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 근래 범람하는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느끼는 몇 가지 감정들이 있다. '지나치게 수려한 글'에 대한 아쉬움, 혹은 '잘 포장된 한 편의 상품'을 보는 듯한 이질감이 바로 그것들이다.

수려하다는 점이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정작 필요한 문장과 글들은 수려함보다는 진솔함이기 때문에 아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진솔함이야말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표현할 단어와 문장이 마땅치 않다고 느꼈을 그 문득문득의 순간들이 한 편의 글에 온전히 펼쳐지는 듯한 느낌, 이는 진솔함이 가득 담긴 글이라야 가능한 체험이다.
 
진솔함 가득 베인 에세이 한 편을 읽으며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다. 자그마한 삶의 위로,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이보다 더 절실할 수 없을 수도 있다.
▲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진솔함 가득 베인 에세이 한 편을 읽으며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다. 자그마한 삶의 위로,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이보다 더 절실할 수 없을 수도 있다.
ⓒ 수오서재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엄청나게 차별화된 제목이 아니기에, 제목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또 브런치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달성했다고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다만 기대감을 내려놓았을 때 이 책은 마치 반전과도 같은 감동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이거, 진짜 에세이네.'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 가득 흘러나오는 고기 육즙처럼, 책을 읽을수록 진솔함이 엄청나게 흘러나온다. 에세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실에서 도망쳐 시간을 달리고 싶었던 여자애는 이제 달리기를 그만뒀다. 지금, 살아있는 순간을 느끼며 천천히 걷기로 했다. 여전히 쉽진 않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그저 불행하기만 한 삶은 없다. 살다 보면 불행한 순간도, 슬픈 순간도, 행복한 순간도, 마음을 울리는 순간도 만나게 된다. 그 순간들로 채워진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이 책은 고수리라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나의 이야기도, 또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인생 자체가 아주 독특한 삶의 궤적이라기보다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인생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작가는 제목에서부터 미리 선언하다시피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라고 말이다. 사랑의 모양과 형태는 각기 다를지언정, 결국 사랑으로 수렴하고야 마는 우리들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젠 제법 작가라고 불리는 일이 잦다. 그러나 내가 뭔가 대단한 꿈을 이루었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책을 쓰는 일은 나무를 심고 아이를 낳는 일처럼 평범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잠재적인 작가이기에.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시작했으면 좋겠다. 늦었다고 생각한 꿈을 다시 꺼내고 당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기. 이름 모를 당신의 인생은 어떤 책일까. 그 첫 페이지가 궁금하다."

책에서 작가는 순간순간의 순간들을 통해 작가 본인의 삶과 경험을 돌아보기도 하고, 또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일 수 있는 이 공감대를 위해서 누군가는 엄청난 용기를 쥐어짜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내색하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작가는 겸허한 자세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나는 내 이기심을 보았다.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며 사실 나는 내 걱정이 먼저였다.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말에, 내려가야 하나. 얼마나 있다 와야 하나. 하던 일은 어떡하지. 애들은, 또 남편은 어쩌나. 내 걱정부터 했다."

우리네 삶은 점점 강팍해져 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사람들은 점차 개인화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화가 되어간다고 우리 사회가 꼭 강팍해져만 간다고 할 수 없다고 난 생각한다. 그 모양은 서로 다를지언정 '사랑'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공고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을 열망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연약함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위로하게 되는 것이 아닐런지. 바로 이 책의 존재처럼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을 열망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닐까. 아무리 사회가 강팍해지고 있다 한들 말이다.
▲ 서로 각기 다른 모양의 우리들 여전히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을 열망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닐까. 아무리 사회가 강팍해지고 있다 한들 말이다.
ⓒ duy pham by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와 글쓰기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이번에 쓸 주제로 우리 각자의 이야기에 대한 진솔한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떠하냐고 말이다. 이에 대한 여러 의견들 중 한 분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계속 남았다.

'저한텐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맞다. 맞는 말이다. 내 이야기를 여과 없이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인다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과정임에 분명하다. 반대로 고통스러운 그 과정을 인내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의 공감, 그 힘은 결코 작지 않으리라. 바로 이 책이 아주 좋은 그 예시인 것 같아 그분께 추천해 드리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 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힘이 생긴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고통스러웠을지 모를, 그 인내와 연단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제 삶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데다가 타인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하니, 독서를 넘어 글도 역시 한번 써볼 만하지 않을까.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해 내게도 매우 유익하고도 의미 있는 조언들이 책에 숨어 있었다. 때문에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가 있다면, 난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더불어 당신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느냐고 묻고 싶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지음, 수오서재(2019)


태그:#공감, #에세이, #소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