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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은 양림동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곳을 흔히 '핫플레이스'라고 합니다. 그런 곳이 광주에도 존재하는데요. 유명한 맛집과 카페가 즐비해 있고, 버려진 쓰레기들로 예술품을 만들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펭귄마을과 무료로 한 눈에 시내 조망을 내다볼 수 있는 사직 전망타워 등 가볼만한 곳이 많습니다. 광주천을 따라서 조금만 걸어가면 동명동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도 갈 수 있는, 광주광역시 남구에 자리잡은 양림동이란 곳입니다.

이렇게 펭귄마을같은 명소도 있고 맛집이나 카페도 위치한 양림동은 최근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고 있지만, 그곳에 어떤 곳이었는지 모르거나, 오래된 역사유적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핫플레이스'인 양림동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서 그곳의 숨은 '핫플레이스'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구의 건축 양식과 우리의 전통 방위 개념이 한데 어우러진 우일선 선교사 사택
 서구의 건축 양식과 우리의 전통 방위 개념이 한데 어우러진 우일선 선교사 사택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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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의 시작: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사실 양림동은 지금도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이 이곳 양림동에 자리를 잡기 이전에는 전염병이 걸린 시체를 매장했던 풍장 터였기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나 마찬가지인 기피 지역이었습니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모두에게 버려졌던 곳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유진벨과 오웬 선교사가 광주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선교활동을 시작했던 1904년, 유진벨 선교사가 자신의 임시 사택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던 이 예배가 계기가 돼 양림동은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유진벨과 오웬, 변요한, 우일선 선교사가 주축이 돼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육과 의료 활동을 시작함으로서 이 땅에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를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예배당과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다했던 '광주의 신문화 발상지' 오웬 기념각
 예배당과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다했던 "광주의 신문화 발상지" 오웬 기념각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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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가 바로 오웬기념각과 우일선 선교사 사택입니다. 먼저 오웬기념각은 아랫교회(예수교장로회 합동)와 웃교회(기장) 사이에 위치한 중간교회(예수교장로회 통합)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진벨 선교사와 함께 선교활동을 하다가 1909년 과로로 사망한 오웬(한국명 오기원)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1914년에 지어졌던 건물입니다. 오웬 선교사의 유가족이 성경을 가르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해 건축자금을 모금하여 건립된 이 건물은 기독교 예배가 열리는 예배당의 기능뿐만 아니라, '개화기 광주의 신문화 발상지'라고도 불리울만큼 각종 문화행사까지 열렸던 문화예술 공간의 기능도 맡아왔죠.
 
서구의 건축 양식과 우리의 전통 방위 개념이 한데 어우러진 우일선 선교사 사택
 서구의 건축 양식과 우리의 전통 방위 개념이 한데 어우러진 우일선 선교사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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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소개해드릴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양림산 기슭에 위치한 호남신학대학교 도서관 옆에 자리잡은 벽돌식 2층 건물로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구식 주택입니다.

서양식 벽돌과 화강석을 재료삼아 반원형 아치와 층간 돌림띠, 열개창과 오르내리창으로 구성된 창문까지 서구의 건축 양식을 한데 모았고, 현관을 동향으로 해 우리의 전통 방위 개념을 도입했던, 서양과 동양의 모습들이 어우러진 건물이라고 할 수 있죠.

이곳에 거주하면서 의료 활동과 선교활동을 전개했던 우일선(미국명 로버트 윌슨) 선교사는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의 원장이 되어 의료 사역을 전개했고, 고아들을 돌봤습니다. 또한 최흥종 목사, 간호사였던 서서평(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와 함께 나병원을 세우고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자신의 병원을 본부삼아 제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가담함으로서 독립에 대한 열기를 전파하기도 했죠.
 
유진벨, 오웬, 서서평처럼 기라성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유진벨, 오웬, 서서평처럼 기라성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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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벨, 오웬, 서서평처럼 기라성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유진벨, 오웬, 서서평처럼 기라성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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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벨, 오웬, 서서평처럼 기라성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유진벨, 오웬, 서서평처럼 기라성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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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의 묘지: 섬김과 사랑으로 살다가 간 사람들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 옆에 있는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전용 묘역인 양림동 선교사 묘역이 나옵니다. 오웬, 유진벨 선교사와 간호 선교사인 서서평(엘리자베스 쉐핑)을 비롯한 22명의 선교사와 가족들이 묻혀있는 곳이기 때문에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곳입니다. 

특히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는 검은색에 작은 묘비들로 구성돼 있어서 숙연하면서도 못다 핀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미국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기회를 버리고 이역만리 먼 우리나라까지 찾아와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위하는 일을 하고,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전파함으로서 광주의 '핫플레이스'인 양림동을 만들어냈던 선교사들의 노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gl-revieuer86.postype.com/post/3320896)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양림동, #우일선선교사사택, #선교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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