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 권우성


비(非)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의 신기록을 쓴 JTBC < SKY캐슬 >. 드라마의 높은 인기는 시청률로만 체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부 감수하시겠습니까?"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인기의 척도'라 불리는 패러디가 쏟아졌다.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부터 예능인 유재석·서장훈·안영미, 가수 바다 등 인기 스타들도 그 열풍에 가세했다. 이들은 모두 한 올 흐트러짐 없는 올백 머리에 고압적인 듯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의 김주영 선생을 흉내냈다. < SKY캐슬 >의 신드롬급 인기 중심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생 캐릭터', '제2의 전성기', '신드롬급 인기'... 지금 김서형의 높은 주가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지난 9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서형은, 불안함과 걱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인기를 기쁘게 누리기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 같았다. 마치 김주영이 극 중 예서(김혜윤 분)에게 주입시키듯 말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 

김서형의 이런 의심은 상처에서 비롯됐다. 10년 전, 긴 무명 끝에 만난 <아내의 유혹>(2008) 신애리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지만, '너무 센' 캐릭터를 '너무 잘' 해낸 탓에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았던 기억. 그래서 김서형은 신애리 못잖게 강렬하고 센 캐릭터 '김주영'으로 받는 10년 만의 관심을 마냥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누릴 수 없었다. 지난 1일 방송된 <연예가중계> 인터뷰 중에는 눈물까지 쏟았다. 

"아,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다음 작품, 이후 행보 묻는 말에 답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지더라. 지금은 <아내의 유혹> 때처럼 어리지도 않고, 그때만큼 (바로 뭔가 될 거라는) 기대도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순간 덜컥 겁이 나더라고. 방송이 나간 뒤 너무 창피했다. 이런 시기를 나만 겪는 것도 아닌데, 다른 배우들은 금방 털어내고 잘만 이겨내는데 마치 나만 힘들었던 것처럼 징징거린 것 같아서. 그래서 <한밤> 녹화 땐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갔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인터뷰 당시) 아직 방송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또 너무 가볍고 방방 뜬 모습으로 나가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궁금해 죽겠다."

- 하지만 <아내의 유혹> 때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과거에는 대중의 관심이 '신애리'라는 캐릭터에만 쏠렸다면, 지금은 '배우 김서형'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크다. 그리고 이건 <굿와이프>부터 칸 영화제, < SNL 코리아 >까지 쭉 이어져 온 상승세였다. 물론 김주영이 이 상승세에 기폭제가 됐음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것도 있다. 사람들이 '김주영'이 아니라 '김서형'에 대해 이야기하니 더 멈칫하게 된다. 원래 난 거침없는 사람인데 갑자기 더 조심해야 할 것 같고... 김주영과 김서형은 다른 사람이다. 이 갭을 대중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줄까? 김주영에 대한 기대치를 나라는 사람이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 이상의 뭘 보여줄 수 있을까? 다음 작품이 정말 중요할 텐데, 섣불리 고르지 못하겠다."

김주영, 신애리 이후 10년의 완결판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 권우성


- 앞선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주영을 연기하면서 힘들고 외로웠다는 말을 했더라.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내의 유혹> 신애리도 있었고, <샐러리맨 초한지> 모가비도, 최근작인 <이리와 안아줘>의 박희영도, 모두 역대급 악역들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악역으로 규정되더라도, 나는 그 인물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내가 맡은 캐릭터들의 행동을 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김서형이라는 사람은 평범한 한 개인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캐릭터들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려 할 때마다 늘 내 한계를 시험받는 느낌이다. 굉장한 스트레스지만, 이게 또 굉장한 희열이기도 하지. 

한계에 부딪히는 고통도 즐긴다는 마음으로 연기한다. 하지만 김주영은 내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외로움의 끝. 내가 맡았던 역할 중 제일 고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주영은 언뜻 보면 차분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가슴 속엔 누구보다 끓는 분노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냥 침착한 게 아니라, 감정을 있는 대로 끌어올린 다음, 표출하는 게 아니라 억눌러야 했던 거다. 이게 너무 힘들었다. 감정 소비, 에너지 소비가 컸다." 

