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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5월 22일자 보도 < 윤지오가 퍼뜨린 의혹… 검증 없이 확성기 노릇 한 방송사들 > 캡처
 조선일보의 5월 22일자 보도 < 윤지오가 퍼뜨린 의혹… 검증 없이 확성기 노릇 한 방송사들 >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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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발표 직후 각종 뉴스와 시사 프로를 통해 윤씨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낸 방송사들에 대해 '특정 세력의 주장에 동조해 근거 없는 주장을 내보낸 것에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시청자는 '(장자연과) 같은 소속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검증 없이 방송에 출연시켜 국민을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진행자들이 윤씨의 발언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지난 20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 사건 관련 최종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위 내용은 <조선일보> 22일자 <윤지오가 퍼뜨린 의혹… 검증 없이 확성기 노릇 한 방송사들> 기사 중 일부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의 핵심 증인으로 주목받으며 각종 의혹을 제기해 온 배우 윤지오(32)씨 주장에 대해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20일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리스트의 실물을 확인할 수 없고, (윤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없다고 진술했다"는 과거사위의 발표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KBS를 비롯해 윤씨를 출연시킨 방송사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방송횟수까지 일일이 거론하며 비판하고 나섰다. 기사 속 사진엔 윤씨와 함께 KBS1 <오늘밤 김제동>의 진행자인 김제동,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김어준, JTBC <뉴스룸>의 손석희을 나란히 등장시켰다. 각 방송에서 한 윤씨의 발언과 이와 배치되는 과거사위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도 열거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이렇게 덧붙였다.

"캐나다에 머물던 윤씨는 작년 11월 입국해 국내에 머물다 자신의 책 출간일에 맞춰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여성가족부와 경찰은 윤씨에게 숙소와 신변 보호를 제공했다. 경찰은 윤씨의 호텔 비용으로 약 900만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세금으로 숙박비를 충당하며 KBS 5회, JTBC 3회(익명 전화 인터뷰 포함), CBS·tbs 각 2회 등 모두 15차례 방송에 출연한 것이다.

윤씨는 지난달 말 저술 작업을 도운 김수민 작가가 거짓 증언 의혹을 제기하자 출국한 뒤, 현재 캐나다에 머물고 있다. 윤씨는 출국 과정에서도 '어머니가 아파서 급하게 캐나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으나, 윤씨의 어머니는 한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우 윤지오씨가 3월 19일 KBS < 오늘밤 김제동 >에 출연해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누구이고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다시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 윤지오씨가 3월 19일 KBS < 오늘밤 김제동 >에 출연해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누구이고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다시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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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검찰 과거사위 조사 발표에서 '검증 불능'으로 판명된 윤지오씨의 주장을 방송사들이 검증 없이 전파했다는 것. 발단은 윤씨의 주장과 과거사위 발표였지만, 비판의 화살은 명백히 윤씨를 출연시킨 인기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향하고 있었다. 그 형식이나 논조는 마치 지난 2월 <조선일보>가 지상파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의 편향성을 검증·비판하겠다며, 자사가 의뢰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보고서를 적극 인용해 물의를 빚었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관련기사: '조선일보 지원' 서울대 교수 보고서에 대한 열가지 의문).

이 기사엔 과거사위 결과 발표 이후 "참담하다"는 심경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했던 윤씨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일각에서 "조선일보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과거사위 조사 결과의 일면이 '진리'로 활용됐을 뿐이다. 다른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조선닷컴 포함) 총 5건의 기사를 쏟아냈고, <스포츠조선>은 20일 과거사위 발표에 대한 <조선일보>측 입장 전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참으로도 성실(?)하고 꼼꼼한 대처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그 시각이 <조선일보> 입장만을 대변하는 편향성이 도드라졌다는 사실은 논외로 치더라도. 하지만 불과 두 달여 전까지만 해도 '장자연'이란 이름은 <조선일보>에서 금기어와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 금기를 깨부수기 전까진.

조선일보의 침묵과 취사선택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차관 별장 성 접대 의혹, 그리고 클럽 '버닝썬' 경찰 유착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1차 보고, 그리고 박상기 법무,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 2차 보고를 받은 뒤 '공통적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 부실 수사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이 3개 사건에 대해 직접 수사 지시를 한 것이다." 


지난 3월 18일 조선닷컴에 게재된 이 기사(文대통령,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철저 수사 지시)는 '장자연'이란 이름 석 자가 포함된 11개월 만의 <조선> 기사였다. 지난 2018년 4월 <검찰 과거사 위원회, 재조사 대상 5건 추가 선정>이란 지면 기사를 제외하고, '장자연'이란 세 글자는 <조선일보>의 금칙어, 금기어와 같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문 대통령에 이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나서자 <조선일보>도 그들의 발언을 전하기 시작했다. 금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과거 검경의 부실수사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여야의 공방이 달궈지면서 '장자연'이란 이름은 3개 사건 중 맨 앞에 서게 됐다.

물론 <조선일보>의 반발도 거셌다. 앞선 지난 3월 22일자 '최보식 칼럼'은 거침없이 불편함을 드러낸 글이었다. <정말 위험한 문재인 대통령의 '자포자기' 심리 상태>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칼럼에서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3개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수사 지시에 대해 "미래 비전이 없는 지도자는 과거에 집착"한다며 거세게 저항했다. 적폐청산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지만, 장자연 사건 수사 지시에 대한 '조선일보식' 불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었다.
  
