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 CGV아트하우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경구를 처음 만났던 건 영화 <불한당> 개봉 전 인터뷰에서였다. 인터뷰 이후 <불한당>(2017)은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는데 설경구는 상당히 가혹하게 "칸에 갈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칸이 살렸다'"고 영화를 평했다. (관련 기사: 설경구는 왜?... "<불한당>, 칸에 갈 만한 작품 아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설경구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우상>을 두고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 작품에 나오면 안 되는 인물들이다. 괴팍한 영화가 나왔다"고 말했다. 솔직하고 또 냉정한 평가처럼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객관성을 담보했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왜 이렇게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냉정하게 볼까? 지난 8일 설경구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나서 영화 <우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볼까'를 우려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쉽게 접근했으면 하는데 생각하다 보면 복잡해진다. 그런데 보는 사람이 복잡하게 안 봤으면 좋겠다. 특히 인물들을 억지로 섞으려고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섞으려 해도 안 섞인다. 각자 다 다른 영화인 것 같다. 대부분의 영화는 섞여서 끝나는데 얘네는 끝까지 다른 선택을 하면서 끝내버린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사실 나는 스포일러 알람이 필요없다고 본다"며 "알고 보는 게 더 재밌다. 알고 봐도 괜찮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타까워 하면서 "(천)우희 역할을 너무 스포일러로 둬서 사건의 키가 거기 있는 걸로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아무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솔직함에 잠시 웃음이 났다.

"이해가 안 돼서 해보고 싶었다"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 CGV아트하우스

 
- <우상>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실 유중식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니까 되게 궁금해지더라. 알고 싶었다. 사람의 선택이라는 건 다 다르지 않나. '난 안 할 것 같은데, 얘는 왜 하는지'가 궁금했고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억지로 련화와 아들 구남을 짝지어준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영화에는 구명회(한석규 분), 유중식(설경구 분), 최련화(천우희 분)까지 세 인물이 중심으로 나오는데 각자 목적이 다르다. 서로 대화를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영화는 눈이 가는 한 명을 쫓아가야 하는데 셋을 묶다 보면 톱니가 안 맞고 고장이 난다. 그래서 눈이 가는 인물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

- 한석규와 설경구가 한 영화에 나온다. 어떤 모습일까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고 본다.
"한석규라는 사람은 롤모델 같은 사람이었다. 1990년대 말에 여러 배우들이 있었지만 투자가 되는 유일한 배우가 한석규였다. 최민식 아니었다. (웃음) 석규형이 '요새는 아니라는 거냐?'하고 물으면 내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꽤 긴 기간을 혼자 버텼던 시간이 있었다. 일단 무조건 한석규에게 시나리오가 갔다."

- 만나서 해보니 어떠셨나?
"잘 부딪히질 않는다. 만나서 공통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절대 안 부딪힌다. 현장이 쉽지 않았는데 석규형이 전체를 아울렀다고 생각한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해야 하나? 이수진 감독님이 나라는 배우를 '잔뜩 독이 올라서 링 위에 올라갈 것 같은 배우'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나라는 배우를 정의하기에는 틀린 말이고 이 영화에서만 그랬다. 첫 등장부터 이런 등장은 없었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어떤 전사도 없이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니까 이미 준비가 된 상태에서 들어가야 했다. 이 영화는 그래야 했다. 연기가 점차 하다가 빌드업이 되는 게 아니라 준비를 하고 가 있어야 했다."

- 제일 마음을 써서 촬영한 장면이 그것인가? 
"첫 등장 장면이다. 첫 촬영이었는데 이 감독님 스타일을 잘 모르지 않나. 전체를 그때 파악했다. 아... 처음부터 스물 몇 테이크를 가는데, 그래, (웃음) 오케이 맡길게, 했다. 그런데 내 첫 등장이 좋았다. 얼굴도 잘 안 보이고 차를 후진할 때 힐끗 보인다. 감독님 이야기이긴 한데 석규형이 내 첫 등장을 되게 부러워했다고 들었다."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 CGV아트하우스

 
- 첫 등장부터 아들 구남의 시체를 확인해야 했다. 오래 촬영을 해야 했는데 어떻게 그런 감정선이 유지가 됐을까.
"어떻게 유지했나. 자식의 죽음을 앞에 두면 그렇지 않나.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해야 하나. 아들의 시체를 보고 애 같이 운다. 지금은 흉내도 못 내겠는데 '으아아아' 하면서 (실제로 설경구는 인터뷰 중 이 장면을 흉내 내보려 했지만 현장이 아니어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구남이처럼 터트린다. 처음에 감독님에게 중식이 속에 구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식과 구남은 서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이였던 것 같다. 고립돼 살았는데 둘이서 미러볼 틀어놓고 노래하는 걸 즐겨하고 같이 밤새 춤추고 서로 보는 사람도 없이 애처럼 놀았을 것 같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처음에는 구남이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런데 다그치니까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사람을 때리려고 한다. 애들이 그렇지 않나. 거짓말을 하고 뒷걸음을 치고서 뒤로 빼고 아니라고 부인한다. 중식이 안에 구남이가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의 애기 같은 목소리를 흉내내고 싶었다. 옆에 있다 보면 서로 톤도 맞춰서 이야기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닮아갈 것 같았다."

