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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Split)에서 하룻밤을 지낸 나는 드디어 스플리트의 로마 유적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금 내가 향하는 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s Palace)은 동유럽에서 가장 찬란한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손 꼽히고 있는 곳이다. 아침의 햇살은 찬란하게 로마의 유적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궁전 성벽의 동문인 포르타 아르겐테아(Porta Argentea)를 통해 성 안으로 들어섰다. 성벽에 세워진 로마시대의 육중한 감시탑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마시대에 성벽을 둘러싸고 있던 열여섯 채의 탑은 현재 훼손된 곳이 많지만, 성벽의 북·서·동쪽에 세워져 군사들을 배치했던 감시탑만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궁전을 보호하고 있었다.

포르타 아르겐테아로 들어서자 '토미슬라브 왕(King Tomislav)의 대지'라 불리는 작은 광장이 나왔다. 토미슬라브 왕은 크로아티아 최초의 왕으로서, 헝가리와 불가리아의 공격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했다고 추정되는, 크로아티아 민족의 영웅이다. 로마제국 역사의 한복판에 자신들의 위대한 왕의 이름을 붙여 놓음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크로아티아인들의 고집이 느껴진다.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가 대성당으로 재건되었다.
▲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가 대성당으로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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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가 묻혔다는 영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현재 그의 영묘는 사라져 건축물의 흔적만 남아 있었고, 지금은 성 도미니우스(St. Domnius)를 모시는 대성당이 되어 있었다. 기독교를 박해한 마지막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죽은 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그의 영묘는 철저한 파괴의 길을 거치게 되었던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사후에 기독교인들의 철저한 배척을 받게 되었고, 그의 영묘 내에 모셔져 있던 그의 초상과 유품은 산산조각나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의 영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탄압으로 순교한 솔린(Solin)의 주교 성 도미니우스를 모시는 대성당이 되었으니, 역사는 참으로 무상하다는 사실을 여기에서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대성당을 들어가려다 보니 성당 입구에 꼭 우리나라 경복궁의 해태를 닮은 듯한 석상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 동물상은 정문 입구에서, 무언가 비밀스럽게 숨겨진 공간 같은 로마 황제의 영묘를 지키던 사자상이다. 사자는 오른쪽 발톱으로 양 한 마리를 움켜쥐며 로마제국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2마리의 사자는 당시 지중해를 제패했던 로마제국의 힘을 상징한다.
▲ 사자 석상. 2마리의 사자는 당시 지중해를 제패했던 로마제국의 힘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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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성당이 7세기에 새로운 석재를 이용하여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이 2마리의 로마 사자상만은 중세시대에 재건된 주변의 석재와 구별되며 역사의 연륜을 자랑하고 있었다. 늙은 사자의 입은 헐어 이빨도 없어졌지만, 이곳이 여전히 로마 황제의 영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당 외곽은 인상적인 열주(列柱)가 장엄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려고 보니 웬일인지 성당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히 오늘은 성당이 문을 여는 날인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지나가는 주민이 있으면 물어보기로 생각하고 성당 입구에서 잠시 기다려보았다.

잠시 후 성당 문이 한번 빼꼼 열려서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았다. 한 할아버지가 성당 밖으로 나오시길래 몇 가지를 간단하게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지금 성당 내부는 못 들어가나요? 성당 안에서 무슨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은 여행객은 절대 못 들어갑니다. 안에서 스플리트 시민들의 엄숙한 아침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요. 조금 있다가 들어가야 될 겁니다. 지금은 절대 못 들어가요."


노란 조명이 아름다운 성당 내부에서는 장엄한 미사가 고요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신앙심 강한 스플리트 주민들이 미사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온 후에야 나는 성당 입구로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마친 주민들이 성당을 나서고 있다.
▲ 미사를 마친 주민들. 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마친 주민들이 성당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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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조금 헷갈렸다. 성당의 입구로 보이는 곳은 성당의 출구였고, 이 출구로는 입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성당 안내원의 설명대로, 스핑크스 상 밑으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서 성당 반대쪽 끝까지 가서야 성당의 입구를 만났다.

대성당에 입장하려면 꽤 비싼 입장권을 사야 했다. 많은 여행자들은 이 성당 매표소에서 성당 내부나 종탑만을 오를 수 있는 티켓을 사지만, 나는 성당 내부의 보물관 등 모든 곳을 볼 수 있는 레드 티켓을 샀다. 나는 로마제국의 역사와 중세 대성당의 역사가 중첩된 이곳의 역사적 흔적들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성당 안에서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된 곳은 주제단의 뒤편에 자리한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의 보물관이었다. 안타깝게도 사진촬영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보물관 내부에는 대성당과 관련된 성유물, 성화와 함께 현란한 금은세공품들이 전시관 안에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종교 시설물 안에 이토록 화려한 보물들이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보물실의 유물들은 휘황찬란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어두움 속에 성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 성당 내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어두움 속에 성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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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어둠이 깔린 듯한 성당 내부로 들어섰다. 과거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복원한 복원도에 보면 황제의 영묘를 덮고 있던 팔각형 돔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다행히 이 팔각형 돔은 제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돔의 내부를 올려다보니, 돔의 천장은 원형으로 배치된 2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외부의 팔각형 모양과 달리 돔의 내부는 원형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돔 내부의 원형 천장은 원래 로마시대의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로마시대 황제의 영묘를 장식하던 돔 구조물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 성당의 돔. 로마시대 황제의 영묘를 장식하던 돔 구조물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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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돔 아래부분에서 길게 360도로 이어지는 띠모양의 석조 장식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황비 프리스카(Prisca)의 부조가 놀랍게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부조가 이 성당에 남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유일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이다. 천장에 떠 있는 로마의 유물만으로도 성당 내에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돔 아래 성당 내부의 기둥과 벽면은 로마네스크, 고딕양식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성당의 기둥 사이에는 고난의 그리스도상 등 기독교의 여러 성상들이 빼곡히 장식되어 있다.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성당 내부에는 장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성당 주제단 앞의 돌바닥에는 스플리트의 초대주교이자 수호성인인 성 도미니우스의 석관이 모셔져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성 도미니우스를 죽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관이 170년 동안이나 안치되어 있었다.

