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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관광객 때문입니다. 제주도를 헐값에 소비한 우리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 기획은 제주도가 관광객에게 보내는 '청구서'입니다. [편집자말]
지는 2016년 중국 노동절과 일본 골든위크를 맞아 제주에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제주 성산일출봉 일대.
▲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제주 성산일출봉 지는 2016년 중국 노동절과 일본 골든위크를 맞아 제주에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제주 성산일출봉 일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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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빠른 대량이동 수단이 등장한 산업혁명은 여행을 관광으로 변화시켰다. 언뜻 유사한 행위인 여행과 관광의 다른 점은, 장소가 상품화를 통해 관광지로 소비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볼 수 있다.

소비대상으로 장소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끊임없이 그 부가가치를 높여가지 않으면 안 된다. 관광개발이 해당 지역사회에서 명분 있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개인 또는 지역 차원에서 지역에 도움이 되는 한도 내에서 장소와 공간을 관광객과 공유하겠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 장소 자체의 고유한 정체성에 기반해 관광지화 되는 일은 지역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거 외에는 퇴보를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의 고유한 권리가 어느 정도 침해받는 상황이라도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지가가 상승하고 도로 등 기반 인프라가 구축되는 걸 발전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다. 장소에 대한 권리를 관광객에게 양도 또는 공유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최근 유명 관광지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은 이러한 전제가 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지역발전의 도구 역할만 담당하리라 믿었던 관광이 우리를 박차고 나온 맹수처럼 관광지 이곳저곳을 할퀴고 생채기 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관광지 주민이 감당하기에 벅찬 상태에 도달하고 말았다. 주민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맹수 스스로 지칠 때까지 기다리거나, 우리에 다시 가두는 방법밖에 없다.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튼튼한 우리를 만들어 맹수가 아예 뛰쳐나올 수 없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지는 성수기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숙박세, 관광세 등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우거나 관광행위와 관광사업에 법적 제한을 두는 강제적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베니스, 암스테르담, 베를린과 같이 관광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강점을 지닌 지역에서 대응하는 방식이다. 필리핀의 보라카이 같이 폐쇄를 결정한 극단적 사례도 있다.

결과보다 속도의 문제

오버투어리즘은 말 그대로 '과잉관광'이다. 즉 관광지의 수용력을 넘어서는 관광객의 유입 현상을 의미한다. 오버투어리즘으로 관광지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다. 경제적으로 관광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져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해진다. 또 교통혼잡, 지가상승, 난개발, 환경오염 등으로 전반적인 삶의 질이 악화된다. 인간의 실존과 개인적 정체성의 초석으로써 심오한 연관을 맺고 있는 장소와의 유대감이 상실돼 사회불안정성이 높아진다. 관광개발과 관광수익 분배, 성장과 보존 등을 두고 갈등이 벌어져 공동체의 분절을 가져오기도 한다.

제주에서 오버투어리즘 이슈가 본격화한 건 지난 2017년 이후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해 한한령을 내려 중국방문객이 급격히 감소해 지역경제가 심하게 생채기를 입은 것이나, 예례휴향형관광단지와 같은 대규모 관광개발, 비자림로 확장공사나 제주제2공항과 관련한 갈등, 쓰레기와 오폐수로 인한 환경오염, 교통체증, 지가상승에 따른 주거비용 상승 등 지역민의 전반적인 삶의 질 악화 등 성장과 보존, 성장 혜택의 분배 문제를 비롯하여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등이 표출되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의 부정적 측면과 관련한 이슈는 이처럼 대체로 결과론적이며 그 원인을 수용력을 초과하는 과다하게 많은 관광객 수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 의문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버투어리즘 현상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면, 관광객 수라는 절대적인 총량의 문제 한편으로 '속도'의 문제도 공존함을 볼 수 있다. 제주는 1980년대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 2009년까지 3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연간 약 625만여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2013년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데는 4년이 걸렸고, 2016년 1500만 명이 방문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연간 방문자 600만 명으로 성장하는 데까진 30여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 두 배 이상인 연간 방문자 1500만 명으로 진입하는 데는 고작 7년 걸렸다는 얘기다. 관광객의 빠른 증가속도는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요소였고 제주도는 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제도적으로 꼼꼼히 대비를 할 충분한 시간도 없었다. 국제관광적 측면도 제주도의 사례와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오버투어리즘은 수용력을 초과할 정도로 관광객이 밀려오는 게 일차적 원인이지만,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빠른 증가 속도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방문객이 찾는 관광지란 관광시장에서 위상이 잘 포지셔닝((positioning)된 곳이고, 관광객을 오지 못하게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문제는 관광지가 짧은 기간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을 때 주체적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이다. 이는 결국 '속도'의 문제와 관련된다.

