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툴리> 포스터.

영화 <툴리>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한 번이라도 푹 자봤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독박 육아 시기, 어떤 엄마라도 느꼈을 고단함일 것이다. 영화 <툴리>의 주인공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도 그렇다.
 
마를로에게는 이미 두 아이가 있다. 그런데 다시 아이가 생겼다. 낳기로 결심했지만, 마흔 너머의 출산과 육아는 이미 예견된 고난이었다. 마를로는 이 외롭고 고단할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아이 둘을 키우느라 녹초가 되는 엄마

아들 '조나'(애셔 마일스 팔리카)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다.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종종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소리를 지르거나, 소리에 민감해서 어떤 소리엔 경기를 할 정도로 반응하며 무서워한다. 심리 치료를 받아보지만 마를로가 감당하기엔 비용이 너무 비싸다. 궁여지책으로 조나의 증상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 써보기도 하지만 호전되지 않는다.
  
 영화 <툴리> 스틸컷.

영화 <툴리>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학교에 간 조나는 부적응자로 퇴출될 위기에 처한다. 학교로 불려간 마를로는 '아직 어리니까 좀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며 조나를 열심히 변호하려 한다. 출산을 며칠 앞둔 마를로는 모든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자기 학교에 맞지 않는다고 조나를 제적시키는 학교는 그 본령을 상실한 모습이다. 대체 학교에 맞는 아이란 누구일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사실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너지가 팔팔한 아이들이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만, 현실은 그 당연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ADHD라고 명명하고 낙인 찍고 교실에서 소외시킨지 오래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의 성향을 약으로 다스린다.
 
출산한 마를로는 돌봐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기에 더욱 막막하다. 언제나 식구들을 돌보기만 하는 마를로에겐 정작, 그를 돌봐주는 이가 없다. 일은 쌓여만 가고 집은 엉망이 돼 간다. 피로함으로 남편과의 섹스도 시큰둥하다. TV에 나오는 섹스 장면으로 욕구를 대리할 뿐이다. 실상 마를로의 하루하루는 산다기보다 겨우 버텨내는 수준이다. 거의 다 타버린 땔감에 겨우 남아 있는 불씨 정도라 할까.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마를로는 마침내, 오빠 크레이그(마크 듀플라스)가 권했던 야간 보모를 들이기로 한다.
  
 영화 <툴리> 스틸 사진.

영화 <툴리> 스틸 사진. ⓒ 리틀빅픽처스

 
찾아온 야간 보모는 예상과 달리 젊은 여성이었다. 이름은 '툴리'(맥켄지 데이비스). 이 젊은 보모는 일머리가 척척이다. "나를 방치한 지 오래됐다"는 마를로를 쉬게 하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툴리의 사려 깊은 보살핌에 마를로는 기력을 회복한다. 말하자면 툴리는 마를로의 '우렁각시'다. 마를로가 자는 동안 갓난아기를 돌보고 가사 일까지 마친다. 툴리가 구워 준 컵케이크을 조나의 교실에 들이밀어 준 마를로는, 간만에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지친 엄마 마를로에게 찾아온 '우렁 각시'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겐 우렁각시가 필요하다. 자는 동안 어마어마한 집안일을 대신해 주고 단 몇 시간이라도 푹 잘 수 있게 돌봐줄 우렁각시 말이다. 물론 헛된 꿈이다. 실상 엄마들에게 아이가 자는 시간은 밀린 집안일을 하는 골든타임이지 않은가. 아이가 깨기 전에 젖병을 끓이고 아기 옷을 삶고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세탁한 빨래를 널어야 한다. 일은 해도 해도 또 생긴다. 누가 이 일들을 대신해주겠는가?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소원은, 푹 자보는 것, 밥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보는 것, 단 몇 시간이라도 혼자 있어 보는 것이다.
 
툴리는 마를로에게 오랜 친구처럼 말을 걸고, 육아와 가사로 지쳐 잃어버린 자아를 불러내게 한다. 마를로는 잊었던 자신의 모습을 환기하며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무엇을 좋아했고 무슨 꿈을 꾸었었는지 떠올린다. 잃었던 자신을 회복해갈 즈음, 툴리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이제 겨우 숨 쉬게 됐는데 인공호흡기를 떼겠다니. 툴리에 의지하고 사랑하게 된 마를로에겐 청천벽력이다.

