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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한때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쏘아 올린 작은 공은 64m를 날아갔고, 시를 대표해 투구 종목으로 도민체전까지 출전하게 됐다. 100m를 12초 대로 달리는 스피드로 일명 '군대스리가'를 누볐으며, 농구로는 선수를 꿈꾸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물 안에만 들어가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심연으로 빠져들고 마는 맥주병이었다.

나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도 한평생이 너무도 짧다고 생각했다. 나의 인생은 물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됐다. 바다나 계곡으로 여름 휴가를 가더라도 반신욕 하는 사람처럼 그냥 물 안에 잠시 서 있다 나오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내 청춘은 물과 상관없이 지나갔다.

수영을 배우다
 
 몇 개월 후, 물살을 자유롭게 가를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몇 개월 후, 물살을 자유롭게 가를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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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신혼여행을 수영장이 딸린 풀빌라로 가게 됐다. 본전 생각에 일단 풀 안으로 몸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물 안에서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시간이 넘게 놀았다. 물 밖으로 나오며 나는 외마디 비명을 토해냈다. "유레카!" 나는 수영은 못하지만, 물놀이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39년 만에 깨달았다.

그 이후로 몇 년간 지인들과 여행을 떠나게 되면 아이들의 물놀이 보호자는 나의 몫이었다. 나는 물에서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노는 어른이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수영을 못하는 아쿠아맨이라고 했다. 수영을 배우면 물을 더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회사 근처 수영장을 알아보았다. 사내 동료가 다니는 종로구 체육센터로 결정했다. 몇 개월 후, 물살을 자유롭게 가를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드디어 첫 수업 시간. 간단한 체조를 마치고, 나는 강사의 특별한 보살핌 아래 발차기부터 시작했다. 강사는 '처음 치고는 발차기를 잘한다'며 나의 팔을 잡고 수영장 가운데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이 물에 뜨지 않는 것이다. 발이 물 밖으로 나오질 않으니 발차기를 할 수 없었다. 급기야 나 같은 '맥주병'들을 위한 도구가 내 허리에 채워졌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 달 내내 발차기만 하고 가시는 분도 있다는 강사의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날이니까'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조금 더 좁아진 듯한 내 어깨를 토닥이며 집으로 향했다.

수업이 거듭돼도, 내 발은 여전히 수면 아래서 발버둥 치고만 있었다. 혼자서 5m 정도 전진할 수 있게 됐지만, 수영 강습이 재미없어지고 심지어 그 좋던 물도 싫어지는 것 같았다. 악마의 속삭임이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냥 물에 있기만 해도 좋은데 굳이 수영을 배우면서 물과 멀어져야 하나?'

최소한 3개월은 해야 한다는 직장 동료의 격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퇴근 후 샌드위치를 먹고 수영 강습을 하러 가는 내가 안쓰럽다며 저녁 도시락까지 싸주었다. 이게 뭐라고!

포기했지만 실패한 건 아닙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결국 수영 강습을 그만두기로 했다. 직장 동료는 끈기가 없다고 핀잔을 주었으나, 내 마음은 다시 평온을 찾았고 물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린 시절 호기심도 많고, 포기도 빠른 아이였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빠른 포기의 미학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수영을 한 달 만에 관두어도 여전히 지구는 잘 돌고 있고 내 월급은 입금될 것이다. 회사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지만,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다.

빠른 포기 후에는 주저앉아 있지 않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3년 전 회사에서 좌천을 당했을 때, '제2의 백종원'이 되겠다며 호기를 부리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당시 내가 요리에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면?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한 요식업은 당연히 실패했을 것이다. 

식당 창업에 대한 빠른 포기 후, 글쓰기를 시작했다. 요리와는 다르게 재미있었다. 재능도 조금은 있었던 걸까? 평범한 직장인이 출판사와 계약하고 책을 출간하는 작은 기적을 이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인 창업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오마이뉴스>에 글을 연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빠른 포기의 결말은 때로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다.

박소란이 쓴 시 '잃어버렸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여느 일요일과 같이 
늦잠에서 깬 뒤 머리핀을 찾아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알게 되었지
살면서 머리핀 하나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가

(...)

잃어버렸다,는 말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을 잃고 난 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라진 그것을 아주 갖지 않는다는 것
갖지 않고도 산다는 것 그러므로

이제 나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게 되었다

(박소란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수록작)

'잃어버리다'라를 '포기하다'로 바꿔도 의미가 통하는 말들이다. 살면서 포기 한 번 안 해 본다는 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포기는 후퇴의 단어가 아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전진의 단어다. 포기함으로써 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핸들은 직진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원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바꾸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핸들은 직진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원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바꾸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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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하기 싫어도 끝장을 봐야만 하고, 만신창이가 된 이에게 다시 일어서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오기 때문에 다른 곳에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리고 싶진 않다. 언제든 항로를 변경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싶다. 핸들은 직진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원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바꾸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중년의 얼굴이지만 소년의 호기심으로 세상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릴 것이고, 재미와 재능이 보이지 않는 일은 앞으로도 빠르게 포기할 것이다. 빠른 포기 후에는 주저앉아 있지 않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그렇게 이것저것 시도를 하다 보면 글쓰기 같은 생각지도 못한 재능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최근 다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매일 입는 셔츠 핏을 살리기 위해 간헐적 단식과 타바타 운동에도 기웃거리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겪은 경험들을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가고 싶다. 나의 글을 읽은 누군가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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