- 그 정도로 고통을 견디며 연기했을 줄 몰랐다. 
"김주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지, 사실 연기하는 건 쉬웠다. 지난 10년 동안 만난 캐릭터들의 감정들이 여기 많이 포함돼 있었거든. 예를 들면 <샐러리맨 초한지> 때 이덕화 선생님을 죽이고 웃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서진(염정아 분)이 곽미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 그 장면을 떠올리며 연기했다. 그때가 3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도 모가비의 감정을 이해하기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는데, 그때 치열했던 고민이 도움이 되더라." 

- <굿와이프> 종영 인터뷰에서 만났을 때 늘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부담을 이야기했었다. 신애리 이후 세고 강한 역할을 맡아왔는데, 그 10년의 시간이 오늘의 김주영을 만들었나 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늘 비슷한 캐릭터를 맡는다고 이야기한다. 김서형이라는 사람이 세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른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건 잘난 척이 아니라, 배우로서 내 직업의식이다. 캐릭터가 가진 성격이 비슷하다면 외형이라도 달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특히 스타일링을 정말 열심히 했다. 

이번에 올백 머리를 했던 것도, '감수하시겠습니까' 이 대사를 계속 연습하다 보니 왠지 사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쪽을 지진 못하더라도 고전적인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빈틈도 없어 보이는 캐릭터 성격과도 잘 맞았고. 너무 끌어올려 묶어서 두통에 견인성 탈모까지 왔지만, 내가 생각한 김주영을 표현하기 위해 참았다. 아무리 바빠도 대본 펼쳐두고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하며 의상 하나하나를 골랐다. 이 모든 건 < SKY캐슬 >이라서, 김주영이라서가 아니었다. 난 매번 이렇게 해왔다. 시청률이 잘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없이. 

이런 나를 그저 까탈스럽고 예민하다고,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생각하는 매니저들도 있었다. 좀 쉽게 쉽게 하라고, 좀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보여줄 수 없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10년 동안 매번 지지 않고 싸웠고, 덕분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지금은 좋은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만났다. 이런 내 고집을 잘 이해해준다. 지금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더 일찍 만났다면 더 빨리 성공했을 텐데. (웃음)"

두 번 거절한 이유? "이럴 줄 알았거든!"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 권우성


- 두 번 고사하고 출연을 결정했다. 이렇게 열심히, 이렇게 잘할 거면서 왜 두 번이나 거절했나.  
"내가 이럴 줄 알았거든! 하하하. 김주영이 어떤 캐릭터로 진화할지,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지만 느낌이 왔다. 그래서 소속사 대표에게 '난 분명히 아플 거야', '너네한테 짜증 엄청 낼 수도 있어' 경고까지 했다.

함께 출연하는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번에는 선택을 더 망설이게 한 이유였다.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또 비슷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 좋은 배우들 속에서 내 색깔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미 많이 했던 역할이니 설렁설렁해야지 하는 성격도 못 되고, 보나마나 난 또 세상 스트레스 혼자 다 받는 것처럼 힘들게 연기할 테니 끙끙 앓을 게 뻔했다. 내가 그런 내 꼴을 보기 싫었다. 무엇보다 <이리와 안아줘>를 하면서 감정과 체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이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 그럼에도 출연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가 뭐였나. 
"소속사 대표가 조현탁 감독님 한 번 믿어 보라더라. 유현미 작가님과는 <그린로즈>에서 같이 일해 본 적이 있었고, 이후 작품들도 챙겨 봤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다.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건 망설인 이유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조건이기도 했고. 

