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끄러운 호이안의 아침

새벽 6시, 꽤 큰 음악 소리에 눈을 떴다. 요란하지만 동시에 근엄하고 장엄한 음악소리. 아내는 아마도 국기게양식 같다며, 중국 유학 때도 비슷한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역시 사회주의 국가답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이렇게 음악 소리를 크게 내면서 국기를 울리다니.

하지만 그것은 국기게양식 음악이 아니라 숙소 옆 장례식장에서 발인할 때 울렸던 음악이었다. 숙소 직원에게 국기게양식이 매일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시끄러워서 미안하다며, 베트남에서는 새벽 6시가 길한 시간이라 보통 사람이 죽고 3~4일 뒤 그 시간에 발인을 한다고 했다. 3일상이라. 이것도 유교의 영향일까?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봤던 그 이상한 종교행사가 떠올랐다. 수많은 꽃에 둘러싸인 종교인이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던 그 모습. 너무 화려하고 격정적이라 그때는 그냥 베트남의 토착 종교이겠거니 했는데 그것이 바로 장례식이고, 그가 장의사였다니.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세히 관찰할 것을.
 
호이안 올드타운의 모습
 호이안 올드타운의 모습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올드타운 구석구석
 올드타운 구석구석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아침을 먹고 나들이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7~8시쯤부터 숙소 옆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갖가지 소음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한창 등교 때인지 후에에서 들은 것 같은 음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50대 쯤 된 것 같은 남성의 중저음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던 교장님 훈화 말씀 톤이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한 주가 시작되기 전에 교장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잔소리를 하는 듯했다.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학교의 풍경.

궁금해졌다. 교장님의 훈화 말씀은 전 세계 공통인가? 우리의 훈화 말씀은 일제 강점기부터 군사독재정부 때까지 전해져 내려온 병영국가의 흔적인데, 베트남의 훈화말씀은 어떤 맥락으로 이어져 오는 것일까? 어쩌면 베트남 사회도 프랑스와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병영국가화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호이안 올드타운 산책

오늘의 일정은 하루 종일 호이안 올드타운 관광이었다. 아내의 제안대로 특별한 계획 없이 호이안 올드타운을 돌아보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쉬어가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도착한 호이안 올드타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여러 영화에서 봤던 씨클로였다. 올드타운은 아침 11시까지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지나다닐 수 없었는데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이 씨클로를 타고 올드타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씨클로 기사들이 금액을 부르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씨클로를 타겠다고 졸라댔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씨클로 한 번 타 봐야지. 
 
씨클로 타기
 씨클로 타기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겠다는 아내를 놔두고 첫째와 둘째, 그리고 막내와 내가 둘씩 짝을 지어 씨클로를 탔다. 꽤 무거웠을 텐데도 불구하고 씨클로 기사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아, 괜히 미안한 느낌. 아무리 돈을 지불한다지만 그렇게 가만히 앉아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를 직접 받고 있으려니 불편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버스나 택시기사에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팁을 부르는 인력거나 씨클로의 큰 특징이려니.

씨클로 한 바퀴를 탄 뒤 다시 가족들과 호이안 올드타운을 걸었다. 올드타운은 구석구석 예쁜 곳이 많았다. 밤에 볼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굳이 무슨 건물을 들어가지 않더라도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문화재 구경이었고, 여행이었으며, 사진을 찍으면 엽서였고, 포즈를 잡으면 모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호이안 올드타운 자체를 즐겼고, 오후가 되자 그 중의 60% 이상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호이안 올드타운과 목포 구도심
 
올드타운의 고택
 올드타운의 고택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호이안의 오래된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최근 말들이 많았던 손혜원 의원의 목포가 떠올랐다. SBS의 보도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언론들이 함께 물고 뜯었던 바로 그 사건. 그러나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당신들이라면 진짜 투기를 위해 목포까지 내려가서 그 허물어져가는 건물들을 사겠느냐고.
  
