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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은 골목의 신뢰를 얻어야 성공한다."

요리사 박찬일이 쓴 <노포의 장사법> 을지OB베어 편에 나오는 창업주 강효근 선생 인터뷰의 한 구절이다. 

수십 년간 장사 철학에서 우러나는 늙은 상인의 경험담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골몰하는 수많은 자영업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영업 시장 진출 가속화로 인해 음식점 폐업률은 92%에 이른다는 통계치도 있다는 점에서 그 경험담이 전하는 무게는 한층 묵직하다.
 
을지로 3가 '을지OB베어'
 을지로 3가 "을지OB베어"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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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낯익은 캐릭터 '오비 베어' 앞세운 노맥 골목 원조

해태 타이거즈의 '호랑이', 삼성 라이온즈의 '사자', OB 베어스의 '곰'은 1980년대 초반 익숙한 캐릭터였다. 

삼십여 년을 훌쩍 뛰어넘은 2019년, 을지로 노맥(노가리+맥주) 골목에는 1980년대 당시 인기였던 '곰' 캐릭터가 여전히 우리를 반겨준다. 거품 가득한 맥주잔을 들고 있는 OB 베어스의 모습이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OB베어 캐릭터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OB베어 캐릭터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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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3가 뒷골목에는 '노가리 골목' '을지 페스타'라고 불리는 명소가 있다. 이곳에는 원조 가게인 '을지OB베어'가 자리 잡고 있다. 

기자가 19일 찾은 '을지OB베어'는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넘어가자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6평 규모의 가게 안은 물론 주차장에 깔아 놓은 간이테이블마저 모두 만석을 이뤘다.

뒤늦게 도착한 손님들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대기줄은 점점 길어졌다. 그런데도 기다리는 손님들의 표정은 재미있다. 즐거움과 행복한 순간을 고대하는 표정으로 읽힌다.

그들은 이 골목 다른 맥줏집의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줄을 섰을까?
5시 무렵 까지만 해도 한가했던 가게는 6시를 넘어서자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5시 무렵 까지만 해도 한가했던 가게는 6시를 넘어서자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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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는 황해도 송화 출신이라는 창업자 강효근(92) 선생이 1980년 당시 공구상 골목이었던 이 자리에 들어와 터를 일구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1980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발을 내디딘 OB맥주가 자사의 'OB베어' 브랜드를 단 체인점을 모집했는데 그 1호점이 바로 이 가게인 것이다. 

장사를 시작한 지 39년, 세월의 무게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백년가게'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또 서울시는 보존가치를 인정하면서 '서울미래유산'이라고 명명했다.
  
백년가게와 서울미래유산 명판
 백년가게와 서울미래유산 명판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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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다른 '생맥주' 온도... 최고의 맛을 향한 열정이 빚은 결과

을지OB베어가 39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창업자 강효근 선생의 사위 최수영(64) 선생은 1980년 당시부터 이어오고 있는 '생맥주 냉장 숙성'을 비결로 꼽았다. 

그는 "장인이 1980년 당시 구하기 힘든 제너럴일렉트릭 냉장고를 미군 부대에서 매수해 냉장 숙성을 했다"면서 "그렇게 하면 급속냉장 생맥주는 지니지 못한 묵직한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최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의 맥주 통은 냉장고에 직접 연결된 디스펜서로 뽑게 되어 있고, 지금도 그 방식을 지키고 있다.
 
주차장 한켠에 있는 냉장고 안에는 케그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채 숙성되고 있었다.
 주차장 한켠에 있는 냉장고 안에는 케그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채 숙성되고 있었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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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외부 모습이다.
 냉장고 외부 모습이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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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이 같은 호프 기계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거의 사라졌다. 대신해 그 자리를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고 간편하게 뽑기 위한 순간 냉각식이 차지했단다. 숙성하는 생맥주 온도가 다른 것은 차원이 다른 이 집 생맥주 맛의 또 다른 비결이라고 했다.
  
창업주 강효근 선생의 딸 강호신씨가 가게를 이어받았다.
 창업주 강효근 선생의 딸 강호신씨가 가게를 이어받았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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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은 "주류 도매점도 39년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곳은 낮에 한 번 나가서 쭉 도는 데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케그(맥주통)를 받아놨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후 새벽 해뜨기 전 5시 30분을 전후해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는 생맥주 온도에 대해 "겨울에는 4도, 여름에는 2도다. 장인께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적정 온도다. 봄철인 지금은 2도로 넘어가는 시기다. 비가 올 때도 온도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며 설명했다.

케그를 상온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게 아니라 생산공장에서부터 주류도매상 그리고 최종 소비처인 을지OB베어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냉장 상태를 유지하는 게 맛을 일구는 비결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연탄불의 화력이 상당히 강하게 보였다.
 연탄불의 화력이 상당히 강하게 보였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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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인기 비결은 이 가게의 상징인 연탄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어 내는 '노가리'였다. 

최수영 선생이 노가리를 연탄 화덕에 굽는데 조금 특이하다. 양손으로 노가리를 지그시 누르면서 구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집게를 쓰지 말고 손으로 직접 구어라는 장인의 엄명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손은 늘 1도 화상 상태라고 하는데 이제는 내성이 생겨 크게 뜨거움을 못 느낀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연탄화덕에 노가리를 구워내고 있다.
 연탄화덕에 노가리를 구워내고 있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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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워낸 노가리는 손으로 북북 찢은 후 이곳만의 노하우가 녹아 있는 특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노가리와 함께 먹으니 시원스럽게 넘어간 생맥주의 맛이 한층 살아난다.

'대한민국 최고의 생맥주'라는 찬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노가리가 먹기좋게 구워진채 테이블에 올라왔다.
 노가리가 먹기좋게 구워진채 테이블에 올라왔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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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노포 '여주인' 한 숨 짓게 하는 것은 '임대차 계약'

100년 가게를 꿈꾸는 을지OB베어의 최수영 선생과 기자의 대화를 바라보던 부인 강호신(59) 사장의 얼굴이 어둡다. 최 선생 또한 어두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무슨 사연일까? 

최 선생은 1980년경 가게를 임차해 시작한 후 건물 매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상속으로 인해 권리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실패한 후 임대차 계약을 갱신했다. 2013년 재계약을 했고 그 기한이 2018년 10월 30일이었다. 그런데 건물주가 계약 만료 전인 6월에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해왔다.   현재 건물주는 재계약을 최종적으로 거부한 후 지난해 10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을지OB베어 측도 권리관계를 주장했다. 현재 을지OB베어 측과 건물주는 6개월이 넘게 소송 전을 이어가고 있다. 
 
만국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만국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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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0일과 11일, 양일간 '2019 을지로 노맥축제 이웃돕기 자선행사'를 알리는 현수막과 함께 걸린 만국기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을지로 노맥축제'를 상징하는 '을지OB베어'가 만약 사라진다면 내년 이맘때 이 현수막은 어떤 모습을 하고 걸려 있을까? 양측의 갈등이 부드러운 봄바람과 함께 원만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맥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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