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심포니> 영화 포스터

<하늘색 심포니> 영화 포스터 ⓒ 박영이

 
단아한 한복을 교복으로 입고, 재잘재잘 웃음을 터트리는 풋풋한 아이들이 스크린에 가득 담긴다. 평양 냉면을 감탄하며 몇 그릇씩 비우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영장을 뛰어다니고, 통일 전망대에서 멈추지 않는 눈물을 훔친다. 남한 학생들과 전혀 다름없이 순수함이 묻어나는 이 사랑스런 아이들은 과연 누굴까.

바로 평양으로 2박 3일 수학여행을 온 조선학교의 학생들이다. 영화 <하늘색 심포니>의 박영이 감독은 재일동포 3세로서 오랫동안 조선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조선학교를 다녔던 그는 누구보다도 조선학교 학생들이 겪어 온 아픔에 공감했고, 재일동포들이 일본사회로부터 받는 부당한 차별에 분노해왔다.

일본우익집단의 날선 공격에도, 재일조선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고자 했던 박영이 감독은 5·18 민주화운동을 배우고자 광주를 찾아 온 조선학교 졸업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그리던 한국을 찾았다. 먼 바다 건너 같은 언어 같은 역사를 지닌 재일동포들을 남한 국민들이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박영이 감독, 그는 모두가 잊지 않아야 할 삶을 영화에 담았다. 지난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박영이 감독을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박영이 감독. 광주 금남로 레드페스타의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박영이 감독. 광주 금남로 레드페스타의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다 ⓒ 박영이

 
- 박영이 감독님은 제일동포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나요?
"저는 제일동포 3세로서 오사카에서 태어나 요코하마에서 유치원부터 초중고급학교까지 모두 조선학교를 다녔습니다.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부 철학과에 입학한 후, 조총련에서 7년 동안 지역 동포 친구들 모아 동아리를 운영하거나, 일본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포들이 모이는 행사를 진행할 때 영상을 찍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제작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어 조총련을 그만 두고 독학으로 영상기술을 배워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감독님의 그간 촬영하신 작품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첫 작품은 <마토후> '치마 저고리를 걸치다' 라는 뜻의 단편 영화였습니다. 영화 학교 졸업작품으로, 1945년 당시 조선학교 학생들이 치마 저고리 (조선학교 교복) 을 입고 학교 다니다가 전차에서 우익 성향의 시민에게 칼로 옷을 찢기게 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다큐멘터리는 조선학교가 어떻게 동포들의 힘으로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담았고, 평양 국제영화제에 출품이 되어 상도 받았습니다. 또 <하늘색 심포니>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평양 수학여행을, <무지개의 기적> 다큐멘터리는 오사카 4.24 한신 교육투쟁을 촬영했습니다."
 
오사카 4.24 한신 교육투쟁이란 1948년 당시 미점령군의 지령 하에 해당 당국이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막기위하여 고베와 오사카 거점의 조선인학교 폐쇄령을 내리자, 오사카 재일조선인들이 이에 대해 저항했던 '한신교육사건'을 일컫는다. 다수의 중경상자가 나왔으며, 재일동포의 역사 중 가장 큰 아픔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망월동 묘지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박영이 감독

망월동 묘지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박영이 감독 ⓒ 박영이

 
- 조선학교 아이들을 위주로 촬영하시게 된 배경이 있나요?
"재일 조선인으로서 동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조선학교에 재학할 때 동창 여학생들이 우익들에게 자주 폭행을 당해서 학교조차 못 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했었습니다. 우리 재일동포들은 여전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하나, 일본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사회가 재일동포들을 대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익들의 습격 이후 법적인 조치가 취해져 노골적인 피해는 주진 않지만, 일본정부의 본질적인 차별과 무관심은 큰 의미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일부 언론은 우리를 '간첩'이라 왜도하기도 합니다. 다만 고교무상화 재판 등 전국 각지에서 진행해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리면서, 일본 각지에서 조선학교를 지지해 주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한국 국민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이유가 있나요?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재일동포들의 현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무관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재일동포 분들의 고향은 대부분 남쪽 땅입니다. 그렇기에 남한 사회의 관심이 더욱 중요한 이유이며, 재일동포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고자 하면 이해할 수 있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습니다. 
 
