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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분노와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뉴스 봤어? 또 아이를 학대한 사람이 있대."
"뭐? 또? 어린이집이야?"
"아니, 이번엔 정부 지원 돌보미래. 14개월 아이를 학대했대."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곧바로 뉴스 영상을 찾아봤다. 너무 무섭고 놀랐다. 첫째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14개월 아이를 학대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둘째로는 정부 지원 아이 돌보미가 아동을 학대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여성가족부가 하는 사업이기에 믿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영상 속 14개월 아이, 내 아들의 14개월이 떠올랐다

영상 속 아이 돌보미는 14개월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며 뺨을 때리고 밀쳤다. 순간 아들의 14개월 때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14개월 때는 걷기 시작한 지 채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아 이리 걷다 쿵, 저리 걷다 쿵 하는 사랑스러운 시기였다. 좋아하는 반찬이 있거나 배가 매우 고프면 밥을 잘 먹었지만,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음식이 있거나 배가 별로 고프지 않으면 입에 있는 음식을 수시로 뱉곤 했다. 

만약에 아내가 육아 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정부 지원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 아이도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상 속 아이처럼 말도 안 되는 학대를 당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더욱더 분노가 치밀었다. 영상을 통해 처음 아이의 모습을 본 나도 이렇게 억장이 무너지는 데 영상을 공개한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학대를 받은 아이다. 아들은 14개월 때 부모가 자신의 시야에서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의 얼굴이 실수로 팔꿈치나 무릎에 살짝이라도 닿는 날이면 나는 아이가 혹시 다치지는 않았는지, 많이 아프지는 않은지 전전긍긍하곤 했다. 

그런데 영상 속 아이 돌보미는 아이의 뺨을 때리고 밀치고 꼬집고 꿀밤을 때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이가 울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했다. 부모가 꼭 안아주고, 달래주어도 세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를 보내는 두 살배기 아이가,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낯선 사람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얼마나 무섭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보내야만 하는 어린이집
 
아빠와 아들의 행복한 모습
 아빠와 아들의 행복한 모습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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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나를 기다리는 세 명의 가족이 있다. 한 명은 감기에 걸렸지만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만삭의 아내이고, 한 명은 폐렴과 장염을 연이어 겪은 세 살배기 첫째 아이다. 마지막 한 명은 엄마 뱃속에서 쉬고 있지만, 곧 세상과 나올 둘째 애다. 직장에서 일과를 마친 후 나는 동료들에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저, 이제 집으로 출근합니다!" 

사실, 지금 우리 가족은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나는 올 3월부터 직장을 옮겨 이제야 좀 적응을 한 것 같고, 아내는 출산이 가까워진 터라 숨 쉬는 것도 점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기까지 걸렸다. 만삭에 기침하면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세 살배기 아들은 3월에 어린이집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3월에 개원했는데, 그러다 보니 모든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온 것이라 적응하는 데 다들 애를 먹었다. 

매일 같이 울면서 어린이집에 들어갔다가, 울면서 나오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아이가 조금씩 어린이집에 적응해 갔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사랑으로 잘 감싸주셨고, 집에서 부모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다닐 수 있게 열심히 격려하고 칭찬한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잘 적응을 해 가려는 시점에 큰 암초를 만났다. 아이가 밤사이 열이 40도까지 올라간 것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기관지 폐렴이었다. 낯선 공간인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나 보다. 결국 아이는 3박 4일 동안 생애 첫 입원을 하게 됐다. 병원에 있는 동안 고열과 기침으로 힘들어하고, 기력이 딸려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종일 축 처져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도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갔다.
 
병원에 입원한 아들. 아들은 어린이집 생활이 힘들었다.
 병원에 입원한 아들. 아들은 어린이집 생활이 힘들었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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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 달 후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짧은 휴가를 받아 첫째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휴가가 끝나면 낮 동안의 육아는 오롯이 아내가 떠안게 된다. 사실상 신생아와 세 살배기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가 혼자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쩔 수 없이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아내도 복직해야 한다. 우리 부부가 함께 일해야 네 가족의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양가 부모님이 모두 경제생활을 하고 계셔서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러니 아이를 돌봐줄 어린이집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가 우리 가족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아이 돌보미 학대 사건 이전에도 어린이집에서의 아동 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아동 학대는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사는 매우 흉악한 범죄다. 나를 포함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사건을 접하면서 처음엔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다가도 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할 수밖에 없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착잡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동 학대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아이 돌보미 및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인성검사의 강화,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할 시 CCTV 설치 지원 등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산더미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보완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피해 아동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유명한 아프리카의 옛 격언이 있다. 이 말은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려면 부모뿐 아니라 다른 가족, 이웃이 모두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도움을 줘야 함을 뜻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보육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격언이다.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는 모든 사람이 '너희 집 아이'가 아닌 '우리 마을이 키우는 아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사랑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일도 자기 몸만 한 노란색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에 갈 아이를 걱정하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밝은 웃음, 신나는 발걸음을 꼭 지켜주고 싶다.
 
어린이집에 가는 아들
 어린이집에 가는 아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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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금천구 아동 학대 사건, 13년차 아이돌보미의 편지 ☞ http://omn.kr/1ig4u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정부지원 돌보미, #아동학대, #어린이집, #육아빠, #14개월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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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이 가득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교육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둑과 야구팀 NC다이노스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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