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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성이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혼 이후 지속적으로 품고 사는 질문이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희생'을 삶의 미덕으로 삼았건만 그 가치에 비해 아름답거나 숭고하지 않았다. 참고 견딜수록 몸도 마음도 정신도 병들었다. 아내니까, 엄마니까, 며느리니까, 딸이니까 당연하게 요구되는 역할에 충실할수록 '나'의 존재는 희미해졌고 처절하게 외로웠다.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욱 가난하게 된다는 '부익부빈익빈' 현상. 견고한 가부장제 결혼제도 안에서는 '자유'와 '희생'에도 유효한 말이다. 자유롭고 힘 있는 사람일수록 살면 살수록 더 다양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고, 희생하는 사람은 점점 더 참고 견딜 일이 많아진다.

부익부빈익빈의 질서를 깨기란 쉽지 않다. '강자'는 인간관계, 경제력, 활동반경이 점점 넓어지는 삶으로 확장되지만, '약자'는 희생하며 살수록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범위가 좁아진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덜 열악한 상황을 참고 제한된 삶에 순응한다.

남자의 자유와 여자의 희생
 
 KBS <살림하는 남자들2>에 출연한 전영자씨
 KBS <살림하는 남자들2>에 출연한 전영자씨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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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흔하던 시절이었어요. 소설이나 라디오, 연속극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자연스레 본처는 그래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전영자씨가 여성지 <우먼센스> 5월호 인터뷰에서 그녀의 남편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당시에 이혼을 생각 하지 못했다면서 덧붙인 말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본능이고 외로운 남자들은 회포를 풀어야 한다'는 통념에 따라, 마담이 있는 술집을 드나드는 남편을 위해 술값을 빌리러 다닌 일화를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작가 이외수다. 그가 유명해지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수록 전영자씨는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다. 남편이 작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부와 권력을 쌓는 동안 그녀는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남편의 만행을 참았다. 자신을 잃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으리라.

무박 3일 동안 상대를 바꿔가며 술을 마시는 남편을 위해 새로운 안주를 준비하고, 남편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20~30인분씩 밥을 하는 세월동안 몸이 늙고 병들었다고 하니 그 속이 오죽할까. 최근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결혼생활 43년 만에 졸혼(결혼 졸업: 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로한 것)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갑다
  
소설가 이외수 부부 4일 오전 이외수 작가가 신작 <이외수의 캘리북> 표지에 친필을 한 후, 첫 번째로 아내 전영자 여사에게 건네고 있다.
▲ 소설가 이외수 부부 4일 오전 이외수 작가가 신작 <이외수의 캘리북> 표지에 친필을 한 후, 첫 번째로 아내 전영자 여사에게 건네고 있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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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혼부터 졸혼까지의 시간을 "다 행복했고 다 지겨웠다"는 한마디로 정의한다. 어렴풋하게 공감할 수 있는 양가감정에 후련함이 느껴진다.

결혼한 여성들, 특히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사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다. 부와 권력을 가진 기업인, 유명 연예인, 영화감독, 작가 등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남성이 별거하거나 이혼을 할 경우 대부분 그 남성들의 이야기만 전달된다. 난 늘 궁금했다. 상대인 배우자의 삶은 어땠을까. 살아온 인생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을까?

<우먼센스> 전영자씨의 졸혼 인터뷰는 그런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그의 모든 말이 신선하고 반가웠다. 결혼한 지 44년 만에 이외수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전영자'라는 한 인간으로 온전히 서겠다는 선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감정을 불러오게 했다.

당당하게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이렇다 할 권력 없이 누군가의 아내로 존재하던 사람이, 침묵을 깨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색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전영자'씨의 삶을 응원합니다
 
 언젠가 이 두꺼운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단 노브라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타인의 생활 방식에 보다 관대해질 때, 당신도 나도 한 뼘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녀의 선택을, 삶을 응원한다
ⓒ pixabay
 
인내와 희생의 과정이 아름답다 말하는 사람은 참지 않아도 되는 유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바란다. 결혼한 여성들이 단 한 명이라도 외도를 한 남편의 내연녀 앞에서 거침없고 씩씩하게 살지 않기를, 우여곡절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센 여자로 살지 않아도 되기를.

남편의 술안주와 삼시세끼에서 벗어나, '전영자'씨 본인의 욕구를 살피며 살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흔들림없이 실현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두려움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그녀를 롤모델 삼아 타인을 돌보느라 미뤄둔 '나'를 찾는 여성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결혼한 여성이 나로서 살아가는 '길'을 묻는 것,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끝끝내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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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