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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두서없이 피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하는 봄. 꽃들의 향연 속을 거닐다가 문득 까닭 없이 목련이 좋아졌다. 대릉원 목련을 찍고자 SNS를 달군 사진을 보았다. 요 며칠 간 실검 및 신문 지상을 장식하던 뉴스에 마음이 상했는데, 목련 소식이 마음을 정화시킨다. 춘삼월의 경주는 목련을 시작으로 잇따라 꽃소식을 전할 것이다. 꽃 피는 이 봄,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당신을 위해 경주 목련의 레시피 대공개. 경주 속, 목련이 아름다운 곳을 귀띔해 드리겠다.
 
생명의 빛이 사라진 대릉원의 목련
  
대릉원의 목련 미추왕릉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의 곳곳에 목련이 심어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거대한 두 개의 능 사이에 서 있는 목련의 자태를 따라갈 것은 없다. ⓒ 최정선
 
경주의 고분들은 평지에 터를 닦고 앉아있다. 남산의 북쪽에서부터 국립경주박물관 자리와 반월성을 거쳐 황오동, 황남동, 노동동, 노서동으로 펼쳐지는 평야에 고분들이 모여 있다. 잔디떼를 입힌 고분들 사이로 뿌리 내린 나무가 듬성듬성 있다. 대릉원은 밤낮 없이 인기가 높은 곳 중 하나다. 그 중심에 한 그루의 목련이 있다.

목련은 봄의 전령사 매화를 제치지 못하고, 숨 막힐 듯 눈부신 벚꽃의 화려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목련의 하얀 얼굴은 얼핏 외계인 같아 보인다. 대릉원에 있는 목련 한 그루는 다른 차원과 시간으로 향하는 안내자다.

대릉원으로 가는 길은 목련이 피어 화사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뚝뚝 떨어져 버린다. 어느 화창한 날, 생명의 빛이 사라진 무덤 속으로 목련을 찾아 들어갔다.

대릉원 목련 앞엔 낮에는 줄서서 인증샷을 남기는 인파로, 밤이면 사진가들이 운집한다. 남의 무덤에서 뭐하는 짓들인지. 하지만 어느새 나도 그 짓을 하고 있다. 누군가 플래시를 터뜨리자 고함소리가 어둠 속에 메아리친다.

미추왕릉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의 곳곳에 목련이 심어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거대한 두 개의 능 사이에 서 있는 목련의 자태를 따라갈 것은 없다. 부드러운 선과 공간의 미학이 절정을 이루며 그 자체로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봄날, 무성한 봄꽃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 그 매혹적인 자태를 보고자 대릉원으로 사진가들이 몰려든다. 낮에 수려함을 뽐내던 목련은 밤엔 요염한 여인으로 탈바꿈한다.

푸르른 어둠과 은은한 조명으로 능의 윤곽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시간… 요염한 목련에 모두가 빠져든다. 목련의 아득한 향기가 밤하늘에 피어오르고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북향화 핀 첨성대
  
북향화 핀 첨성대 북향화 핀 첨성대를 담는 것은 손끝에 피어나는 천 년의 역사를 품듯 벅찬 행복감이다. ⓒ 최정선
 
목련은 한겨울이 지나 봄바람을 만나면 꽃봉오리가 하얗게 부푼다. 그러다 그리움에 지쳐 하얀 솜털들이 땅에서 싹튼다. 그리움이 사무친 곳, 북쪽을 본다하여 목련을 북향화(北向花)라 한다. 북향화 핀 첨성대를 담는 것은 손끝에 피어나는 천 년의 역사를 품듯 벅찬 행복감이다.

까칠한 현대문명 속에 우뚝 선 고도 경주의 상징 첨성대. 천 년의 신라를 마주하고 선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작은 창에서 별을 보곤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까. 첨성대의 역사성보다 주위 풍경에 눈을 돌리는 탐방객들이 많다. 풍경 예찬가인 나도 예외는 아니다.

