미사일에 대한 이야기가 단연 화제다. 내가 신의주에 도착하기 바로 전날 발사한 화성12호에 대한 이야기같다. 설경이 남편이 말한다.

"이자(이제) 머지 않아 미국 오데라도(어디라도) 때릴 수 있는 탄도로켓(미사일)도 쏠 겁니다."
"에구, 이 사람아, 무서워서 이 오마니 미국서 어떻게 살라고 그런 말을 해."

"걱정 마십시요, 오마니. 그 핵탄두 로켓을 실제 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럼 그걸 왜 만들어?"
"조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침략하면 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핵으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미국이 우리를 공격 못 합니다."

"에구, 앞으로 유엔이나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가 더 심해질 텐데..."
"오마니, 우리가 경제 제재 받은 게 하루이틀인 줄 아십니까?"


지난번 경미가 한 말과 같은 말이다. 북한동포들에게 서방의 경제제재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계속 말을 이어간다.

"오마니, 왜 우리가 다른 나라와 싸우며 살갔습니까? 오마니께서도 '조선국제려행사'를 통해 서양인들과 함께 조국 여행 해보셨잖습니까. 우리가 미국 관광객들을, 미국 인민들을 적대시 했습니까? 얼마나 함께 웃으면서 재밌게 관광합니까. 북남의 우리 민족이 외세에 지배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인데... 잘 될 겁니다. 오마니, 너무 걱정 마십시요."

솔직히 나는 너무 무서웠다. 그 화성 12호라는 것이 대기권을 비행해 길게는 내가 살고 있는 남캘리포니아까지 날라올 수도 있단다. 특히 남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에는 주요 미 해군기지가 있다. 만일 북에서 남캘리포니아로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샌디에이고가 목표물 중 하나가 될 텐데...

설향이가 '어서 맥주를 드시라'며 분위기를 바꾼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간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것일 텐데 그 과정이 너무나 무섭고 험난하다. 그래도 옆에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반주와 노랫소리에 모두들 어깨춤을 춘다.

북녘의 딸들, 사위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이들이 내가 살고 있는 남캘리포니아로 절대 핵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이들은 평화를 갈구하고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인류니까.

일찌감치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내일은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부모님을 만나는 날이다. 부모님께 남녘 대구에 있는 딸의 목소리를 꼭 들려드릴 것이다.
 
모란봉공원 주차장에서 작별인사를 하며.
 모란봉공원 주차장에서 작별인사를 하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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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한, #평양, #신은미,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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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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