재일조선인들의 현실에 냉담한 남한 정부와 달리 북한 정부에서는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에 대한 꾸준한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같은 조선인학교지만 정치적으로 갈라진 민단계 학교인 경우, 남한 정부의 도움이 있다곤 하지만, 북한 정부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금전적 지원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북한 동포뿐만 아니라 민족의 혈통을 지켜오고 있는 해외동포들도 함께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어느 하나 외면 받지 않고 모두가 하나 되는 통일을 꿈꿀 수 있습니다. 저의 영화들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이야기가 널리 한국 사회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조선학교 학생을 촬영하는 박영이 감독

백두산 천지에서 조선학교 학생을 촬영하는 박영이 감독 ⓒ 박영이

 
- <하늘색 심포니>를 북한을 배경으로 촬영하며 느꼈던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밝고 명랑한 조선학교 친구들을 촬영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북한에서 만난 주민들과 선생님들이 재일동포 학생들이냐며 반가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고 부족한 거 없나 연신 물어봐 주기도 했어요.

이번 년도까지 합하면 벌써 열 아홉 번 째의 북한 방문입니다. 제가 만난 북한은 비록 물질적인 삶은 낮은 수준이지만, 인간다운 삶이 그 곳이 있었습니다. 모두 놀 때는 신나게 놀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며, 평범한 생활 속에 묻어나는 웃음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기준으론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가족의 행복함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방문할 땐 통일에 대한 기대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또,북한 주민들은 예전에 비해 먹고 사는 문제를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자신감도 얻어 활기찬 느낌이었습니다. 남한은 북한에 대한 오해들이 많은데, 카메라에 비춰지는 모습대로 북한 주민의 삶까지 제한되어 있진 않아요. <하늘색 심포니>영화를 통해 그런 편견들을 잘 풀어내 보려 했어요."

- 이번 영화는 광주 대학생들과 조선학교 동포들의 만남을 촬영하신다고 들었어요. 광주의 오월과 재일동포의 아픔이 어떻게 이어질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촬영하고 있어요. <무지개의 기적> 영화에서 1948년 당시 학교를 지키고자 투쟁했던 조선학교 학생들을 반미주의자, 빨갱이로 몰며 탄압했었는데 바로 광주의 5.18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분단이 가져온 한 민족의 참상, 이념과 정치사상으로 탄압받고 갈라졌던 동포들의 고통, 모두가 겪어야 했던 '역사의 아픔'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준려의 고향 순천을 찾은 감독과 김희영, 김준려 재일동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준려의 고향 순천을 찾은 감독과 김희영, 김준려 재일동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박영이

 
- 이번 촬영을 통해 통일에 대한 희망을 확신하셨다고 들었어요. 한국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이번 촬영을 통해 이념을 넘어 하나가 되는 청년들을 보니 얼마나 벅찬지 모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며, 함께 통일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우리 조선학교 아이들은 북한도 한국도 모두 건너갈 수 있어요. 비록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사랑하는 조국은 통일된 한반도 뿐이라는 이 아이들은, 분단의 아픔을 넘고 이념의 장벽을 넘는 '통일의 징검다리'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조선학교 학생들을 연민으로 그치기 보단, 통일이라는 빛나는 가치를 이뤄 낼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향 땅을 물으면 사랑하는 한반도라고 말하는 조선학교 아이들. 우익들의 거센 탄압에도 꿋꿋히 한글이름을 지켜가며, 조선인이라는 민족의 혈통과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훗카이도, 도호쿠, 간토지방 등지에 위치한 조선학교 학생들은 고교무상화와 보조금 지원 문제 해결을 위해 여전히 아베 정부와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박영이 재일동포 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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