첨성대의 북향화는 수려하기로 소문났다. 이곳 목련이 빼어나도록 아름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천 년 역사가 서린 첨성대가 곁에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경주의 봄을 꼭 담고 싶다면 북향화 핀 첨성대는 필수다. 특히 야간 조명을 받은 목련의 멋스러움을 빼놓으면 곤란하다.

밤꽃 구경하는 상춘객도 많지만, 새벽 어둠을 뚫고 사진을 담으러 오는 이들도 꽤 많다. 조명을 받은 순백의 꽃들은 첨성대 주위를 은은하게 감싼다. 시나브로 천 년 전으로 돌아간 듯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첨성대와 어우러진 '밤의 목련 구경'이 성황이다. 한때 유채꽃이 첨성대 주변에 피어 노오란 물을 들였지만 목련의 청초한 하얀빛만 할까.

천체과학의 결정체, 첨성대 주변에는 유독 많은 꽃들이 지고 핀다. 그 중 봄을 맨 먼저 맞는 것은 푸른 잎보다 꽃봉오리가 맺히는 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목련이다. 이 하얀 눈덩어리 꽃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북쪽을 향해 꽃망울을 터트린다하여 북향화라 하고 연꽃이 나무에 달렸다 하여 목련(木蓮)이라고도 한다. 연못이 없는 절에서는 연꽃 대신 목련을 심어 향불화(向佛花)라 불렀다. 천 리를 가는 목련 향이 어찌나 진한지 향기 나는 난초라 하여 목란(木蘭)이란 이름도 있다. 거두절미하고 하얀 목련이 피어난 경주로 가보자.
 
하얀 꽃구름 앉은 오릉
  
하얀 꽃구름 앉은 오릉 경주 오릉에 핀 백목련은 화려하지 않지만 숭덕전 기와와 잘 어우러진다. ⓒ 최정선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한다. 이 꽃이 아름답게 핀 곳을 꼽으라면 경주 오릉(五陵)이 빠지지 않는다. 경주 오릉에 핀 백목련은 화려하지 않지만 숭덕전 기와와 잘 어우러진다. 오릉의 담장과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는 숭덕전 주변에 옹기종기 피어난 목련은 하얀 꽃구름을 만들고 있다.

경주의 오릉은 이름에 '오'자가 들어가서 다섯 명의 왕이 모셔졌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알영부인을 마지막으로 4명의 신라초기 박씨 신라왕들의 능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오릉에 대한 설화를 엿볼 수 있다.

1대 박혁거세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승천하였다가 7일 만에 유체가 다섯으로 나누어져 땅에 떨어졌다. 이를 모아 장사 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돌연 나타나 방해했다. 어쩔 줄 몰라 하다 다섯 몸뚱어리를 각각 묻어 오릉이 되었다. 큰 뱀이 출현했다 하여 사릉(蛇陵)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릉 담장 초입부터 에둘러 심어진 목련이 활짝 웃고 있다. 숭덕전 담벼락에 휘황찬란한 함박꽃이 온통 바닥을 희게 물들였다. 박목월의 <4월의 노래>처럼 목련 꽃 그늘 아래 앉아 시를 읽기도 하고 하얀 목련이 만든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불고도 싶다.
 
불국사 관음전의 아찔한 목련
  
불국사 관음전의 아찔한 목련 불국사 경내에서도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 뒤뜰. 그곳에서 하얀 목련이 떨고 있다. 눈 내린 듯 뜰 위를 하얗게 덮고 있다. ⓒ 최정선
 
관음전의 목련을 렌즈에 담으려 천 리를 달려 불국사를 밟았다. 도착하니 이미 해는 스멀스멀 넘어가고 있다. 어둠이 낮게 깔리자 마음도 다급해 졌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관음전이 어디인지 다급히 묻고 뛰었다.

관음전을 오르는 가파르고도 긴 돌계단을 단숨에 올라 목련 앞에 섰다. 숨을 헐떡이며 관음전 앞에 섰다. 비로전과 관음전의 기와 사이로 펼쳐진 목련은 쑥스러운 듯 소담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관음전을 둘러싼 목련은 불국사의 꽃이라 말할 정도로 주위풍경과 잘 어우러진 향불화다. 뽀얀 흰 빛이 정감 어리게 눈으로 들어온다.