- 중식의 '우상'은 무엇이었나.
"중식은 비록 끊어진 핏줄이긴 하지만 자기의 핏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내 것이 아닌데 갖고 싶었던 것이다. 련화도 구남의 애라고 생각해주는 것이다. 나 자신만 속이면 되는 상황이다. 목적은 단순하다. 내 아이가 아닌 아이를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중식은 아들의 죽음의 배후를 찾다가 태아를 보고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련화를 찾았을 때도 련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뱃속의 아이를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내(중식) 아들을 죽인 아비로부터 지시를 받아야 했다. 집착이 계속되는 것이다."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 CGV아트하우스

 
- 핏줄에 대한 과한 애정에 대해 공감할만한 요소가 있었나.
"나는 모르겠다. 당해봐야 알겠지. 물론 당하면 안되지만 말이다. 사람이 다 다르듯 중식은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일반적인 집착을 넘어서서 맹목적이 된다. 세 인물 모두 맹목적이라는 게 공통점인 것 같다. 명회는 아들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한다. 그것만큼 무서운 게 어딨나. 그리고 련화는 괴물 같더라. 오히려 중식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말이 선택이지 사실은 길이 하나만 있다. 그 길을 가야하는 선택에 던져졌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계속 반응(리액션)을 보여야 하는 캐릭터였다."

- 머리를 탈색하고 나온다.
"감독님 아이디어였다. 예를 들면 출장을 갈 때도 구남이를 데려갔을 것 같더라. 혹시 잊어버릴 수도 있고 그럴 때는 어디 사는지 설명도 못할 것 같은데 머리 색깔로 바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신을 확인할 때도 머리 색깔로 확인한다. 관객 분들도 '아 구남이도 중식이처럼 염색했구나'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님이 탈색하고 태닝을 부탁했는데 나는 좋다고 했다. 염색을 꽤 했는데 나중에는 머리카락이 부서지더라. 약해지니까 낙엽처럼 툭툭 떨어졌다. 머리가 힘이 없어지는 게 보였다."

"멋있는 역할 안 들어오더라"

- 영화 <불한당> 이후에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데, 이제 잘생긴 연기하고 싶지 않나?
"(그 표현) 기자 분들이 정해주신 것 같은데? (웃음) 내 직업이 배우인데 작품 판단을 할 때 겹치는 얼굴은 안 하고 싶은 게 배우가 아닌가 싶다. 처음에 <우상> 하면서 머리 탈색하라고 해서 되게 좋아했다. 안 해봤던 거라서. 그런데 멋있는 역할 안 들어오던데? (웃음) 더 구겨지고 싶다."

- <불한당>에서 다른 면을 찾은 것 같다.
"변성현 감독 덕이다. <불한당>이라는 영화가 전환점이 됐던 것이 그(감각적인) 쪽으로도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연기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 <불한당>과 비슷한 방식을 몇 년 안에 다시 볼 수 있을까?
"변성현 감독과 <킹메이커>를 이번달 말부터 하는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멋있게 찍어달라고 그랬다. (웃음) 그런데 변 감독이 변했는지 <불한당> 때는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번에도 멋있게 찍어달라니까 시크하게 '노력해볼게요'라고 하더라. 그런데 <불한당> 때처럼 멋부리면서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에는 미쳐버리겠다가 언젠가부터 내가 알아서 하고 있더라. (일동 웃음) 느낌이 그때랑 다른 가보다. 다르게 접근해야 하나 보다."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영화 '우상'의 배우 설경구 ⓒ CGV아트하우스

 
- <생일>을 통해서도 아이를 잃은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딸의 행방을 추적하는 아버지였고 이번에도 아이를 잃은 아버지 역할이다. 이런 작품을 택하는 이유가 뭔가?
"조금씩 다 다른 작품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일부러 정한 건 아니다. 그런 걸 즐길리도 없고. 감정의 진폭이 크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할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표현해보고 싶은 것일수도 있다. 배우로서 너무나 큰 사건이 툭툭 들어오는데 다 다르게 요구하니까 너무 해보고 싶은 것이다."

- 너무 어려운 작품만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결정도 하는 거니까. 이것도 선택을 안 할 수 있는 건데 결국 내가 선택을 했다. 물론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작품 선택하는 건 그런 것 같다. 내가 나를 설득하고 이해가 됐을 때 결정을 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표현할 수 있겠구나 싶을 때 결정을 한다. 나를 설득하는 작업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설경구 우상 천우희 한석규 불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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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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