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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실련, 참여연대, 비정규직노동센터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촉구" 2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실련, 참여연대, 비정규직노동센터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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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ILO협약 87호와 98호, 29호 등 미비준 4개 협약 중 3개 협약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습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22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에 관해 "그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을 모색해 왔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가 종료된 상황에서 정부의 향후 계획을 말씀드리겠다"면서 "미비준 4개 핵심협약 중 3개 협약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헌법상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관계 부처와 노사 의견수렴 등 관련된 절차를 거쳐 (9월)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발표에서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ILO협약 105호는 제외됐다.

이 장관은 "105호 협약은 우리나라 형벌체계와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비준 추진에서 일단 제외했다"면서 "국내 전체 형벌체계를 개편해야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어 지금 상황에서 비준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
 국제노동기구(ILO) 기.
ⓒ ILO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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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 ILO는 여러 회원국과 맺은 189개 협약 가운데 8개를 핵심협약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중 차별과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4개 항목만 대해서만 비준했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 노동 관련 4개 항목은 미비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이 장관이 ILO협약 105호를 제외한 3개 항목에 대해 '비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핵심협약으로 분류되는 8개 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 제29호와 제105호에 대해서 비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4개 협약에 대해 모두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포함해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뿐이다. 
 
ILO협약 제105호는 왜 빠졌나?
 
우리 정부가 비준을 거부한 ILO협약 제105호는 1957년 6월 제네바에서 소집된 제40차 회기에서 규정된 내용이다.
 
당시 ILO는 "국제연합 헌장에 규정되어 있고 세계인권선언에 선언되어 있는 인권의 침해가 되는 모든 형태의 강제근로의 폐지에 관한 제안을 채택하기로 결의한다"면서 "105호 협약은 1959년 1월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요협약'에 명기했다.
 
협약 제105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제도에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가지거나 표현하는 것에 대한 제재
㈏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동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수단
㈐ 노동규율의 수단
㈑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 인종, 사회, 민족 또는 종교적 차별대우의 수단

 
이 장관은 "105호 협약은 정치적 견해표명 등에 대한 처벌로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 경우 형벌로 노역을 부과하지 못한다"면서 "우리나라 법체계는 과실범에 대해서만 금고형을 부과하게 돼있어 지금 이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는 건 어렵다"라고 말했다.
 
ILO협약 105호는 정치적 견해와 파업참가 등에 대한 제재라고 할 수 있다. 국내법상으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등 정치적 견해 표현에 대한 징역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공무원법 등 노동규율 수단에 대한 징역형 ▲공무원노조법, 경비원법 쟁위행위에 대한 징역형이 105호 협약에 저촉되는 사안이다.
 
이에 대해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고용노동부가 반드시 비준해야 할 핵심협약의 하나인 105호에 대해 비준하지 않고 남겨둔 선택을 한 데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절 파업이나 총파업에 참가한 것에 대해 '정치파업'이라고 규정돼 여전히 징계를 받거나 민형사상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핵심협약 3가지 통과의 의미
 
이날 이재갑 장관은 'ILO핵심협약 3개 항목 비준'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EU(유럽연합)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노동권 보장 문제가 강조되는 추세"라면서 "특히 유럽연합(EU)은 한-EU FTA에 근거해 우리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FTA 사상 최초로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했다,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EU와의 분쟁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심협약 3개 항목에 대한 비준을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3개의 협약은 '결사의 자유' 항목에 해당하는 87호와 98호, '강제노동 철폐' 항목에 해당하는 29호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 87호는 '노동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스스로 선택해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단결권 및 단체교섭협약과 관련된 98호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고용 거부 등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노동자는 누구나 원하는 단체에 가입할 수 있고, 이를 이유로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ILO협약 29호는 '모든 형태의 강제근로를 금지한다'라는 내용으로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작업을 제외하고 처벌의 위협 아래 행하는 모든 비자발적 노동을 금지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 우리나라 보충역 제도가 협약 29호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105호가 제외된 것이 아쉽지만 민주노총의 요구가 일정부분 관철됐다"면서 "경사노위에 떠넘기려 했던 정부의 입장을 선회해 국회비준동의안으로 넘긴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남은 과제
  
100주년 맞은 ILO.
 100주년 맞은 ILO.
ⓒ ILO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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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동안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와 국회 논의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를 통한 협상에 실패한 데다 국회 파행까지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EU 협상 과정에서 협약 비준 요구가 불거졌다. 당장 다음달 10일부터 열리는 ILO 100주년 기념총회에서 무역분쟁 해결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이 소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도 정부가 이번 비준안 통과를 추진한 이유다.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도 결코 만만치 않다. 정부는 비준 동의안 초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에 완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당 소속인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지난달 18일 기업인 간담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에 관해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핵폭탄급 (문제)"라며 "당분간 국회 환노위에서 정식 의제로 삼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노총이 이날 입장문에서 "국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며 "대치 정국이 계속되고 있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과연 정부의 비준 동의안이 제대로 논의조차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시한 이유다.
 
한편, 이날 이 장관의 발표 전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LO핵심협약 즉각 비준'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23년간 반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해 왔다"면서 "문재인 정부 또한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대선 당시 공약했다, 당선 이후엔 국정과제로 정했다, ILO 100주년 총회 이전에 ILO핵심협약을 즉각 비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에 불참하기로 했다. 앞서 ILO는 100주년 기념총회 기조연설자로 문 대통령을 공식 초청했었다.

태그:#국제노동기구, #ILO, #핵심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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