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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당시의 고민과 고뇌들은 교차로의 모습을 하고 다가왔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당시의 고민과 고뇌들은 교차로의 모습을 하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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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지난 50여 년 달려온 궤적이 가빴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방향에 몸을 잘 맡겨야 했고,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출렁이는 작은 배처럼 균형을 잘 잡아야만 하는 세월이었다.

사회 초년병 때 IMF 바람에 흔들리다 겨우 자리 잡을 즈음 국제금융위기 파도를 겪은 우리 세대는 외부로부터 닥치는 변화에 민감하다. 내가 그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닥치는 외부로부터의 변화를 또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바람과 파도에 몸을 맡기고 안전하게 사는 게 한때 나의 큰 꿈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차갑게 식고 등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순간이 늘었다. 40대를 지나며 친구들과 한숨 어린 대화가 많아지기 시작한 무렵인 것 같다.

"나라고 콕 집어서 얘기하지는 않지만, 꼭 내게 하는 말 같아." 대기업에 다녀서 부러움을 사던 친구들이 '명퇴(명예퇴직)' 압박을 받는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A 얘기 들었어? 소식이 뜸하더니만 갑자기 죽었대." 오랜 친구의 부고가 하나둘 들려오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연애 이야기를, 결혼해서는 자식 이야기를 주로 나누던 친구들이 어느덧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회 지위와 경제 수준을 떠나서 모두 나중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 친구들의 불안이 내게도 옮아왔다.

40대 후반을 달려갈 즈음, 삶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성찰을, 성찰은 결단을 불렀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주위에서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점멸등이 들어온 교차로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당시의 고민과 고뇌들은 교차로의 모습을 하고 다가왔다. 점멸등이 켜진 세 번의 교차로. 교차로에서는 신호대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만약 점멸등이 켜졌다면 갈 방향과 언제 출발할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나는 갈 길을 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항상 점멸등이 깜빡이는 교차로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교차로는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하던 중년의 어느 날 불쑥 마주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진정으로 가고 싶은 길이냐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그런 고민은 내게 주위를 둘러보라며 깜빡였고, 나를 깨어나게 했다.

꿈을 좇았던 20대, 30대와는 달리 주어진 일만을 하는 내 모습이 그제서야 보였다. 나의 소신이나 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던 것. 회사에서 책임이 점점 커지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거운 일들이 많아졌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함께 다가온 것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니 나와 같은 고민을 주제로 한 책들을 찾게 됐다. 주로 '미래는 이렇게 변화될 겁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책들에 사로잡았다. 물론 그 책들이 예측하는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중요한 성찰을 주기도 했다.

특히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쓴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 하라>가 뇌리에 깊이 남았다. 생물학자 관점에서 미래를 진단하며 인생을 1기와 2기(책에서는 '번식기'와 '번식 후기'라는 용어를 썼다)로 나누었다. 그 변곡점인 40대에서 50대 초반 사이에 2기를 위해 정리하는 시기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1기만큼이나 긴 2기 인생을 위해 공부하고 제2의 삶으로 넘어가라"고 제언했다. 크게 공감했다.

그런 마음이 나를 두 번째 교차로로 이끌었다. 나의 경험을 정리하고 다지고 싶다는 마음이 점멸등처럼 깜빡이는 교차로였다. 방향을 틀어서 모 대학의 IT정책대학원에 들어가게 됐다. 결론적으로 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한 훌륭한 결정이었다.

40대의 마지막 줄에 걸렸던 나는 과에서 최연장자 그룹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딱 중간 나이대였다. 20대부터 60대 초반까지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젊은 층들은 주로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연구원이었고,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학생들은 거의 방송국이나 통신회사 등에서 간부로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거의 30년 가까운 직장 경력을 가지고 있던 만학도들은 나처럼 자신의 노하우에 이론을 접목하고 싶어 했다. 수업 준비나 발표는 젊은 학생들이 주도했지만, 토론은 만학도들이 이끌었다. 책이나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는 느렸지만, 핵심을 파고 문제를 파악하는 건 빨랐다. 의지가 높으니 성과도 눈에 보였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위 외에 얻은 성과가 또 있다. 내가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수업을 따라가려면 미리 책과 논문을 읽어야 했고 글을 써야 했다. 처음에는 매주 일정 분량 읽어야 하는 게 버거웠지만, 어느 순간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에게 무기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펼칠 삶에 어쩌면 책 읽기와 글쓰기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덕분에 그때까지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꿈을 꾸게 됐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그런 꿈.

그런 꿈을 굳히게 한 세 번째 교차로에서는 빨간 점멸등이 깜빡였다. 건강 때문이었다. 난 오랫동안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다. 잠을 못 이루거나 깊게 못 자는 건 물론이고 밤을 하얗게 새우는 날도 많았다. 생활에 지장이 있으니 상담과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그렇지만 좋아지고 나빠지는 게 반복돼 수면장애가 나의 그림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학원 입학 후 상태가 조금 나아질 조짐이 보였다. 의사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데도 스트레스 수치가 많이 낮아졌다'고 했다. 오히려 대학원이 좋은 자극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냐면서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라고 조언했다. 어쩌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하는 게 '평생의 치료'일수도 있다면서.

그 말을 나도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당시 난 일에 많이 지쳐 있었고 다시 이전처럼 일하기가 싫었다. 그런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편해졌다.

이제 겨우 전반전을 뛰었을 뿐이야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웠다. 하프타임을 가지며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웠다. 하프타임을 가지며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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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생각에 불을 지폈다. 인생은 어쩌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 경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래, 아직 후반전이 남았어!" 그래서 전반전을 마치거나 혹은 마칠 즈음에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하프타임'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됐다.

먼저 일을 줄였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묻고 찾아보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의견도 나누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웠다. 하프타임을 가지며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앞으로 연재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나는 계속 글을 쓰며 새로운 일들을 꾸미고 있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내가 살아온 전반전보다 불안한 삶으로 비칠 수 있지만, 난 지금이 행복하다. 그런 나의 상태를 몸은 아는 것 같다. 어느새 수면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사람이 잠을 잘 자는 게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한 건지 새삼 느낀다.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지인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소리를 따라가 보라고.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

최재천 지음, 삼성경제연구소(2005)


태그:#내 인생의 하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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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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