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일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지난 10일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XINHUA

관련사진보기

 
문희상 국회의장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왕이 직접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을 두고 일본 정치인들이 강한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정말로 놀랐다, 극히 유감"이라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비록 일본 공산당 시이 위원장이 "헌법상 천황(일왕)은 정치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총리가 육성으로 사죄해야 한다"라고 아베 총리를 비판했지만, 일본 정치계의 정서는 '유감'으로 요약된다.

문희상 의장의 발언에 뒤따르는 일본의 반응을 보니 그들의 '단면'을 다시 보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한 일본인 학자의 뜻밖의 대답
  
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앞두고, 하얼빈 거사 100주기였던 2009년 10월 26일 한국을 출발, 연해주 크리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스리스크, 중소국경도시 포브라니치아, 쑤이펀, 하얼빈, 지아이지스고(채가구), 창춘을 거쳐 다롄의 뤼순감옥까지 답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다롄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다롄대학교 역사학자 유병호(劉秉虎) 교수를 만났다. 그때 나와 유 교수 외에 다른 손님도 있었다. 환일본경제연구소 미우라(三村光弘 ․ 당시 40세) 연구주임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당시 나는 그에게 '왜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에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가' 물었다. 그러자 예상 외의 답이 돌아와 적지 않이 놀랐다.

"일본인은 담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그릇이 작은 탓입니다."(관련 기사 : 정확하고 정직해야 강대국이 될 수 있다)
 
한일병합 당시 주한 일본군 아카시 헌병대장
 한일병합 당시 주한 일본군 아카시 헌병대장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일본인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다. 2005년의 일이다. 일제강점 직전 13도 창의군 군사장으로 당시 일본 헌병대장 아카시에게 체포돼 끝내 서대문형무소(당시 경성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왕산 허위 선생이란 분이 있다. 당시 EBS는 허위 선생의 손자와 아카시 후손의 만남을 주선해 진정으로 화해한다는 의도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필자도 이 프로그램의 제작에 관여했다.

EBS 김동관 PD는 도쿄에 살고 있는 아카시의 후손을 만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출연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카시의 후손은 이를 거절했다. 피해자가 용서해주겠다고 손을 내미는데도 그 손을 뿌리친 것이다(결국 EBS는 화해 부분을 담지 못한 채 <왕산가의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2005년 6월 22, 23일).

이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 "유감"이라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30년 가까이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이제 살아 있는 증언을 해주실 할머니가 23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문희상 의장이 못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 의장 스스로도 이번 일을 두고 "(일본에)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12일 미국 워싱턴D.C. 특파원 간담회에서). 

문희상 의장의 발언을 갖고 "유감"을 운운하는 아베 총리와 고노 외무상 등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국가가 저지른 만행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 것인가'라고. 여기, 지난 2013년 돌아가신 황금주 할머니(1927~2013)께서 생전에 기자에게 전한 증언을 옮긴다.
 
고 횡금주 할머니가 일본 나고야 집회에서 지난날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고 횡금주 할머니가 일본 나고야 집회에서 지난날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 이토다카시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어느 날 공장에 갈 직공을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 우리를 실은 트럭은 캄캄한 밤중이 돼서야 어느 육군부대에 도착했습니다. 나중에 그곳이 '히노마루' 부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다음날부터 우리는 군인들을 상대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20여 명 정도의 군인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여자는 장교와 심한 싸움을 했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반항하다가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도 계속 반항하니까 그 장교는 벌거벗은 그 여자의 음부를 향해 권총을 쏘아 죽였습니다. 이런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을 일본인들이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관련 기사 : 위안부 피해자 3명, 그들의 '끔찍한' 증언)


서독 빌리브란트 수상의 진정어린 사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일 양국 앞날을 위해 일왕은 물론 아베 총리까지 한국으로 건너와 옛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앞에서 국화꽃을 바치며 무릎 꿇고 사죄하라.

그래야 한국인의 얼어붙은 대일 감정이 녹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한일 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이웃사촌의 나라로 화해 협력의 새 장을 열 수 있다.

참고로 1970년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한 후 무릎 꿇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죄한 사진을 첨부한다. '그릇이 작은' 일본인들이여, 참고하시라.
 
1970년 12월 7일, 빌리브란트 서독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하여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화환을 바치며 무릎을 꿇어 사죄하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빌리브란트 서독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하여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화환을 바치며 무릎을 꿇어 사죄하고 있다.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태그:#문희상, #아베,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사과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