사실 감독님에 대해 이번 작품 전까진 잘 몰랐다. 대표가 믿어 보라 할 때도 반신반의였는데, 첫 방송 보고 바로 '전적으로 믿어 봐?' 싶더라. 특히 (김)정란 언니 죽는 장면은 정말...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니까 당연히 잘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영화처럼 멋있게 담아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첫 방송 시청률은 1%대였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이 멋진 배우들과 훌륭한 스태프들 사이에서 한 번 제대로 불태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배우들의 선의의 경쟁이, 작품에 더 힘을 불어넣었나 보다. 
"작품을 할 때마다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배운다. 정아 언니는 그 많은 분량을 감당하면서도 티도 안 내고 다 견뎌냈다. (윤)세아도, (오)나라도, (이)태란이도, 각자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다들 티도 안 내고 버텨내더라. 나는 촬영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촬영이 딜레이된 적도 있었는데... 다들 담백하게 견뎌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유난스레 티를 내나, 왜 눈물까지 쏟았나, 싶어 스스로가 싫어지기도 했다."

- 극중에서 혼자라 더 외로웠던 게 아닐까? 다들 남편이든, 자식이든, 이웃이든, 감정을 주고받는 상대 역할이 있지만, 김주영은 그런 교류 상대가 아예 없으니까. 
"모르겠다.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해도 이렇게 힘들어 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감독님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사실 중반부에 시청자가 내 연기를 지루해 하면 어쩌나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김주영은 접촉하는 사람도 제한적인 데다, 대화 구도나 패턴이 늘 비슷하니까. 그때마다 감독님이 '이게 맞다'고 확신을 줬다. 그게 김주영이라고. 13회 엔딩에서 김주영이 자기 집에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들으며 한서진을 기다리는 장면이 있는데, 방송을 보다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저렇게 연기했나 싶더라. 김서형은 없이 김주영만 있더라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 권우성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JTBC 드라마 ‘SKY캐슬’ 김주영 역 배우 김서형. ⓒ 권우성


톱스타도 아닌 날 믿어준 팬들, 실망시키지 않겠다

- 비슷한 역할만 주어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신애리 역할을 너무 잘해서'가 그 시작이었는데, 이번에도 '김주영을 너무 잘해서' 또 비슷한 역할만 주어지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도 있나.
"김주영은 신애리 이후 10년 연기 생활의 완결판 같은 느낌이다. 걸크러시도 좋고 카리스마도 좋지만,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젠 새로운 캐릭터가 주어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사실 서운한 마음도 있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변신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변할 수가 없잖나.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면 더 많은 기회가 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미 했던 것, 이미 보여준 것에 대한 제안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내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피할 순 없고, 피할 수 없으면 해내야 한다. 또 비슷한 역할만 들어온다면, 나만의 색깔을 더하고 이전 캐릭터들과 변주를 주면서 또 열심히 해야지." 

- 영화나 드라마가 요구하는 여성 캐릭터가 제한적이다 보니 역할의 제약이 더 많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맞다. 영화는 몰라도, 드라마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도 많다. 여성 중심 드라마의 장르와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제한적인 게 문제지, 단지 숫자 문제가 아니다. 난 배우는 성별이 중요치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만들어진 작품에 캐스팅돼 연기하는 건데, 남자 배우, 여자 배우가 달라진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변해야 할 건 시장이고, 만드는 사람들이다. 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지금은 고릿적 시절이 아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 SKY캐슬 >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2030 여성들이 김서형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대목인 것 같다. 자기 생각을 거침 없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미약했다. 하지만 나조차도 몰랐던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발견해 캐스팅해준 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황태후, 정치인, 변호사, 그리고 김주영까지, 강단 있고 대단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나도 같이 성장했다. 본의 아니게 세고 대단한 역할들을 맡아오면서 나도 같이 세진 것 같달까? (웃음) 비슷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걸크러시, 너무 좋다. 이 분야에선 김혜수 선배님 다음에 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하지만 배우니까, 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거다. 나도 내가 뭘 더 잘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 김서형이 보는 배우 김서형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길 바라나.    
"난 자뻑이 좀 있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는 건 알고, 이 매력을 최대한 잘 포장해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서 매번 열심히 했고, 나만의 영특함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믿고, 대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이런 '자뻑'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거다.

내게는 톱배우도 아닌 나를 믿고 응원해준 골수팬들이 있다. 요즘 바빠진 내 스케줄을 나보다 더 기뻐하고 있다. 당장 김주영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모르겠다'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치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변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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