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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이었다. 찬란한 봄으로 가득한 캠퍼스 여기저기에는 신입회원을 뽑는 동아리 소개 자보가 붙어 있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동아리의 소개자보를 살펴보다가, 맘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산악부 회원 모집. 자연과 함께 호연지기를 기르자!"

이거다, 싶었다.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테고, 절경 앞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을 테니 '여행 동아리' 가입하는 느낌으로 '산악부'를 골랐다. 그런데 첫 번째 모임부터 의심과 우려의 연속이었다. 동아리방에서 진행된 신입부원 모집 모임에는 세 명의 여성 동지들이 있었다. 나와 내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 우리를 본 선배들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산에 가본 적은 있어?"
"산에서 자야 할 수도 있어. 암벽을 올라야 할 때도 있고."
"화장실도 숙소도 없는 곳에서 지내야 해."
"혹시라도 가볍게 여행이나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왔다면 다시 생각해봐."


여기저기서 '왜 여자애들이 여기에' 하는 놀람에서 시작된 우려는 '가능하면 말려보자'라는 합동작전으로 발전했다. 여성 동지들은 웬일인지 의기투합하여 반론을 펼치기 시작했고, '(신입 회원 모집 공고에) 여자는 안 된다는 얘기가 없었으니 가입을 하겠다!'라며 선배들을 압박했다.

그 뒤로 몇 번의 동아리 산행을 하면서야 깨달았다. 산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운동화로 달려 올라가던 동네의 뒷산이 아니고, 방학 동안의 합숙 훈련에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같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걸 말이다. 호기로운 도전의 무모함은 점점 생기를 잃었고,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나의 혼란을 눈치채신 아빠의 만류를 구실로 나는 산악부에서 멀어졌다. 
 
 <여자들의 등산일기> 미나토 가나에 저/심정명 옮김
 <여자들의 등산일기> 미나토 가나에 저/심정명 옮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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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쓴 일본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여자들의 등산일기>를 집어 든 것은 대학 1학년 때의 실패가 떠올라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출세작이었던 <고백>이 그랬듯, 영화 <식스센스>(1999) 급의 대반전을 기대하며 읽어내려가던 내겐 또 다른 반전이었지만 말이다.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다운 스릴과 서스펜스를 기대했지만, 첫 장부터 회사 동료인 세 명의 여성은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묘코산(2,345m)을 오르기 시작한다. 의아함과 함께 '언젠가는 누군가 죽겠지?' 기대했지만, 얽히고설킨 관계를 가진 소설 안의 여성들은 따로 또 같이 계속 산에 오른다. 이 책은 그들이 함께 떠난 산행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서두에서 '산을 배경으로 치유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고, 나는 그들의 산행을 통해 인생을 떠올렸다. 
 
"애초에 언니나 형부나 이상해. 나 혼자, 나 혼자 하면서 뭐든지 자기가 하려 들면서 다른 사람은 자기한테 의지해주기를 바란다니까. 게다가 조금이라도 자기가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형편없는 인간이라도 된 줄 알지.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자기가 안 될 때는 제대로 머리를 숙이며 부탁할 줄 아는 사람 아니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될까 봐 자기 쪽에서 먼저 밀어내는 건 잘못이야. 게다가 여기는 산이라고. 지쳐있는 사람을 내버려 두고 케이크 따위가 넘어갈 리 없잖아.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애한테 말해." - P.232

등산은 종종 인생에 비견되곤 한다. 한고비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나고, 한고비에 올라서고서야 내가 가야 하는 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니 말이다. 그런 인생의 어느 한 길목에서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아니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 애기 금매화야.
등 뒤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관심 없다고 대답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실은 아버지는 쉬어가자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깨닫는다. 그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지친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무릎이 아팠던 것은 아미노산이나 경량화된 도구를 부정한 결과가 가져온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산한 뒤에 말해버렸다.
- 아빠랑은 두 번 다시 안 오를 거야.
지치면 머릿속에서 '손바닥을 하늘에'가 흐르는 이유는 내가 기진맥진했을 때 아버지가 늘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를 맞춰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산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부터 나 혼자 힘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처럼 페이스를 흐트러뜨리는 사람과는 같이 오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염치도 없이 상대방에게 말했다.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야말로 미숙하다는 증거다. - p.140

이쯤 되면 저자가 등산을 다루는 방식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살아가는 우리들의 연대와 소통에 대한 사유'인 듯하다.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보내는 구조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양한 변명이 존재하지만, 결국 내게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때가 많다. 여유가 있는 삶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허락하는 삶이 될 가능성이 높고, 지금의 내 삶이 지옥인 이유는 숨 쉴 여유가 없기 때문일 텐데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서 있기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나는 종종 그것마저 잊어버린다.