기독교를 박해하여 기독교인들의 원한을 샀던 황제의 초상과 유품은 산산조각이 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황제의 영묘가 있던 곳에는 기독교 주교의 석관이 들어섰고, 바로 그 자리 위에 현재의 대성당이 들어선 것이다.

나는 성당 입구 쪽에 있던 성당 관리인에게 황제의 석관에 대해 물어보았다.

"황제의 석관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모르나요?"
"황제의 관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합니다. 어느날 사라진 황제의 시신은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적 추적을 해봐도 지금까지는 알 수가 없네요."


나는 성당 내부에 들어올 때부터 황금빛이 번쩍거리던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그것은 성당 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성 스토샤(Sveta Stosija) 제단이었다. 1214년에 만들어진 이 주제단은 성당 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기념물이다. 황금색으로 치장된 두 천사의 성스러움은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강렬한 황금빛을 내뿜는 제단의 화려함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성당의 주제단. 강렬한 황금빛을 내뿜는 제단의 화려함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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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단 위에서 빛나고 있는 캐노피는 15세기 성당건축의 대가인 유라이 달마티나츠(Juraj Dalmatinac)가 조각한 걸작이다. 천장을 둘러싼 황금빛 목걸이 같은 화려함은 놀랍기만 하다. 외관의 규모 면에서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보다 큰 성당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주제단의 화려함은 이곳을 따라올 데가 없을 듯하다.

대성당 입장 티켓을 다시 보니, 이 입장티켓을 이용하여 성당의 지하예배당도 들어갈 수 있었다. 크립트(Crypt)라고 불리는 성당의 지하실은 마치 왕릉의 지하연도를 들어가는 듯이 은밀했다. 그런데 지하로 계속 이어지던 길이 끝나고 나타난 공간에는 놀랍게도 지하 우물이 있었다. 지하의 우물에서는 소원을 기원하며 던져진 무수히 많은 동전들이 조명에 신비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성 루치아 홀로 모셔져 있는 지하공간에서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 지하예배당. 성 루치아 홀로 모셔져 있는 지하공간에서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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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올까?' 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던 지하예배당의 한 중앙에는 성 도미니우스와 같이 304년에 순교한 성 루치아(Saint Lucy)가 모셔져 있었다. 어두운 지하공간 안에 붉은 옷을 입은 성 루치아 조각상 하나만 모셔져 있었다. 지하에 홀로 서 있는 성인의 모습은 적막 속에서 너무나 경건하게 다가왔다.

어둠 속의 지하예배당을 마주하다가 밖으로 나오니, 지상에는 아침의 햇살이 낮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대성당 출구 바로 앞에 우뚝 솟아있는 종탑에 바로 들어섰다. 낮시간에는 이 종탑에 많은 여행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른 시간에 올라가보기로 한 것이다.

13세기에 건립된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의 종탑은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종탑은 높이가 무려 60m나 된다. 스플리트의 상징과도 같은 이 종탑은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너무나 비좁다. 돌계단 183개를 오르고나자 다시 하늘로 이어져 있는 것 같은 철판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상당히 높은 곳까지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삼가야 할 계단이다.
 
종탑의 벽면 여러 곳이 뚫려 있어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한다.
▲ 종탑 오르기. 종탑의 벽면 여러 곳이 뚫려 있어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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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은 기둥과 일부 얇은 벽면을 제외하고는 옆이 뻥 뚫려 있고, 종탑 내부는 텅텅 비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정신이 아찔할 것 같다. 나는 빙빙 돌며 계속 이어지는 허술한 계단을 반짝 긴장하며 계속 올라갔다.

종탑 상부에 올라오자 종탑의 종 여러 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2단으로 된 11개나 되는 종들이 철제 프레임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름 그대로 종탑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까이 가서 종을 보니, 종에는 '스플리트' 이름과 십자가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시민들이 삶을 살아가는 시가 뒤로 웅장한 돌산이 이어진다.
▲ 스플리트 시가. 시민들이 삶을 살아가는 시가 뒤로 웅장한 돌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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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많이 올라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종탑의 정상이 나타났다. 종탑 천장 아래의 공간은 사방으로 파노라마처럼 트여 있었다. 힘들게 올라온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눈 앞에는 스플리트 시가지가 시원스럽게 한눈에 펼쳐졌다. 아름다운 풍경, 푸른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왜 로마 황제가 이곳을 사랑했는지 알게 된다.
▲ 스플리트 바닷가. 이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왜 로마 황제가 이곳을 사랑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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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전경은 정말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남쪽의 바닷가에는 대형 유람선과 요트 뒤로 아드리아 해가 푸르게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스플리트 시민들이 살아가는 시가지 너머로 육중한 돌산이 웅자를 뽐내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이곳을 오른 아침형 여행자들은 동작을 멈춘 채로 경치를 감상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 서서 보니, 로마의 황제가 왜 이 도시를 사랑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종탑 위의 몇 여행자들 사이에는 시간이 멈춘 듯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스플리트, #스플리트여행, #성도미니우스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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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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