사실 2016년 내가 목포로 여행을 갔을 때도 구도심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방치되고 있던 전근대 건물들이었다. 그나마 책자에 등장하는 건물들은 어느 정도 보전되고 있었지만 그것들 말고도 목포 구도심에는 이름도 없는 아주 오래된 건물들이 부지기수로 많았고, 대부분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 가치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내려다 본 호이안 올드타운
 위에서 내려다 본 호이안 올드타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을 가서 유럽의 고풍스러운 마을을 보며 중세를 떠올리고, 베트남 호이안의 올드타운을 보며 마냥 부러워하지만 그것은 모순이다. 국내에도 그만큼 보전할 가치가 있는 거리와 건물들이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것들을 마냥 재개발, 재건축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종로 피맛골을 비롯해 을지로, 청계천 등등. 많은 이들의 추억을 간직함은 물론이요, 역사적 증인이 되어주었던 지역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 으리으리한 건물을 지어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면 전통이고 뭐고 부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자화상 아닌가. 요즘에야 도시재생이라고 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이 역시 태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손혜원 의원을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을까? 물론 국회의원의 신분으로서 이해충돌방지에 어긋난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문화재급의 건물들을 보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결코 그리 호락호락하게 선의를 베풀지 않는다. 돈 냄새를 맡으면 어떻게든지 허물고 개발하고 마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부동산 자본의 생리였다.

베트남 여성들의 노동
 
코코넛 배 타기 전
 코코넛 배 타기 전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점심을 먹고 올드타운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지역 여행사. 그곳에서는 코코넛 배 투어 상품을 팔고 있었고, 아이들은 팔짝팔짝 튀며 그것을 하고 싶다고 또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 언제 코코넛 배를 타 볼 수 있겠냐. 5인에 60달러만 주면 맛난 것도 주고, 배도 태워 준다고 하니 도전!

택시를 타고 간 선착장은 올드타운으로부터 꽤 거리가 있는 마을에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현지 여성이 기다리다가 우리를 안내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눈짓 손짓만으로도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고, 그들이 얼마나 우리를 극진히 대접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여성이 만들어준 반지
 베트남 여성이 만들어준 반지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그들은 배를 타기 전 우리에게 차와 코코넛 간식을 대접하고, 코코넛 나뭇잎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 주었다. 메뚜기 모양의 반지와 왕관, 팔찌 등등이었다. 조잡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신들이 직접 본, 그 속에 담겨진 정성 때문인 듯 했다. 그래 무엇이든 정성이 들어가면 그것은 특별한 것이 되지. 아이들이 부디 그런 세상의 순리를 빨리 터득하길 바랄 뿐이었다.

이윽고 코코넛 배 승선. 배가 작은 관계로 다섯 식구는 두 개의 배에 나눠 탔는데, 특이한 건 그 두 배 모두 여성이 노를 젓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잔잔한 강이라지만 여성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이는 노동량. 남자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아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남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느낌상 이곳은 가족 기업 같은데 남자들은 외지에서 일하고 이것은 여성들의 부업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미안했다. 과거 베트남전 때문이었다. 그때에도 베트남 남성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외지로 나갔을 것이고, 가정 생계는 이렇게 여성들이 책임을 졌을 것이다. 그런 마을에 외국 군대가 들어와서 벌였던 만행들. 비록 승전국이라고 하지만 과연 이들은 그 역사적인 상처를 얼마나 간직하고 있을까. 그것이 박항서 신화로 모두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
 
노 젓는 베트남 여성
 노 젓는 베트남 여성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승선 시간은 올드타운의 여행사에서 설명한 것 보다 조금 짧았지만 그걸로 만족했다. 노 저으랴, 강 속에서 게를 잡아 아이들에게 전해주랴 바쁜 두 베트남 여성들을 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올드타운. 우리는 옥상에 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가 그곳에서 호이안 올드타운을 내려다보았다. 비슷한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냥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기 좋았고, 밤이 되자 조명 덕에 풍광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이래서 호이안, 호이안 하는 거구나. 자,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 내일은 다시 다낭으로 간다.
 
어두워지는 올드타운
 어두워지는 올드타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호이안 올드타운의 야경
 호이안 올드타운의 야경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태그:#베트남, #호이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