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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며 차를 몰아, 공장에 들러봅니다. 아, 오늘로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입니다.
▲ 2018년 5월 31일의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퇴근하며 차를 몰아, 공장에 들러봅니다. 아, 오늘로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입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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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지났다. 2018년 5월 31일. 나는 군산에 있었다. 그날은 GM 군산공장이 문을 닫는 날이었고, 현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찾아간 공장은 간판마저 어두웠다. 공장이 떠난 그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또 다른 군산인 <제인스빌 이야기>를 통해 공장이 떠나버린 군산의 미래를 짐작해 보려 한다.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할 일자리가 있을까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20년 가까이 현장을 헤매고 있다. 얼마 전 참석한 회의에서 미국의 기술 개발 정책을 입안하는 인사의 자조 섞인 발언을 듣자니 현재 미국의 고민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은) 미국에서 발명되지만, 세계 어딘가에서 만들어집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양한 이유로 떠났던 생산 공장들을 미국으로 이전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제조업은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 주도권을 되찾고자 '3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의 제조업은 전통적인 대량생산에 의지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 수많은 혁신 기업들이 태어나고 있지만, 미국 전체에서 고용을 창출하기엔 부족해요."

이어진 발표자의 발언은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살리려는 이유를 명확히 드러낸다. 최근 미국의 경제적인 부흥을 주도하는 수많은 IT기업들은 고용을 창출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고용과 노동에 의한 임금에 기반한 경제 구조하에서는, 대량생산에 기반한 대규모 제조업만큼 확실하게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은 없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연결되는 고민이다. 산업의 경쟁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은 특별하게 품질이 좋거나 저렴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는다. 이것이 대부분의 공장이 중국에 몰려있는 이유이며, 독일이나 일본의 솜씨 좋은 기업들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졸업한 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식당 종업원 뿐이라는 게 말이 돼?"

거의 10년 전이었나. 오랜만에 미국 대학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그녀의 고민이 깊다.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대학을 다녔는데, 졸업 후 그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노동 없는 임금'을 제도화할 수 있다면 모를까, 전통적인 대량생산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당면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미 조선산업의 위기로 거제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고, GM이 군산 공장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혼란에 빠진 군산을 보았다. 답을 찾아야 한다. 기대를 갖고 <제인스빌 이야기>를 집어 들었다.

이 책은 GM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2008년부터 완전 중단을 결정한 2015년까지 미국의 제인스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며,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이 지역사회를 되살리기 위한 분투기이다. 

공장이 떠나고... 지역사회를 되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
 
시카고에서 2시간 정도 운전하면 도착하는 도시네요. 1923년부터 GM이 자동차 생산라인을 운여하고 있는 유서깊은 제조업 기반 도시입니다.
▲ 제인스빌은 시카고에서 16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2시간 정도 운전하면 도착하는 도시네요. 1923년부터 GM이 자동차 생산라인을 운여하고 있는 유서깊은 제조업 기반 도시입니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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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스빌은 미국 중부의 소도시로, 시카고에서 2시간 정도 운전하면 도착한다. 솜씨 좋은 기술자들이 모여 있어서 GM의 수많은 공장 중 가장 품질 좋은 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2008년 12월 마지막 타호를 생산한 후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도시는 생기를 잃는다.

1923년 GM 공장을 유치하면서 제인스빌은 자동차 산업에 관계된 경제 기반을 80년 넘게 유지해 왔다. 이런 도시에서 GM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관련된 다른 공장들도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를 이어 공장 노동자로 살아왔던 마을에서 공장이 사라진 이후의 그들을 보는 것은, 그래서 무겁고 어둡다.
 
"제인스빌은 거의 100년 동안 자동차를 생산해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시절은 이제 거의 끝났고, 물줄기는 말라버렸습니다. 저 공장이 언젠가는 문을 다시 열 것이라고 희망을 품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인스빌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현실 앞에 섰습니다. 샤인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며, 이것은 다음 세기에 우리의 처지를 결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결정을 앞두고 숙고할 때 담대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확신합니다. 이해합니다. 제인스빌이 지금부터 쏟아부으려는 돈은 어쩌면 꽤 많은 액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샤인 이후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지역을 발전시킬 방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 308~309p.