불국사의 동북쪽 관음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을 기준으로 남쪽과 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불국사 경내에서도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 뒤뜰. 그곳에서 하얀 목련이 떨고 있다. 눈 내린 듯 뜰 위를 하얗게 덮고 있다. 벚꽃보다 화려한 경주의 목련이 얼마나 아련한지 불국사에 가보면 알 것이다. 꽃송이를 터뜨린 목련 향은 여느 봄꽃 향기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찔하다.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뒤편 무설전의 회랑에 걸쳐진 목련의 풍경은 숨겨진 명소다. 가히 당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음전 담장에서 내려 본 불국사 법당 처마의 큼지막한 목련이 나무마다 겹겹이 꽃을 피워 휘어질듯 하늘을 가리고 있다.
  
불국사 아사달 사랑탑의 목련 불국사 초입, 동리 목월문학관 가는길에 있는 아사달 사랑탑 주변의 목련이 수려하다. ⓒ 최정선
  
불국사 초입, 목련 명소가 있다. 바로 동리 목월 문학관 가는 길, 주변이다.  봄이면 목련의 꽃사태가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아사달 사랑탑 주변에 핀 목련이 좋다. 작은 연못의 푸른 빛을 받은 목련이 더 파리하다. 이곳 목련도 군락을 이뤄 어른 손바닥보다 큰 탐스러운 눈꽃을 펑펑 내려놓는다. 순백의 꽃이 무더기로 피어 고찰을 장엄하게 빛낸다.
 
봄빛 물든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봄빛 물든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목련터널 길. 이곳 목련은 기이하게도 메타세쿼이아 나무처럼 길게 뻗어 있다. ⓒ 최정선
 
목련이 터널을 이룬 곳이 있다하여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시내 목련이 피고 지기를 반복할 무렵 제일 늦게 목련이 꽃봉우리를 피운다.
 
목련터널 길. 이곳 목련은 기이하게도 메타세쿼이아 나무처럼 길게 뻗어 있다. 보통 옆으로 퍼져 가지에 대롱대롱 꽃을 피우는데… 쭉 뻗은 모습이 단언컨대 가로수로 손색이 없다. 사실 목련은 여러 이유로 가로수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집 앞마당이나 담장 밖에 어울릴 법한 꽃이다.
 
봄의 목련터널 앞에 서자, 파아란 하늘을 향하여 동그랗게 팔을 모은 가지가 마치 기도를 올리는 것 같다. 아니면 땅에서 하늘까지 춤을 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발등에 꾸밈없는 산목련 꽃잎이 사르르 하고 떨어진다. 산목련 옆으로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의 신록과 작은 개울이 보인다. 피어나는 목련길을 걸어보거나 작은 개울에 반영된 자신을 보며 나르시시즘에 빠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산림환경연구원 초입의 오솔길에 피어난 목련은 '산목련'이다. 큼지막한 꽃을 치렁치렁 달고 공작마냥 날개를 펼친 모습이 다른 목련과는 사뭇 다르다. 산목련은 수직으로 높게 자라며 가지에 띄엄띄엄 흰꽃이 달린다. 긴 길은 아니지만 하얀 꽃을 틔운 산목련 터널을 걷는 기분은 남다르다. 그 뒤로 매화와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진한 꽃향기를 뿌리고 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지로 경주가 단연코 일순위였다. 초등학교 시절, 경주를 다녀온 기억이 어렴풋하다. 지금 경주는 꽃놀이를 즐기고자 연인끼리 인증샷을 찍거나 가족 여행객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띈다. 올봄 여행지 목록에 경주를 뺀다면 '단팥 없는 찐빵'을 먹는 격.
 

덧붙이는 글 | - 사진은 작년 2018년 3월 촬영한 것으로, 올해 2019년 3월 20~22일 sns 올라온 경주 대릉원 목련 개화와 비슷합니다. 단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의 산목련은 개화가 4월 초로 예상됩니다.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책에도 일부 실렸습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경주, #경주여행, #봄여행, #목련, #생각없이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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