둘은 마지막 날을 보내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간다. 어릴 적 꿈 많았던 마를로가 살았던 그 동네로. 좋아하는 버번을 마시고 취한 마를로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 본다. 집은 건재하지만 희망차고 활기찼던 마를로는 거기에 없다. 불은 젖이 주는 고통은 마를로가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파티가 끝난 것이다. 마법이 풀리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영화 <툴리> 스틸컷.

영화 <툴리>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모유 수유한 사람이라면 이 아픔을 알 것이다. 젖이 돌아 아이를 먹여야 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젖이 바람 넣은 공처럼 빵빵해지며 아파오지 않던가. 집에서 수유를 할 수 없는 엄마들은 유축기로 젖을 짜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젖을 짜내지 못하기라도 하면, 배어 나온 젖으로 속옷이 흥건해진다. 그뿐인가. 수유할 동안은 엄마가 먹는 것을 아이가 같이 먹으니, 임신 때와 마찬가지로 취향대로 먹을 수도 없다. 좋아하던 커피도, 술 한 잔도 마실 수가 없다. 카페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는 마를로에게, 디카페인 커피에도 카페인이 있다며 한심한 엄마인 양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임신하거나 젖을 먹이는 엄마를 욕망이 거세된 금욕주의자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돌아가야 하는 마를로는 어쩔 수 없이 음주운전을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리운전 서비스가 브루클린에는 없다. 극도의 피곤함으로 눈이 감기던 마를로는 졸음운전을 하다 중앙선을 넘게 되고,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다 사고가 난다. 물속에 잠긴 마를로를 구해준 이는 누굴까. 툴리는 어떻게 된 걸까. 의식을 회복한 마를로는 이제 툴리의 도움 없이 다시 살아가야 한다. 마를로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을까.
 
육아로 잠이 부족하던 어느 날, 운전을 하다 깨보니 내 차가 앞서가던 차를 들이 받은 채였다. 정말 찰나였는데 그렇게 되어있었다. 어떻게 운전을 하다 졸 수 있지. 내 자신이 아니라고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다. 가사와 직장을 병행한다는 건 때로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심한 남편... 그가 말하는 "우리"의 의미

퇴원한 마를로는 일상에 복귀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그제서야, 당신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는 남편. 몰라도 되는 권리, 게으를 권리. 게임할 시간은 있어도 가사 분담할 틈을 내주지는 않던 남편의 개과천선은 가능할까?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마를로의 곁에서 야채를 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사 일을 내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 한, 마를로의 분열과 착란은 재발할 것이다.
  
 영화 <툴리> 스틸 사진.

영화 <툴리> 스틸 사진. ⓒ 리틀빅픽처스

 
의기소침한 마를로를 다시 세운 건, 남편의 "나는 우리를 사랑해(I love us)"가 아니다. 'you'(너)가 아니라 'us'(우리)라고 한 남편의 말은, 마를로의 존재 이유를 함축한다. 당신의 존재 이유는 '당신' 자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음을 경각시키는 엄혹한 언어다. 마를로를 붙잡아 준 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남편의 고백이 아니다. 툴리의 위로다. 깊지만 허망한 위로.

이제 사는 일이 꿈이 아니기에, 더 이상 가슴 뛰는 순간들이 아니기에 분열하는 마를로를 툴리는 이렇게 다독인다. "매일 일어나서 가족에게 같은 일을 해주는 것. 그 단조로움이 바로 꿈이야." 그래서 툴리의 격려는 마를로를 위로함과 동시에 다시 구속하고 있다. 왜 툴리는 너 자신을 먼저 돌보라고 말해줄 수 없었을까? 툴리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던 걸까? 툴리는 누구일까?

'독박 육아 엄마에겐 우렁각시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렁각시'란, 실상 판타지다. 형편이 된다면 현대판 우렁각시인 야간 보모를 둘 수도 있겠다. 문제는 야간 보모 역시 '여성'이라는 데 있다. 즉 엄마의 노동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또다시 '여성'을 착취하게 되는 역설이 생긴다. 그러므로 우렁각시는 진정한 여성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면 대안은? 간단하다. 우렁 '각시'가 우렁 '신랑'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함께 낳은 자식은 왜 늘 여성 혼자 키워야 할까. 극중에서 마를로는 무려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 그래서 저 문장을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독박 육아 엄마에겐 우렁 '신랑'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툴리 샤를리즈 테론 독박육아 돌봄노동 가사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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