공장이 떠난 도시가 생기를 되찾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들은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일부의 노동자들은 다른 도시의 GM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도시에서는 다른 산업을 유치하고자 애를 썼다.

위에서 말하는 '샤인'이라는 것도 의료기 관련 회사인데, 이런 식으로 새롭게 일자리를 유치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출된 일자리는 1990년의 45퍼센트에 불과했다. 산업을 다른 산업으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았고, 제인스빌은 결국 두 개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는 자와 일을 하지 못하는 자의 도시, 두 개로 말이다.

도시의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새롭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이라는 곳도 철강산업에 기반하여 조성된 산업단지의 노동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옆 마을의 조선산업이 휘청거리면 같이 흔들려야 했고, 이웃 나라의 철강 생산량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다.

이런 식의 흔들리는 안정감도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철강산업' 이후를 봐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진정 지역을 발전시킬 방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미리 대비할 수만 있다면, 변화의 충격이 덜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2008년 4월 28일, 제너럴 모터스가 제인스빌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기 5주 전, 회사는 공장의 두 번째 교대 근무 조를 없앨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날 해당 근무 조에서 27년을 일한 60세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후, 록 카운티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은 두 배가 늘었다. 2008년에 15건이었던 자살은 2011년에 32건을 기록했다. 카운티의 위기 대처 핫라인에 점점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에 카운티 검시 사무소는 교육을 원하는 모든 주민 모임에 자살 예방 강연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제인스빌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살률은 미국 전역에서 급증했다. 1930년대의 대공황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2년 만에 자살률이 네 배로 치솟았다. 록 카운티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케이트는 지역사회가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일부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기 쉽다고 생각한다. 약물중독과 우울증, 또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개인적 취약함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들은 일자리를 잃는 것과 동시에 삶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 354~355p.

제인스빌의 회생 노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공화당의 유력한 차세대 주자였던 폴 라이언이 위스콘신의 하원이었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음에도, 정치적인 방식으로는 답을 주지 못했다(게다가 폴 라이언은 2018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주민들은 GM을 대체할 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으나, 일자리의 수는 가장 부흥했던 90년대의 반절에도 미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재교육하고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를 떠났으나, 생활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2015년의 핼러윈 데이를 앞둔 수요일, 잠에서 깬 제인스빌 주민들은 <제인스빌 가제트> 1면의 헤드라인을 본다. "끝났다." 제너럴 모터스와 전미자동차노련이 모든 가동을 중단한 제인스빌 공장의 처리 방향에 합의한 것이다. 영구적인 공장폐쇄였다. 제인스빌 공정에서 마지막 타호가 생산된 지 7년, 제인스빌이 제너럴 모터스사 전체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대기" 상태의 어중간한 공장이 된 지 4년 만이었다. 최근 몇 년간 문 닫은 공장 부지와 생산 시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도시가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처지가 다른 두 개의 제인스빌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선명한 분할선으로 작용했다. 기업인과 경제개발 리더들은 공장을 공식적으로 폐쇄하라고 진즉부터 GM에 요구했다. 그래야 매각 절차를 밟아 부지를 새로운 용도로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날 아침 날아든 뉴스에 환호했다. 그러나 언젠가 공장이 다시 문을 열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옛 제인스빌 공장 노동자들은 미국 자동차 산업이 기록적인 판매고를 기록 중인 가운데 날아든 영구적인 공장 폐쇄 소식에 절망했다. - 446~447p.

문 닫은 지 1년 된 GM 군산공장

GM은 7년 동안 공장의 재개를 두고 제인스빌을 희망고문했다. 우리가 지금 군산을 대하는 방식은 다를까? GM의 군산공장은 MS 그룹에 인수되었고, 2021년부터 차세대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라인으로 운영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군산은 다시 일부의 생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가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동차 산업 이후의 군산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군산에만 국한된 고민은 아니다. 대량생산에 의한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를 과연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산업의 전환을 대비해야 한다면,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제인스빌 이야기 -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은이), 이세영 (옮긴이), 세종서적(2019)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제인스빌 이야기, #군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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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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