서른이 되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었다. 길었던 학위 과정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지리산을 선택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등산을 즐기던 동생에게 3~4일의 등산에 필요한 장비를 빌렸고, 배낭에 일용할 양식들을 챙겨 넣었다. 산장에서 한 번도 잠을 자 본 적은 없었지만, 이것저것 정보를 주워 담아서 가이드북도 만들었다.
 
지리산에서 만난 부자산행 두 번째 지리산 종주였나봐요. 앞에서 천천히 길을 잡아주는 아버지를 따라 씩씩하게 오르는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의 사진도 새롭게 느껴지네요.
▲ 지리산에서 만난 부자산행 두 번째 지리산 종주였나봐요. 앞에서 천천히 길을 잡아주는 아버지를 따라 씩씩하게 오르는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의 사진도 새롭게 느껴지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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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의 사흘은 오롯이 혼자였지만,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그 길을 '함께' 걷는 분들과 같이 있다고 느꼈다.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많은 순간을 혼자 감내해야 하지만, 나의 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길과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때 지리산을 걷는 동안의 나에게는 같이 걷는 우리를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내게는 그런 여유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는지, 씁쓸할 뿐이다.
 
사당이 보였다.
"언니!"
"응."
갑자기 의욕이 솟아나서 언니와 둘이 달려가다시피 사당을 향해 갔다. 산꼭대기를 채색하듯 피어 있는 천연 꽃밭은 아무리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도 못 당할 정도로 아름답다. 뚫어져라 쳐다보면 파란 하늘이 보일 것만 같은 얕은 구름 틈으로 빛이 내리쬐어 아래쪽에 펼쳐진 구름바다를 비춘다.
"앗………"
소리를 지르자 언니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저기,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나나카를 집에 데려오는 것도 괜찮지 않아? 다 같이 즐겁게 살자."
"최악의 경우에도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건 머리에 넣어둘게."
"너무하네. 비를 부르는 운 나쁜 가족일지 몰라도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우리만큼 무지개를 많이 본 가족도 그리 없을 테니까."
"맑은 날은 누구랑 함께 있어도 즐겁지. 하지만….."
끝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비가 내려도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 pp.188~189

나는 무지개가 떠오를 때의 공기의 색깔을 안다. 무지개를 만나려면, 무섭게 내리던 비가 잦아들며 갑작스레 하늘이 열리고 어슴푸레 빛이 들이치는 오후 어느 때의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 일순간 비를 머금은 공기는 황금색으로 반짝이고, 태양빛을 통과시킨 물방울은 무색의 빛을 선명한 색의 띠로 분리해낸다. 이런 색을 만나면 아무 데나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얼른 멈춰 서야 한다.

무지개는 반드시 비가 내린 후에만 만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산에서 맞이하는 비는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야만 무지개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힘들다고 그 길을 피해버린다면, 결코 아무것도 만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가 내려도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또 다른 여성들과 함께하는 산행을 통해 던지는 질문들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대학시절 산악부 신입생으로서 등산 내내 뱉어냈던 투정은 괴로웠고, 그 후로 도전했던 산들의 추억도 자연스럽게 소환되었다. 내 무릎은 두 번째 지리산 종주의 하산길에서부터 말썽이고, 허리는 몇 년 전에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이제 나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무섭다.
 
2월의 운주산 요즘에도 종종 동료들의 산행에 따라나섭니다. 오래 걷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정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황홀하네요.
▲ 2월의 운주산 요즘에도 종종 동료들의 산행에 따라나섭니다. 오래 걷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정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황홀하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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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오른다. <여자들의 등산일기>에서 그녀들의 산행이 그랬듯이, 나에게도 등산은 내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려올 것이 뻔한 그 길을 힘들게 걸어 오르는 것이, 죽을 것이 뻔한 삶을 아등바등 살아내는 것과 크게 다르다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산을 함께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더라도 함께 가는 사람의 보폭에 맞춰야 할 수도 있다.

어딘가에서는 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야 하겠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눠 받은 '맑음'이 허락한 무지개를 만날 수도 있다. 인생이라는 산을 우리 모두 같이 오르고 싶다. 그 길을 함께하는 우리의 연대만이, 삶을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날씨가 좋다. 다시 산에 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여자들의 등산일기> 미나토 가나에 저/심정명 옮김, 비채


여자들의 등산일기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비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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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