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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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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은 소송 처리 방안을 검토한 판사가 법정에 섰다. 그는 '재판거래' 의혹을 두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울먹였지만, 보고서 작성 과정 등에 대해선 이례적이었다고 인정했다.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공판에 조아무개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증인으로 불렀다. 2015~2017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2016년 일본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찰은 이 사건도 일제 강제징용재판처럼 사법부가 행정부 의견을 반영, 법관 파견과 상고법원 등에 유리하도록 개입을 시도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당시 임 전 차장은 보고서의 결론까지 제시하진 않았지만, 소멸시효 문제 등을 언급하며 위안부 피해자 소송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조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임 전 차장이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한) 강제징용 사건은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 판결인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소부 판결이라 중요도가 덜하다는 건지 뜻밖이었다'고 진술했다. 또 '임 전 처장이 다른 쟁점도 언급하며 어려운 사건 아니냐고 했다'고 했다. 그는 법정에서 이 진술을 유지했다. 이 정황들은 임 전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등을 위해 일제 강제징용재판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고 했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

일제 강제징용 재판처럼... '부정적' 의견 토대로 만든 시나리오

이후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말한 방향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의 쟁점은 다섯 개의 판결 예상 시나리오인데,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일제 강제징용사건 관련 문건들과 흐름이 비슷하다. 조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임 전 차장이) 강제징용 보고서를 주면서 (위안부 피해자 소송 검토 보고서를) 써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들은 A라는 판결이 나올 경우 어떤 의미인지를 다루는 데에 그치지 않고 B라고 대응해야 한다거나, C라는 상황에선 소송 진행을 D방식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부장판사는 보고서에서 재판권 문제 등으로 위안부 피해자 소송이 성립할 수 없다는 '각하' 판결이 나올 경우 "위안부 동원 행위가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공권적 행위이며 반인권적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시함으로써 비판 여론 최대한 약화"라는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또 일본 정부에 소송서류를 전달하는 시간이 길어질 테니 그 기간에 "외교적 경로를 통한 조정, 화해, 원고들의 소 취하 등을 시도하여야 함"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는 만약 강제징용 재판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이 승소할 경우 단점으로 일본측 극력 반발, 한일관계 재경색, 정부의 외교적 기조와 사법부가 다른 판단함으로써 기관간 갈등 우려 및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하락"이 꼽히기도 했다.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줄곧 주장해온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만든 보고서일 뿐, 재판의 결론을 정해놓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관심되는 사안에 취재요청이 들어오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재판부의 결론방향을 설명해주는 것이 행정처가 하는 일이라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는 것이 부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 중인 특정 사건을 검토한 것은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특정 사건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 소송이 유일하냐'는 검찰 질문에 조 부장판사는 "지금 기억하는 것으로는..."이라고 답했다. 또 언론보도나 국회 국정감사 등을 대비해 설명자료를 만들기도 했지만, 위안부 피해자 소송 문제는 2016년 국감 준비 때 다루지 않았고, 언론 취재요청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 많은데... 위안부 피해자, 제대로 사죄∙배상 받길"
 
지난 2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지난 2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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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내내 긴장한 채로 감정을 다스리던 조 부장판사는 증인신문을 마친 뒤 발언 기회를 얻자 울먹였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라며 입을 뗀 뒤, 그는 한숨을 내쉬고선 말을 이어갔다.

"그 당시 상황은 정말 행정처에서 대응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고, 어떤 식으로 재판이 진행되든, 또 결론이 나든 항상 모든 경우에 대비해서 준비해뒀다가 설명하고, 재판부를 방어해주는 그런 것들이 당연히 업무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도 설명을 미리 준비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했고, 법리 내에서 제가 생각하는 대로 또 그렇지만 (임종헌 전 차장이) 말씀하신 내용도 전체적으로 담으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정말 무슨... 다른 사건도 아니고 위안부 피해자 사건의 시나리오를 정해놓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고..."


조 부장판사는 눈물을 흘리며 "사후적으로 오해될 수 있는 부분, 정말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되어서 오해할 수 있는데, 정말 그런 생각으로 (보고서를) 작성했겠는지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어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런 것 때문에 부담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받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을 끝맺었다.

태그:#사법농단, #임종헌, #위안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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