나오시마 사람들
  
일본 나오시마 섬 방파제에 설치된 노란호박 조형물.
 일본 나오시마 섬 방파제에 설치된 노란호박 조형물.
ⓒ 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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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는 일본 카가와(香川)현의 세토내해에 위치한, 면적이 우도의 두 배쯤 되는 작은 섬이다. 약 3천 명이 거주하지만 연간 방문 관광객수는 거주인구의 170배인 50만 명 이상이다. 일본에서도 인기 관광지에 속한다.

이곳도 여느 지방의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1차산업이 쇠퇴한 뒤 침체한 지역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자연과 조화된 예술을 테마로 명소 만들기에 착수했다. 1992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함께 '베네세 아트사이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1997년 빈 가옥 자체를 예술품화 하는 '家프로젝트', 2004년 지중미술관 개관, 섬 방파제 한 구석에 설치한 노란 호박과 같이 섬 전체를 무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오시마에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속도'였다. 제주는 2010년대 이후 방문객수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곶자왈과 해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카페와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도로로 덮여갔다. 방문객을 맞을 관광수용태세의 개선과 투자유치라는 명목으로 지방정부도 관광개발에 적극 관여한 결과다. 관광지화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이상, 이 과정이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삶의 속도는 변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비교적 느리게 흐르던 섬 사람들의 삶의 속도는 어느덧 되도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길 원하는 관광객의 속도에 맞추어져 버렸다. 제주인의 삶의 속도가 도시인 관광객의 삶의 속도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과정은 나를 돌아보고 제주의 자연을 돌아보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 나오시마섬 항구 풍경.
 일본 나오시마섬 항구 풍경.
ⓒ 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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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오시마 섬의 로컬식당. 관광객의 편의에 맞추지 않고 점심과 저녁에만 잠깐 영업한다.
 일본 나오시마 섬의 로컬식당. 관광객의 편의에 맞추지 않고 점심과 저녁에만 잠깐 영업한다.
ⓒ 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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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오시마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호텔, 기념품판매점 등 어느 하나 관광객의 욕구를 충분하게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그래서 정체불명 무국적의 건물로 해변이 뒤덮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식당들도 섬사람들이 여태껏 그래왔던대로 점심과 저녁에만 잠깐 영업할 뿐이다. 아침 일찍 찾아오는 관광객이 나오시마에서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편의점 한 곳뿐이다.

나오시마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지중미술관도 현장 예매를 통해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한다. 모든 것은 나오시마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관광객은 그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그 명성에 비해 나오시마의 변화는 느리게 진행된다. 그 속도는 주체적인 시각에서 관광에 포섭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대비하는 데 충분한 시간적 여지를 주는 속도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제주도는 자연과 환경, 그리고 정체성이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수단으로써만 인정되고 있다. 이익의 최대화를 위해 더 빨리 더 많은 것들이 변화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혹자는 이를 성장이자 발전이라고 인식할 테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비용을 고려하면 그것이 과연 이익인가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양적 성장은 이를 지지하게 위해 더 빠른 성장을 이끌어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제주인의 삶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이로운 것인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제주는 지금 이런 기로에 놓여있다. 나오시마 사람들의 사례가 제주의 선택에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줄 거라 생각한다.

태그:#오버투어리즘, #제주관광, #나오시마여행, #제주오버투어리즘, #과잉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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