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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사진은 모두 네거티브 필름을 이용해 촬영 후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사진마다 기종 및 필름의 종류를 괄호 내에 표기하였습니다. - 기자 말

1월 7일 새벽 0시 30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위해 차량에 각종 야영 장비와 옷을 잔뜩 넣고 제주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눈이 쌓인 맑은 날을 기다려 한라산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열흘 동안 기다리게 되었고, 2주 정도 기간 동안 여유롭게 많은 곳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전 기사: 눈 귀한 겨울... 열흘 기다렸더니 한라산에 드디어

16박 17일 동안 계속되었던 여행은 미세먼지와의 눈치 싸움이었다. 하루 전에 예보를 확인하고 그날 그날 여행 계획을 즉석으로 세웠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바다로 나갔고 비교적 시야가 좋은 날은 산으로 올랐다. 최고로 심했던 이틀은 실내에서 책을 읽었다.

손자봉에서 바라본 동쪽 풍경

그리 유명하지 않은 여행지를 좋아한다. 창작이 가미되지 않는 풍경사진을 찍다보니, 다소 소박하더라도 흔치 않는 모습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위성 지도를 볼 수 있으니 참 편하다. 밤이 되면 텐트에서 다음 날 가고 싶은 곳을 지도 어플을 통해 찾는다.

1월 10일 오후, 손자봉(손지오름)으로 향했다. 그곳에 오르면 용눈이오름과 성산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발걸음이 많이 닿지 않다 보니 등산로를 찾기 어려웠다. 오름은 그리 높지 않아서 20분도 걸리지 않아 능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자봉에서 본 용눈이오름 (SW612/Portra400)늦가을이었다면 하얗고 풍성한 억새꽃이 장관이었을 것이다. 갈색으로 물든 용눈이오름의 곡선이 참 아름답다. ⓒ 안사을

손자봉의 매력은 비단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만 있지 않다. 손자봉 자체의 모습도 꽤나 아름답다. 어떤 블로거는 '모히칸 머리를 한 사나이'같다고 표현했다. 아래의 사진은 동검은이오름(동거미오름)과 손자봉 사잇길에서 담은 모습이다.
 
멀리서 본 손자봉 (SW612/Pro400H)겨울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벌판과 파란 하늘 사이로 손자봉이 보인다. 왼편에 있는 오름은 다랑쉬오름이다. ⓒ 안사을
 
손자봉과 동검은이오름 주변은 그야말로 제주 내륙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풍경으로 가득했다. 관광지로 개발할 만큼 엄청난 경치가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바람을 친구 삼아 홀로 몇 시간이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이름없는 언덕에서 (SW612/Portra400)왼쪽부터 다랑쉬오름, 족은다랑쉬오름, 손자봉이 있고 그 뒤로 아주 작게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 안사을
 
북쪽을 바라보면 (SW612/Portra400)왼편에는 높은오름, 오른편으로는 다랑쉬오름의 일부가 보인다. 가운데 작게 보이는 오름은 돗오름이고 그 오른편으로 비자림이 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15킬로 가량 떨어진, 제주 북쪽 바다. ⓒ 안사을

이 날의 탐방은 사실 사전답사에 가까웠다. 일출경을 담을 위치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손자봉에서 용눈이오름과 성산일출봉을 방향으로 사진을 담을 위치를 정하고 며칠을 기다렸다. 이윽고 먼지가 없는 날이 되었고 어둠 속을 천천히 달려 손자봉을 다시 찾았다. 

수면과 맞닿은 해는 찍을 수 없었다. 구름이 잔뜩 몰려왔기 때문이다. 일출시각 직전에는 하늘이 비어있었는데 해가 떠오르는 속도와 맞추어 기가 막히게 해를 가렸다. 허탈감에 터덜터덜 산을 내려와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구름을 뚫고 빛이 내려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다시 산을 올랐다. 삼각대 채로 카메라를 손에 들고 뛰었다. 이런 극적인 풍경은 10분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침이 말라 목이 붙으면 소리를 질렀다. 원맨쇼에 가까운 행위 덕분에 용눈이오름을 향한 태양의 스포트라이트를 잡을 수 있었다. 
 
