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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다. 탯줄로 이어졌던 모태라는 생물학적 근거와 이로 인한 공통분모인 어머니를 갖는 생물은 어떤 수식이 없는 '어머니'라는 한 음절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공감한다.

어‧머‧니를 읽으면 윤동주 시의 단어처럼 삼킨 속울음 때문에 순간 숨을 멈추게 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가슴 속 무늬가 남는다. 어머니를 부르면 언어나 내용보다 앞선, 해제를 선물한다. 어린이와 외로운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되었던 권정생 선생도 임종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돌아가셨다고 한다.

인류 중 한 사람, 이혁발도 어머니가 있었다. 지상에 없던 단어를 생산하고 굳어진 관습과 위선을 반추하기 위한 자신만의 언어와 시각으로 세상의 이단이 된 그도 역시 '사람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하긴 그의 살림살이 묘법에서 깜짝 발견되는 '민간인' 증후는 크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극상의 전위와 촘촘한 보수의 공존이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무엇보다 그의 고달플 지구 생활이 걱정되었으나 어떤 이상적(육감도) 세상도 이 지상에서 이룰 가시적 성과를 중시한다면 직시한 현실감각은 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남기신 물건들과 비닐봉지 같은 하찮은 것들과의 조합으로 어머니의 기운이 서린 신묘한 조형물을 펼쳐내는 것” 이라고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었다.
▲ 어머니 전 어머니가 남기신 물건들과 비닐봉지 같은 하찮은 것들과의 조합으로 어머니의 기운이 서린 신묘한 조형물을 펼쳐내는 것” 이라고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었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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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발 작가는 특유의 결벽이나 완벽성 때문에 다작이나 잦은 전시를 하지 못한다. 헌데 작년에 두 번의 개인전 후 새해 벽두에 또 개인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가볍지만 진정 반가운 마음에 "오, 이제 작품 욕에 시동이?" 했더니 "어머니가 남기신 물건들과 비닐봉지 같은 하찮은 것들과의 조합" 인데 "작품을 안 하면 종종 나오는 어머니라는 단어와 함께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라며 "불효를 속죄하는 마음으로"라며 답을 보내왔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너털웃음만 떠오르던 그에게서 문득 심각한 얼굴이 그려져 서둘러 "좋은 결단이오, 응원을…" 했다. 어머니?…! 국민 화두이긴 하지만 도발과 전위의 첨병으로 살아왔던 이혁발 작가에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이쯤 맥락을 이해하고 다음 작업들을 살펴본다.

빈 들통에 찜기를 엎은 구멍 사이로 앙상한 철사를 줄줄이 꽂아 놓았다. 제목에 있는 <매우 풍성한 꽃>은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정작 어머니 당신은 남루한 빈 거푸집만 남았다.
 
빈 들통에 찜기를 엎은 구멍 사이로 앙상한 철사를 줄줄이 꽂아 놓았다. 제목에 있는 <매우 풍성한 꽃>은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 <매우 풍성한 꽃> 빈 들통에 찜기를 엎은 구멍 사이로 앙상한 철사를 줄줄이 꽂아 놓았다. 제목에 있는 <매우 풍성한 꽃>은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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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목의 역설은 말라비틀어지고 토막 난 고주박에 삭정이가 꽂힌 <거대한 숲>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때 풍요로웠을 어머니의 숲은 이제 물기가 마르고 송진도 흘러내린 지 아득한 흔적뿐 토막으로 기대어 있다.

뒤늦게 통한의 역사를 바투 안았을 때 이미 어머니는 찢겨지는 달력처럼 <세월로 가는 배> 속으로 떠나 버리고 '옹기 위 나뭇가지에 걸린 흰색 옷걸이 하나'(<그렇게 떠나가고>)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말년에는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 칼날이 서걱이는 것처럼 아픈 식사를 하셨던 기억을 시각화시켰다.”고 작가는 증언한다.
▲ <어머니의 식사> 말년에는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 칼날이 서걱이는 것처럼 아픈 식사를 하셨던 기억을 시각화시켰다.”고 작가는 증언한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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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동안 세세하게 살펴드리지 못했던 <어머니의 식사>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어머니는 '자식들 입에 밥 넘어 가는 소리가 제일 행복'하시다고 했던가. "먼저 자식들 입부터 챙기느라 당신은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말년에는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 칼날이 서걱이는 것처럼 아픈 식사를 하셨던 기억을 시각화시켰다."고 작가는 증언한다.

<어머니의 식사>와 <객귀야 물렀거라>가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알곡을 나누어 주고 남은 부실한 어머니의 식사와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투사가 되는 것이 어머니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작가가 "잔병이 들었을 때 윗방에 눕혀놓고 "객구야 물렀거라"며 도마, 칼, 바가지, 물을 이용한 의식을 종종 행하였다."고 한다.

여러 개의 빗을 끼운 <반성, 돌아보다>나 <하늘에 구름 떠가고>, <희망의 깃발>은 배 보호용 포장그물, 홍두깨, 방망이, 옷걸이 등을 이용해 회한과 남은 삶을 펼쳐 놓은 듯하다. <복 들어와라>는 완성된 조형성보다는 사용된 하나하나의 재료에 의미가 더 있을 듯하여 열거해 본다. 복 불러오라고 어머니가 작가에게 비닐에 싸준 백 원짜리 동전, 액운을 쫓게 만든다고 어머니가 만드신 소금덩이, 부지깽이, 지갑, 돈 가방.

스테인리스 그릇과 제기를 쌓아 만든 <자식 위한 기도>와 평생 연골을 닳게 한 호미 몇 자루와 장아찌 담글 때 쓰던 돌은 <열아홉에 시집와서 어느새 자연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세월을 표현한 재료로 적절해 보인다.
 
