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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이 KAL 폭파사건은 전두환 정부의 공작이라며 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2018년 11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이 KAL 폭파사건은 전두환 정부의 공작이라며 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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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과거에서 무전이 온다면 어떨 것 같아요?"

드라마 <시그널>에 나오는 대사다. 드라마였기에 가능했겠지만, 나는 무전이 정말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형태로 말이다.

1987년에 일어난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비행기와 함께 115명이 사라졌지만, 당시 비행기록장치나 제대로 된 기체 잔해 또는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폭파범이라고 자백했다는 김현희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 사건은 북쪽의 테러로 결론 났다.

과거에서 온 무전

그 뒤로 30년이 넘게 지난 작년, 과거에서 무전이 왔다. 미얀마(버마) 바다에서 KAL858기의 잔해로 추정되는 비행기 파편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잔해들은 1996년 미얀마(버마)의 어부가 찾았는데 그동안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아울러 잔해들의 일부는 고물상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실종자 가족회의 정보를 토대로 취재에 나선 JTBC 탐사보도 방송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이를 확인하였다.   

실종자 가족회는 이 잔해가 KAL858기의 것인지 정부가 직접 검증을 하고, 나아가 지금이라도 수색을 다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국무총리실의 민정실장에 따르면, "정부는 유해와 유품을 발굴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눈 감고 있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오마이뉴스>, 2019년 2월 20일).

나는 처음에 이 소식을 듣고 놀랐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실종자 가족들을 대해왔던 정부의 태도와 굉장히 달랐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실종자 가족분이 내게 말했다. 그동안 가족들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당해왔다고. 그래서일까. 그 절박한 목소리를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말이 낯설게 들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너무나 늦게 나왔기 때문에.

한국 정부 또는 국가기관이 가족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해왔던 것만은 아니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결정했다. 위원회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중요한 의혹들에 대해 "추정" 수준에서 판단을 한 부분이 적지 않고 무엇보다 김현희씨를 조사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존 수사결과가 맞다고 발표했다.

그리하여 가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진정서를 냈고, 2007년 새롭게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진실화해위원회는 처음의 의지와는 달리, 점점 국정원 발전위원회의 조사를 따라가는 수준에서 활동을 했고 가족들은 재조사 신청을 취하했다.

물론 국정원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를 무작정 탓할 수만은 없다. 두 위원회 모두 조사권한 등에서 한계를 많이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두 번의 재조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가족들이 그동안 멸시를 당해왔다는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수색 닷새 만에 철수 계획했던 정부

2016년, 나는 국가기록원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조사 기록을 '비공개 기록물 제한적 열람' 절차를 거쳐 살펴볼 수 있었다. 1987년 12월 5일치 외무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정부는 공식 수색이 시작된 지 겨우 닷새 만에 철수 계획을 세우고 실종자들에 대한 사망을 공식화하려고 했다. 결국 정부 수색단은 별다른 성과 없이 열흘 만에 철수했다.

KAL858기 사건은 김현희씨가 진실을 말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를 떠나, 사건 조사의 기본 원칙에 관한 문제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실이 최근에 한 말은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색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에서 온 무전,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KAL858기 사건 연구자입니다. 2007년에 <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 >, 2015년에 < 슬픈 쌍둥이의 눈물: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국제관계학 >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태그:#KAL858,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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