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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마를 입지 않는다. 별 이유는 없다. 취향대로 옷을 사다 보니 다 바지였고, 35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새삼 치마를 입는 것도 어색하다.

엄마는 어릴 적 내게 치마를 자주 입혔다. 어린 시절 사진 속에는 검고 곱슬한 긴 머리를 한 내가 강렬한 붉은 장미 원피스를 입거나 연분홍 치마를 입고 있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 사 입지 않을 그런 옷들이다. 게다가 지금 난 머리도 귀밑까지 올 정도로 짧다.

21살에 만난 남자친구의 소원은 내게 치마를 입히는 거였다. 내 나름 대학에 왔으니 당시 유행하던 NII나 빈폴의 베이지색 니트와 역시 베이지색 면바지를 깔끔하게 받쳐 입고 다녔는데, 그는 내가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멜빵 청치마를 입길 원했다.

그는 자주 내게 치마를 입는 여자들을 가리키며 "너도 저렇게 입어"가 아니라 "너도 저렇게 입고 싶지 않아?"라고 부드럽게 물었다. 질문이 아닌 걸 알았기에 난 화를 냈다. "대체 왜 나를 만나냐?"고 따졌더니 그는 "네가 아직 덜 진화했을 뿐 꾸미기만 하면 예뻐질 거"라고 답했다.
 
 왜 여자라고 치마를 입어야 하는 걸까?
 왜 여자라고 치마를 입어야 하는 걸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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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대와 달리 포켓몬이 아닌 난 진화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레이스나 꽃무늬가 들어간 옷은 질색이었다. 그걸 입고는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기 싫었다. 예쁘다는 말보다는 멋있다는 말이 좋았고, 치마를 입으면 나 같지 않았다.

민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고집했고, 새하얀 셔츠에 딱 떨어지는 회색 슬랙스 바지를 입는 것도 좋았다. "다리가 예뻐서 치마 입으면 예쁘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 반바지 입는데?"라도 답했다.   

치마와 맞춰 신어야 하는 구두도 불편했다. 발뒤꿈치가 까지면서까지 구두를 신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입었던 교복 치마는 앉을 때마다 다리를 오므리는 것도 귀찮았고, 뛰는 것도, 그네를 타는 것도 불편했다. 치마는, 특히 면접 볼 때 한 번 입었던 정장 치마는 여자가 뭘 못하게 하려고 만든 옷이 아닐까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차이나 카라의 단정한 하얀 셔츠, 똑 떨어지는 회색이나 남색 슬랙스 바지 등 내 눈길 가는 옷은 모두 남자 옷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사지 못했다. 사이즈도 크지만 남자 옷은 올곧은 직선이라 내 몸에 꼭 맞지 않았다.

반면 여자 옷은 곡선이 너무 심하거나 배꼽이 드러날 만큼 짧았고, 레이스나 꽃무늬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앞트임, 뒤트임, 옆트임, 내 눈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망사까지. 요즘 같이 단순한 스타일의 옷을 인터넷에서 쉽게 구매하기 전에는 여성복 매장에 갔다 빈손으로 나오기 일이 많았다.

키가 172cm인 여동생은 팔다리가 길어 늘 옷이 반 뼘쯤 짧았는데 작년에서야 남성복이 제 몸에 딱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장 33년 만이었다. 그러고는 그동안 입던 여성복들을 착착 내게 물려주었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는 일은 이렇게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사이즈별이 아닌 남녀용으로 나뉜 헬스장의 운동복을 볼 때마다 난 불합리하다고 느낀다. 마치 여자라면 응당 작고 마르고 남자라면 덩치가 큰 게 당연한 것처럼 굴지 않는가. 게다가 분홍색, 남색으로 성별로 색까지 구분지어 놓으니 빌려 입을 마음이 싹 가셔 난 개인 운동복을 입는다.
  
 바지를 입는 편이 더 편하고, 나답다
 바지를 입는 편이 더 편하고, 나답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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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옷'이 싫다고 해서 내가 남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그 편이 더 편하고, 나답다. 그나마 프리랜서로 일해 온 나는 옷차림에 대한 압박을 덜 받으며 살았다. 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는 '여성스러운' 옷차림은 물론 화장부터 다이어트까지 주위의 은근한 압박에 시달린다고 했다.

여성스럽다는 게 대체 뭘까? 여자는 치마를 꼭 입어야 하나? 결혼식에 갈 때마다 하나같이 원피스를 입은 친구들 사이에 혼자 바지를 입으면 괜히 민망했다. 평범함에서 비껴선 느낌, 누군가 수군댈지 모른다는 자기 검열. 때문에 한동안 결혼식을 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손쉽게 치마를 입지 않은 건 나를 속이는 거 같아서다. 바지 입는 게 나다움을 지키는 방식이라면 조금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 몸에 편한 바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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