평생 연골을 닳게 한 호미 몇 자루와 장아찌 담글 때 쓰던 돌은 <열아홉에 시집와서 어느새 자연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세월을 표현한 재료로 적절해 보인다.
▲ <열아홉에 시집 와서 어느새 자연으로> 평생 연골을 닳게 한 호미 몇 자루와 장아찌 담글 때 쓰던 돌은 <열아홉에 시집와서 어느새 자연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세월을 표현한 재료로 적절해 보인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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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없는 모성>은 소박해서 따뜻하다. 플라스틱 광주리에 담긴 브라 컵을 맞대 만든 볼이 옹기종기 모이고 중앙에는 가죽옷으로 세운 모체가 있고 이 구조물을 받치는 유리병이 세워져 있다. 생명수와 젖으로 자식을 기른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이 바구니 가득하다.

논농사 때 소가 끄는 닳고 낡은 나무 써레가 어머니 자체인 <19살에 시집와서 농사, 농사, 농사>를 시작해서 빈 몸으로 가셨지만 열다섯 가지의 옷이 사용되어 각기 다른 사연과 열매로 남겨진 <86년간의 삶>까지, 빈 페트병이지만 <풍성한 삶>도 있었고 <응어리, 삶이라는 꽃>도 있었다.

 평소 <정갈하셨던 어머니>는 '빗자루가 있는데도 아들에게 매번 사주셔서 그 빗자루가 어머니의 형상으로 팔을 벌리고 아들을 바라보고 계신다.'고 회상했다.
선풍기와 비닐봉지를 이용해 어머니가 쉬셨을 마지막 <날숨>을 기억해 보는데 <아득한 우주, 저 멀리서>보고 계실까.

이제 어머니가 생전 깔고 <머물렀던 자리>인 소파와 장판들을 염을 하듯 꽁꽁 묶어 세워놓으니 한층 더 구체화되는 어머니의 부재, 정녕 어머니는 아니 계신 것인가?
  
이제 어머니가 생전 깔고 <머물렀던 자리>인 소파와 장판들을 염을 하듯 꽁꽁 묶어 세워놓으니 한층 더 구체화 되는 어머니의 부재, 정녕 어머니는 아니 계신 것인가?
▲ <머물렀던 자리> 이제 어머니가 생전 깔고 <머물렀던 자리>인 소파와 장판들을 염을 하듯 꽁꽁 묶어 세워놓으니 한층 더 구체화 되는 어머니의 부재, 정녕 어머니는 아니 계신 것인가?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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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번 어머니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 목도하면서 "태어남과 죽음, 삶의 허망함, 찰나의 인생" 등과 아울러 "물욕의 의미 없음"이 절절히 다가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제목과 작품으로 남은 것이다. <허망하고 허망하다>,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그 많은 전설들>의 실상은 기껏 냄비, 그릇, 찻잔, 쓰레받기들이고 <엄마의 사리>는 냄비, 젓가락, 실패이고, <허망한 삶, 허망한 사리>는 달걀 보호판, 배 보호용 포장그물, 사과 보호 스티로폼판, 구슬, 그릇으로 구성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푸르고 싱싱한 날들도> 한낱 낫과 옷걸이로 만들어져 있고 다시 한없이 가볍고 초라한 플라스틱 소쿠리, 제주잔, 젓가락을 쌓아 놓고 <존재의 무거움>을 말한다. 하지만 웨하스처럼 부서지기 쉬운 스티로폼대 위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존재의 불안'이 올려져 있기도 하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쉽게 어머니를 볼 수 있음을 가벼운 일상용품으로 표현했지만 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곧 세상을 잃는 것과 같은 절망감 속에서 배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울이 빠진 액자 판에는 <몸짓,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며> 무작위적인 몸짓과 손짓으로 남긴 애절한 회화의 흔적이 선연하다.
  
작가는 “빛남은 생명이며 아름다움이며 동시에 그 찬란함이 주는 허무의 노래”라고 했다.
▲ <아득한 우주, 저 멀리서> 작가는 “빛남은 생명이며 아름다움이며 동시에 그 찬란함이 주는 허무의 노래”라고 했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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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전에 나온 대개의 작품들이 어머니의 숭고하지만 속절없고 하염없는 사랑을 현실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반어법이나 역설이 많고 어머니가 쓰던 낡은 재료는 남루할 수도 있지만 실 사용된 오브제로서의 생명력이 주목된다.

작가에 의하면 젓가락 하나의 함의에도 '빛남의 미학'이 숨어 있고 "하찮은 비닐 한 조각도 관심 받고 선택되면 존재가 되고 꽃이 된다"고 했다. 또 "빛남은 생명이며 아름다움이며 동시에 그 찬란함이 주는 허무의 노래"라고 했다. 하지만 그 '빛'을 얻기 위해 길들여 닦고 윤을 내야 빛이 보존되는 놋의 물성은 어머니를 평생 놓지 않는다.

 "뒤늦게 대오각성한 미술하는 자식은 그간의 불효를 참회하는 심정으로 어머니의 기운이 서린 신묘한 조형물을 펼쳐내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었다.

 어머니는 매일처럼 정화수를 떠서 올리시고 <비나이다 우리자식 잘 되기를> 빌 듯, 또, 성황당을 지날 때마다 돌을 하나씩 얹듯 살아생전 또 하나의 가슴 속 기원의 탑을 쌓아 오셨던 것이다.

태그:#이혁발 , #행위미술가, #어머니 전, #설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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