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강상우


최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5.18 폄훼'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대국민 공청회'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18일 오전 국회윤리위원회 간사들이 회동하는 등 징계 논의에 착수했다.

오랜 기간 일부 세력은 꾸준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름은 전두환씨다. 2017년 4월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도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된 내용이 담기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16일 SBS < 8뉴스 > 보도에 따르면, 5·18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원장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전씨는 1980년 6월 4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광주에서 신원 미상 시신 22구가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 침투 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또 다른 전두환 인터뷰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2016년 6월 <신동아> 인터뷰다. 당시 전씨는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에 대한 정보 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최근 들어 '북한군 개입설'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다. 그는 "5·18은 유언비어에 의해 흥분된 전라도 사람들 20만 명 이상이 전남 18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한 대규모 폭동"(2018년 10월 15일 <뉴스타운>)이고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2019년 2월 8일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고 외친다. 그는 광주민주항쟁 사진들 중에서 찾았다는 567명의 '광수'를 북한군 개입설의 증거로 내세운다.

한 장의 사진이 던지는 의문에서 출발한 영화

'광수'는 지씨 등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광주에 온 북한군을 통틀어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은 1980년 5월 22일과 23일 사이에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이창성씨가 광주민주항쟁을 취재하던 도중에 찍었던 사진 속의 남자를 북한의 전 농림상 '김창식'이라 주장하며 '제1광수'로 지목한다.

장갑차 위에 앉아 있는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 어떤 사람은 그를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이라 하고 다른 사람은 그를 항쟁 시민군이라고 부른다. 그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은 한 장의 사진이 던지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강상우


<김군>은 당시 시민군이었던 분들, 시민군을 지켜보았던 사람들, 5·18 연구자, 사진 기자 등을 만나 인터뷰하며 사진 속 남자를 추적한다. 사진 속 남자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영화 처음의 설명을 빌리자면 사진 속 남자는 '공식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 무장 시민군'이다. 사람들의 불완전하고 희미한 기억들이 하나씩 모여, 사진 속 남자는 '넝마주이'와 '김군'이란 자그마한 실체를 얻게 된다.

연출을 맡은 강상우 감독은 지난해 10월 영화 웹진 <리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분을 찾지 못하더라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생존자분들의 증언과 그분들이 보여줄 어떤 순간들이 우리가 찾고자 한 사진 속 인물의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구성할 것 같았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바람처럼 생존자들의 기억과 목소리는 쌓여 1980년 5월 광주를 재현하는 시간을 이루고 체험하는 방법이 된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강상우


<김군>에는 영화의 조연출을 맡은 안지환씨가 인터뷰어로 나온다. 강상우 감독은 자신의 또래가 5·18을 알아가자는 마음과 생존자들과 더욱 친숙하게 대화하자는 생각에 인터뷰어를 등장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상한 순간들이 보인다. 때론 카메라가 인터뷰어의 얼굴을 화면에 담는다. 어떤 장면에선 인터뷰어가 던지는 질문이 서툴게 느껴진다. 분명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보통은 인터뷰어를 일부러 찍지도 않을뿐더러 어색한 질문은 편집 작업에서 덜어내기 때문이다.

인터뷰어의 얼굴과 표정은 지난 역사를 바라보는 다음 세대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강상우 감독은 "나를 포함한 <김군>의 스태프들 모두 5·18 이후에 출생한 1980년대생이다. 5·18에 대해선 학교나 언론을 통해 접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무관심이 일베나 지만원씨 등이 광주를 말하는 방식 이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겠더라"(2018년 10월 18일 <리버스> '그'는 누구인가)고 고백한다. 그는 같은 세대인 인터뷰어를 통해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고 반성하고 있다.

지만원씨는 <김군>을 본 다음 "제1광수가 북한사람들이란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해주고 확인해준 매우 귀한 영화"라며 "영화 제작진들이 여러 해 동안 전국을 손톱이 닮도록 훑으면서 수소문해도 제1광수 한 사람을 이 나라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567명을 무슨 수로 한국 땅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2018년 10월 15일 <뉴스타운> 5.18은 빨강 신기루, 영화 '김군' 제1광수 못 찾아)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정말 보고싶은 것만 본 감상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정말 제대로 본 게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영화 <김군>은 제1광수를 못 찾았다, 그러나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 <김군>의 한 장면 ⓒ 강상우


지만원씨의 말처럼 영화 <김군>은 제1광수를 못 찾았다. 그러나 다수의 '광수'는 북한군이 아니었다는 점은 명백하게 밝혀졌다. 영화는 광주민주화항쟁에 참여했던 넝마주이처럼 무연고와 신원미상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죽었으나 찾는 이도 없다. 시신 수습도 제대로 못 했다. 5·18 진상 규명은 발포 명령자를 포함한 이런 잊힌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조작, 왜곡, 거짓으로 가득한 '광수' 같은 주장에는 법적 처벌이 필요할 뿐이다.

강상우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 이름 없는 청년이 어떻게 항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왜 총을 들었으며, 이후에 어디로 사라졌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라고 <김군>의 연출 의도를 밝혔다. <김군>은 '광수'로 몰린 한 청년을 '김군'으로 복원시키는 여정에서 지금까지 아픔을 안고 사는 많은 '김군'들을 만난다.

'김군'은 바로 이름 없는 자들을 포함하는 희생자들 모두의 이름이다. 또한, 밝혀야 할 역사의 공백이자 광주를 기억하는 이름 역시 '김군'이다. 당신 안엔 '김군'이 있는가, 아니면 '광수'가 있는가? 영화는 묻는다. <김군>은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김군 강상우 신연경 고유희 안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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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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