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1 09:27최종 업데이트 19.04.11 09:27

해방각 건물 (중국 산둥성 제남시) ⓒ 김기동


내가 생활하고 있는 중국 산둥성 제남시 시내 중심가에는 '해방각'이라는 건축물이 있다. '각'이란 건물을 호칭하는 단어이니, '해방각'은 해방을 기념하는 건물이다. 얼마 전 여행한 중국 충칭시 시내 중심가에는 '해방탑'이라는 탑이 있다.

중국에서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건물 이름에도, 탑 이름에도, 거리 이름에도, 영화나 연속극 제목에도, 심지어 국가 군대에도 '해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중국 사람이 사용하는 '해방'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국과는 조금 다른 '해방'

한국 사전에서 '해방'이라는 단어는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한다"라고 정의한다. 중국 사전에서 '해방'이란 "속박, 구속, 제한을 없애거나 제거한다"라고 정의한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해방이란 단어는 어떤 좋지 않은 상태를 벗어나 더 나은 상태로 변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더 나은 상태로 변하는 방법에 대한 해석이 조금 다르다.


"내일이면 학기말 시험에서 해방이다", "과중한 일이 끝나서 일에서 해방됐다"라는 예문처럼 한국에서는 어떤 상태를 겪고 이겨내고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학기말 시험이나 과중한 일은 미래에 다시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사용하는 해방이라는 말 속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상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보다는 주어진 어떤 상태를 이겨내고 벗어났다는 의미가 더 크다.

중국에서는 주어진 어떤 상태에서 다시는 그런 상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없애거나 제거한다는 의미가 크다. 중국에서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 능동적으로 현재의 상태를 개선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중국 '바이두백과(중국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집단지성 형식의 백과사전)'에서는 중국 정부나 언론매체 그리고 중국 사람이 사용하는 '해방'이란 단어를 중국혁명이 승리하여 새로운 중국을 만든 일련의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중국혁명이 무엇인지 알면 중국 사람이 사용하는 '해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중국혁명

중국 국민은 중국혁명을 통해 해방했다. 그래서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이런저런 기념물을 만든다.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중국혁명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중국 사람이 알고 있는 중국혁명을 통해 해방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중국혁명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서구 제국의 중국 침략에서 시작한다. 당시의 중국 청나라가 서구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반식민 상태로 전락하자, 중국 사람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청나라의 체제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000년 전부터 중국 모든 나라의 통치방식이었던 봉건주의(상위에 있는 자가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하위에 있는 자를 종속시켜 다스리는 방식)에 원인이 있다며 봉건체제를 해체하는 운동을 벌인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망하고 중국은 공화제(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국가를 운동하는 제도) 국가를 세운다. 그러니까 중국혁명 첫 번째 단계의 해방은 국민이 봉건 왕조 국가 체제를 해체하고 공화제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중국에서 공산당이 태동했다는 것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때 생긴 공산당에서부터 시작했으니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공산당의 태동을 중국혁명 두 번째 단계라고 하는 것 같다.

세 번째 단계는 토지혁명이다. 이 당시 공산당은 자신들의 세력에 속한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한다. 지주 아래에서 소작농으로 생활하던 농민들이 자신들의 농토를 가지게 됐으니 농민 입장에서는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국공합작(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연합하여 일본에 맞서 전쟁을 한 사건)으로 중국 영토 내에서 일본군대를 몰아낸 것이다. 중국 국가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국가 해방으로, 중국 국민 입장에서는 사람이 죽는 전쟁을 끝냈으니 해방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단계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에 공산주의 체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 정부가 이때 건국한 국가에서 비롯되었으니 해방이라고 하는 같다.

신중국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중국혁명을 통한 해방을 요약하면, 왕조시대의 봉건체제를 해체한 사건,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 낸 일, 그리고 중국에 공산체제 국가를 세운 것이다.

최근에 중국 정부 관료나 중국 언론매체는 새로운 중국을 의미하는 '신중국'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중국에서 해방이란 중국혁명 과정을 통해 새로운 중국(신중국)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신(新)'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단어를 기존에 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국에서 '신(新)'이란 과거로부터의 영속성을 바탕에 두고 개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중국 정부 관료나 중국 언론매체에서 말하는 신중국(새로운 중국) 건설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중국혁명 다섯 단계에서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단계로 개선하는 일이다.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중국혁명 다섯 단계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다. 아마도 여섯 번째 중국혁명 단계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일에서 해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형수술 광고 (중국 충칭시 해방탑) ⓒ 김기동

 

구찌 광고 (중국 충칭시 해방탑) ⓒ 김기동

 
이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해결됐는지는 중국의 풍경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한 예로 중국 충칭시는 인구 3300만 명이 사는 직할시다. 충칭시 시내 중심 광장에는 해방탑이 있다. 해방탑 주위로 빌딩이 들어서 있고 빌딩에는 대형 광고판이 달려 있다.

대형 광고판 광고는 1분마다 바뀌는데, 광고 내용은 '술', '성형수술', '여행'이다. 해방탑 뒤쪽에는 세계 유명 브랜드 구찌, 롤렉스, 루이뷔통 매장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 누릴 수 있는 '사치품'들이다. 

중국 정부는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일곱 번째 중국혁명 해방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그 구체적인 청사진은 다음 사례로 엿볼 수 있다. 

부흥의 길
 

중국국가박물관 부흥의 길(부흥지로(復興之路)’전시관을 방문한 중국 시진핑 주석과 상무위원(2012년11월30일) ⓒ 중국국가박물관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중국국가박물관에는 '부흥의 길(復興之路)' 전시관이 상설 운영된다. 이곳은 서구제국주의 국가가 처음 청나라를 침략하는 1840년 아편전쟁이 시작되기 전, 청나라 상황을 설명하는 전시물로 시작된다. 제국주의 서구열강 침략에 청나라가 어떻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전시관의 이름은 왜 '부흥의 길'이 됐을까. '부흥(復興)'은 다시 흥한다는 의미다. 즉 과거에는 번창했는데 어떤 일로 쇠락해져서 지금 다시 번창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청나라가 왜 서구 제국주의에 무너졌는지 그 원인을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중국 사람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중국 사람이 생각하는 과거 번창했던 시기는 언제일까? 바로 '강한성당(強漢盛唐)'이다. '강한 한나라와 번성한 당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와 당나라 기간 중 어느 시기를 강한 한나라와 번성한 당나라 시대라고 할까? 중국 바이두 백과에서 '강한성당'을 찾아보면 구체적으로 한나라 한무제의 '문경지치세'와 당나라 당태종(이세민)의 '정관치세', 당나라 당고종의 '영휘치세' 시기를 '강한성당' 시대라고 설명한다.

'중국 부흥의 길'이 목표로 하는 '강한성당(強漢盛唐)'은 바로 한나라 한무제와 당나라 당태종 시대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중국 정부 관료나 중국 언론매체에서 사용하는 '신중국'으로, 중국혁명의 일곱 번째 해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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