손자봉에서, 아침 (SW612/Pro400H)빛내림을 선명하게 담기 위해 노출을 두 스톱 아래로 계산했다. ⓒ 안사을
   
하늘의 틈 사이로 (SW612/Pro400H)5분 후의 모습. 이전 사진과 달리 한 단계만 아래로 노출을 계산했다. ⓒ 안사을
 
성읍 영주산의 계단을 오르면

예로부터 성읍마을의 주산으로 여겨진 산이 하나 있다. 그 이름도 신성한 '영주산'이다. 사실 영주산이라는 명칭은 한라산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세 개의 산이 있는데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 그것이다.

봉래산은 금강산이고 방장산은 지리산이며 영주산은 지금의 한라산이다. 성읍의 주산에 영주산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을 보면 그만큼 이곳이 주민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성읍마을에서 천미천을 따라 서북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영주산의 들머리를 만날 수 있다. 정상까지는 약 25분이 소요된다. 오름의 특성상 높이는 낮지만 쉼 없이 올라가는 길이니 잠시나마 숨이 찰 각오는 해야 한다.

이곳은 '산'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역시 오름 중의 하나이다. 말굽형 분화구가 있어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의 산체로 보이고, 동남쪽이 터져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직접 오르기 전까지는 기생화산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영주산 초입 (SW612/Pro400H)왼편의 움푹한 곳이 분화구. 서북쪽 방향으로 올라간다. ⓒ 안사을
  
색색의 계단과 동쪽 풍경 (SW612/Pro400H)숨이 찰 즈음에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풍경 ⓒ 안사을
 
이 날의 미세먼지 상황은 '나쁨'이었다. 영주산은 해발 326미터의 작은 산이지만 주변이 평지이고 건물이 거의 없어서 동쪽으로는 해변까지의 평원, 서쪽으로는 한라산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뿌연 시야였지만 마음을 비우고 셔터를 눌렀다.
 
영주산 정상에서 (SW612/Pro400H)정상에서 바라본 동편의 모습 ⓒ 안사을
   
정상에서 본 성읍저수지 (SW612/Pro400H)지도나 네비게이션에는 나오지 않는 저수지. 사진의 가장 왼편에 매우 희미하게 한라산이 보인다. ⓒ 안사을
 
성읍저수지 주변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억새 평원이 펼쳐져 있다. 저수지의 주변은 산에 오르기 며칠 전에 미리 탐방을 다녀왔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곳이었는데 몇몇 글을 보니 밭을 일구는 주민들이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로 불편을 겪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역시 아무도 없는 길을,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흔적 없이 답사했다. 저수지와 평원은 영주산과 개오름의 사이에 있다. 개오름으로 가는 길은 고요한 산책로로 손색이 없었는데 개오름으로 진입할 수는 없다. 사유지를 보호해 달라는 팻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읍저수지와 영주산 (645N/Ektar100)파란 하늘보다 더 짙은 물빛 뒤로 영주산이 보인다. ⓒ 안사을
     
물과 길 (SW612/Pro400H)두시간여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도 좋을 듯 한 곳. ⓒ 안사을
  
억새 사이로 걷는 길 (645N/Ektar100)개오름 방향으로 향하는 길. ⓒ 안사을
  
영주산 뒤편 억새밭 (SW612/Pro400H)억새의 지평선 너머로 오름들이 하나 둘 씩 보인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풍경. ⓒ 안사을
 
백약이오름에서 다시 만난 빛내림

기사에 다룬 곳들 외에도 붉은오름, 동검은이오름, 아부오름 등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그 중 관광객이 가장 많았던 곳은 백약이오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주오는 등산객들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수 있었다.

백약이오름은 분화구의 모양이 확연히 드러나있다. 분화구 능선까지 오르막을 오른 뒤 분화구 주변을 한바퀴 돌면 훌륭한 산책 코스가 된다. 한라산을 비롯해서 그 동안 올랐던 많은 오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역시 구름이 잔뜩 하늘을 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주도는 흐려도 아름답다.
 
백약이오름에서(1) (SW612/Pro400H)회색 하늘에도 빛은 있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바로 영주산이다. ⓒ 안사을
   
구름과 분화구 (SW612/Pro400H)잔뜩 찌푸린 하늘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하다. ⓒ 안사을
  
백약이오름에서(2) (SW612/Pro400H)흩뿌리는 빛줄기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 안사을
 
※ <필름사진 여행기>, 제주도 야영 생활 및 해변 풍경에 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태그:#제주도, #손자봉, #영주산, #백약이오름,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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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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