조선일보 3월 22일 보도된 < 정말 위험한 문재인 대통령의 '자포자기' 심리 상태 >의 일부분
 조선일보 3월 22일 보도된 < 정말 위험한 문재인 대통령의 "자포자기" 심리 상태 >의 일부분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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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씨의 이름이 연일 검색어 순위를 장식하던 와중에도 <조선일보>는 대체로 침묵을 지키는 듯했다. 간간히 진상조사단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의 칼럼이나 단신들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윤지오씨에 대한 '부정 이슈'가 나오면서 <조선일보>는 윤씨에게 주목하기 시작한다. 지난달 16일 검찰 과거사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준영 변호사가 소셜 미디어에 게재한 '검증'이란 제목의 글을 인용해서 쓴 4월 17일자<김학의·장자연 사건, 여론과 이해관계 휩쓸리며 과장·왜곡>이 대표적이다.

박 변호사는 이 글에서 "윤씨가 최근 장자연씨가 술이 아닌 다른 약물에 취한 채 (접대 등을) 강요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안다"며 "이 진술이 언제 비로소 나왔는지, 어떤 경위에서 나왔는지,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지 따지지 않고 특수강간죄를 논하고 공소시효 연장 등 특례 조항 신설을 얘기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이라고 했다. 윤씨의 주장이 여론에 휩쓸리며 과대 포장되고 더 큰 해석을 낳는 것을 경계한 글이었다. 

이후 <조선일보>는 지난 4월 박훈 변호사가 윤씨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고 그 직전 윤씨가 출국하는 과정은 친절하게 보도했다. 지난달 27일자 지면기사 제목은 <"사람들 기망해 재산상 이득" 윤지오 사기혐의로 고발당해>였다.

하지만 정작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MBC < PD수첩 >을 필두로 '조선일보 방 사장'이나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와 관련된 새로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과정에서도 '무시'로 일관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지난 20일 과거사위 발표 이후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씨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과거사위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는 기간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를 보면 언론사가 갖춰야 할 '균형'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자격을 따져 물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과연 <본질 외면한 채… 조선일보 흠집내기 올인하다 13개월 허송>(<조선일보> 20일자 기사 제목)과 같은 비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조선일보>의 '셀프 면죄부', 자격있나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대표는 조선일보 방상훈 대표의 동생이며, 조선일보 사무실 일부가 입주해 있다.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대표는 조선일보 방상훈 대표의 동생이며, 조선일보 사무실 일부가 입주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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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방용훈 사장에 대한 수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아 당시 부실한 수사 등으로 장자연이 2009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에게 술 접대를 하고 잠자리를 요구받은 사실이 있는지, 그 상대방과 경위, 일시, 장소 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20일 과거사위의 조사 발표 중 일부다. 당시 검경의 부실수사는 명백해 보인다. 의도적인 은폐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방용훈 사장을 비롯해 장자연 사건 관련 <조선일보>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그랬다. "당시 수사가 미진했으며 조선일보의 외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발표 내용에 허탈함과 허망함을 표하는 이가 다수였다.

하지만 공소시효는 지났고,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재수사를 권고할 증거가 절대로 부족하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만큼은 분명히 했다.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과연 <조선일보>가 아래 기사들로 과거사위를 비판하는 동시에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셀프 면죄부'를 줄 자격이 있을까.

<조선일보 "검찰 과거사위의 '장자연 수사에 대한 조선일보 외압' 발표는 일방적 주장과 억측에 근거한 것....법적 대응하겠다">
<"'조선일보 수사외압' 과거사위 발표는 명백한 허위… 사건과 무관한 방 사장이 왜 외압을 행사하겠나">
<본질 외면한 채… 조선일보 흠집내기 올인하다 13개월 허송>
<장자연은 왜 죽음 선택했나… 이 물음엔 시종 침묵한 과거사위>
<검·경·법원 "방상훈 사장은 관련없어"… 과거사위는 그래도 "수사 미진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22일 1042개 여성·시민단체는 이번 장자연 사건에 대한 과거사위 조사 발표를 정면으로 규탄했다. 과거사위의 발표의 미진함과 검경의 부실 수사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여성·시민 단체 뿐만이 아니다. 정치권, 특히 여당에서는 특검까지 거론됐다. 22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검찰은 과거사위의 결정에만 머물지 말고 국민적 의혹을 풀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국회에서도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정조사, 특검 등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열어두고 고민해 나갈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검경의 부실 수사와 (조선일보의) 외압을 확인했다고 하지만 핵심 의혹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며 "장자연 사건과 버닝썬 사건은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들의 과거를 청산할 용기조차 없는 검경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검경이 말하는 공정한 수사나 사법 정의는 결코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과거사위의 장자연 사건 조사 발표는 <조선일보>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도리어 과거 검경에 외압을 행사한 <조선일보>의 전횡의 일각이 10년 만에 드러났고, 더 많은 국민들이 그 단초를 인식하게 된 계기라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끝내고 싶겠지만,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태그:#장자연,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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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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